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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7 조회수4,044 추천수12 반대(0)

연수원에서 좋은 점이 많습니다. 여러 교구의 신부님들과 친교를 맺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보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새미 은총의 동산에서 매일 기도하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가장 큰 즐거움은 연수원의 본질인 배움입니다. 지난주에는 몸의 신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몸의 신학은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정립한 신학입니다. 교황께서 가르치셨고, 성인이 되셨기에 교도권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몸의 신학의 출발점은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우리의 몸은 아담의 원죄를 시작으로 교만과 욕망으로 하느님의 모상을 잃어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표징, 행동으로 우리의 몸이 하느님께로부터 왔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지친 삶의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픈 몸은 치유되었고, 악에 물든 영혼은 하느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시면 우리들 또한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몸은 죽을지라도 다시 살아 영원한 삶에로 초대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봉사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와 봉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혼인이며 가정입니다. 혼인의 참된 의미를 알고, 가정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도록 도와주는 것이 몸의 신학입니다.

 

몸의 신학은 우리의 몸은 모두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기에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체의 장애가 문제될 수 없습니다. 정신의 장애가 문제될 수 없습니다. 피부색이 문제 될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문제 될 수 없습니다. 직업과 능력이 문제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몸으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몸의 신학은 그러한 관점에서 저항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없는 태아의 낙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피임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낙태와 피임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소중하고,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거룩한 존재임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몸의 신학이 소중하기에 몸의 신학을 지키려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미혼모들이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지켰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비난하십니다. 그들이 율법을 강요하지만 지키려 하지 않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도와주지 않고 단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질주의와 자본주의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우리의 몸도 상품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윤의 도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간다면 우리들 또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처럼 예수님께 야단을 맞을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가치를 이 세상에서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을 따르는 이들을 단죄하기 전에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물질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몸은 자본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무의 가지와 몸체를 보기 마련입니다. 예쁘고 화사한 꽃과 맛있는 열매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모든 나무는 어두운 땅 속에서 양분을 찾아내는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바람도 견디기 마련입니다. 가뭄도 이겨내기 마련입니다. 스페어타이어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식당 종업원이 화재를 진압하고 식사를 하러 온 소방관에게 고맙다는 쪽지를 주었고, 음식 값은 자신이 대신 냈다고 합니다. 그 종업원의 작은 선행이 알려져서 식당에는 많은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종업원은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버님을 위한 장애인 전용 차량도 쉽게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종업원의 어려움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그전에 선행을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선행을 보시고 평가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어느 곳에선가 자리를 잡습니다.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는 바람만이 알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씨앗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뿌리를 내리고, 꽃과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선행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가슴에 위로와 용기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절망과 근심 중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과 기쁨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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