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3 조회수1,24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2월 23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히브 11,1-7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4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

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에 따라 받는 의로움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르 9,2-13

그때에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저는 매달 1일에 활동비를 받습니다.

사실 신부가 되고서 처음으로 활동비

(당시에 54만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를 받았을 때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활동비를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활동비를

받으니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사제 생활을 20년을 하고 있는 지금,

처음에 받았던 활동비와 비교하면

훨씬 더 많은 액수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의 행복이 훨씬 더 클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게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뜻밖의 수입이 아니라,

미리 예측하는 수입이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미리 안다면 행복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불행을

 미리 안다면 어떨까요?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을 것 같지만 예고된 불행은

 더 큰 불행의 시작이라는

말도 있듯이,

불행 역시 미리 안다고

 좋을 것은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어쩌면 미래에 대한

준비이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제주도 표선에 가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그는 수의근을 제어하는

신경세포가 소멸되어서

근육이 굳는 루게릭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에 걸려서 6년간 투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에도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김영갑 작가가 보여준 지금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그의 열정에 감탄을 하고

용기를 얻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을 꿈꾸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가십니다.

이 제자들은 이곳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엘리야와 모세도 보게 되지요.

 아마 ‘이곳이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지치고 힘든 전교여행은

이제 그만하고 여기에 영원히

머물기를 바랐나 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늘에서는

이러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의 뜻은 이곳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해야 할 일,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은

모두 팽개치고 편하고

나에게 이로움을 줄 것 같은

이곳에 머물자고 했던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따라야 할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행동하면 인생이 되고

곧 운명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생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법칙이다.

(톨스토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


생명의 소중함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한 살로 칩니다.

그래서 한국 나이로 하면

 한 살 더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성인들은 이제 한국 나이가 아닌

서양 나이로 계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나이 계산법은 왜 이럴까요?
우리 조상님들은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 역시 어엿한 생명체이자

인격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태교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태아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이제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

형편이 좋지 않다는 생각,

잘 키우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낳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

그래서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낙태가 불법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생명이 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낙태를

합법화하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좋은 전통을 과감하게

버리고 지금 자신만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싶습니다.

생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인데....

(미사 후 순례객들과 함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