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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에만 있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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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1 조회수778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번 부활성야 미사와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느낀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올해 저희 본당 미사 전례는 다른 해와 특이한 특징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성가대에서 국악을 혼용해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전통적인 오르간으로 성음악을 수놓는데 이번에는 어쩌면 한국인에게만 있는 이라는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국악을 전례에서 혼용을 한 겁니다.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더 우월한 게 많이 있지만 제가 봤을 때 가장 우위에 있는 걸 하나 꼽는다면 단연 저는 전례의 장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인원수 대비 성가에서 울려나오는 깊은 울림은 제가 봤을 때 가톨릭 성음악을 능가하는 건 없을 겁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불교 음악도 접해봤지만 나름 그 깊은 멋도 있지만 가톨릭은 아주 독특한 묘미가 있습니다. 서울 대형교회에서 100명에 가까운 찬양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소리와 그 사분의 일밖에 안 되는 인원과 비교했을 때는 소리 그 자체로만 본다면 일반 개신교 찬양대가 훨씬 더 큰 소리가 납니다. 근데 차이가 뭐가 다를까요?

 

참 표현하기가 어렵는데요 글로 표현하자면 울림이라고 할까요? 소리를 화살에 비유하자면 개신교 찬양대는 그냥 가슴을 관통하는 거라면 우리 가톨릭 전례음악은 가슴을 관통하되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듯이 후벼파고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마치 그런 느낌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성당에서 감동을 받은 건 지금의 제 본당이 아니지만 제가 다른 성당에서 영세를 받을 뻔한 성당에서 성탄을 맞이해 성가대에서 전례음악을 연습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때 그 느낌은 말 그대로 감동 그자체 였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음악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동하게 하는지는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누구나가 아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톨릭에서 성음악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의 어떤 훌륭한 기도보다도 더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더 높이 올려드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례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신자는 성가대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가대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보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비송을 할 때도 정말 애절하게 국악기의 현을 타고 흐르는 애절한 소리가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그 소리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제가 하느님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만약 제가 하느님이었다면 천상에서 그런 자비송을 들으시게 된다면 정말 아무리 진홍 같은 붉은 죄를 짓는 가련한 인생이지만 그 인생을 굽어 살펴 주셔서 그 애절한 가락 소리가 하느님의 진노도 누그러뜨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이번 부활성야 미사와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전례음악을 귀로 들으면서 눈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얼굴만 쳐다보며 묵상에 빠져봤습니다. 말없이 숨이 끊어지셔서 고개를 떨구고 계신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일인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우리는 세상에서도 어떤 일을 기념한다면 보통 좋은 기억을 가지고 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물론 아픈 기억도 그 어떤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는 것도 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당신께서 대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걸 기억하는 의미도 있지만 어떻게 다르게 한번 생각하면 우리의 모습이 정말 잔인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특이하게 한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런 예수님의 참혹한 모습을 2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 성전이나 십자고상에 계셔야만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수님이 정말 애처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당장 눈앞에 무언가가 있어야만이, 시야에 어떤 대상이 들어올 때만이 그걸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서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려고 하는 최소한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번 해봤습니다.

 

가톨릭만의 성음악 고유의 독특한 특색을 살펴보면 마치 지금 20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바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그 현장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바로 전례에서 하는 성음악이 2000년을 뛰어넘어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면 정말 감동적인 은혜가 되지 않을까요? 왜 그럴까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더 생생하게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본다면 정말 우리가 평소에도 전례 때 미사에 임하는 자세를 이렇게 생각하고 임한다면 좀 더 더 은혜로운 전례가 될 거라고 봅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예수님 사후 2000년이라는 현재에서 과거 2000년을 거슬러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이 마치 그때 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치 예수님의 죽음이 한낱 2000년 역사 속에 묻여 있는 역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이 저희에게 주시는 감동의 여운이 더 생생하게 우리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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