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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제1독서 (사도2,14.22-2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2 조회수1,437 추천수0 반대(0) 신고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제1독서 (사도2,14.22-23)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22)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31)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32)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33)

 

 

 

사도행전 2장 22절부터 32절까지는 계속되는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 베드로가 시편 16장 8~11절에 나오는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는 내용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내용의 선포를 시작함에 있어서 베드로가 자신의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들을 가리키는 호칭2장 14절과 다르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는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이라 하면서 청중들의 혈통과 더불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비중을 두고 있다.

 

 

 

'유다인'종족적인 측면 강조한다면,  사도행전 2장 22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인'종교적 측면을 더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본문의 '이스라엘인'이라는 호칭은 그들과 하느님 사이의 계약에 비중을 두는 호칭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혈통적인 직계 조상은 야곱이다. 그는 야뽁강 가에서 하느님과 겨루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받고, 다시는 야곱으로 호칭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바로 축복을 약속하는 이름이다(창세32,24~30).

 

 

 

유다인들은 이 축복받은 이름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다.

 

 

 

베드로가 유다인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청중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고, 그 이름을 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베드로가 여기서 주로 예수님을 비하시키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했던 '나자렛'이란 지명을 언급한 것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고난당한 사실을 강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예수의 수난을 강조하여 말하는 것은 주로 유다인들로 이루어진 청중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삼천명이나 세례를 받게 되었다(2,37-41).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22)

 

 

 

'여러 기적'으로 번역된 '뒤나메시'(dinamesi)의 원형 '뒤나미스'(dinamis)'능력'(권능)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행해지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적'으로 번역된 '테라시'(terasi)의 원형 '테라스'(teras)는 주로 자연계에 나타나는 이적적 현상가리키는데 주로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표징' 해당하는 '세메이오이스'(semeiois)의 원형 '세메이온'(semeion)은 반드시 초자연적인 일은 아니더라도 행해진 일이 진리에 대한 증명 되는 경우를 말한다.

 

 

 

'기적'의 본질은 하느님의 권능(능력)을 보이는 것이며, '이적'의 효력은 놀라움을 가져오는 것이고,  '표징'은 영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3년이라는 공생활 동안에 '기적과 이적과 표징' 통해서 자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밝히 드러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이 어리석게도 이러한 예수님을 못박아 죽였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행적을 특징 짓는 세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3)

 

 

 

'무법자들'(법없는 자들)하느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 가리킨다.

 

 

 

'손을 빌려'라고 번역된 희랍어 '다이 케이로스'(dia cheiros)히브리어 '뻬야드'(beyad)에서 온 단어이다. '뻬야드'는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관용구로서 '~의 방법을 사용하여' 혹은 '대리자를 사용하여'라는 뜻이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권력 총독 빌라도의 권위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사주했었다(로마2,14; 1코린9,21).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로마인들에게 보다는 유다인들에게 있다.

 

 

 

한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일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과 무법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구속사업이 하느님 계획의 실현과 인간의 사악함이 그 도구로 사용된 사실 동시에 드러내 준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느님의 필연적 계획이 결코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역설적 진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계획이 있었다고 하여 인간의 사악함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사악하다고 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1)

 

 

 

사도행전 2장 27절의 시편 16장 10절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의 내용은, 실제로 다윗이 자신의 영혼이 죽지 않고, 자신이 육신으로도 썩지 않게 된다는 고백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한 것이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시편 16장의 저자인 다윗이 예언자적 계시와 영감을 가지고 미래의 사건을 미리 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2)

 

 

 

베드로가 본 설교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다윗의 예언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했다는 사실이나 부활 그 자체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바로 부활의 주님 이시고, 예수님께서 복음 그 자체이시다.

 

 

 

과거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의미에 대해서 못알아듣고 예수님을 부인까지 했던 베드로가 이런 놀라운 깨달음과 확신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진리를 전파하게 된 것은 실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이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 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주님의 성실한 증인 (martyres; 순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옴)임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에스멘'(esmen)이라는 현재형 동사가 쓰인 것은 이 증인됨이 과거와 현재 뿐만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될 일임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33)

 

 

 

사도행전 2장 33절부터 3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부어 주셨음을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부분이며, 33절은 부활 이후의 승천에 관한 표현이다.  

 

 

 

시편 110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이것은 본문이 승천의 방향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에서는 '테 덱시아'(te dexia)도구, 수단의 여격이므로, 문법적으로 볼 때는 '오른손으로'번역하여  승천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 개념에서 오른손은 능력 말한다.

 

 

 

즉 사도행전 2장 33절은 하느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시고 또한 하늘로 올리신 것을 상징적인 표현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탈출5,6; 89,14).

 

 

 

한편 '들어 올려지신'이라는 표현은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장소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 보다는  육신을 입으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승천을 통해 다시 영광스러워지셨다는 신분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필리2,9-11).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3절은 '약속된 성령'보내 주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요한14,16.26; 사도1,5), 약속대로 하느님의 영이신(사도2,17-18) 성령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서 보내셨다(사도2,1-4).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으신 것은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성령을 받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또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추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고 바로 그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상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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