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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맞이할 우리는 /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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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2 조회수1,290 추천수6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3세기까지 초까지만 해도 예수 부활 대축일만 지냈으나, 12세기부터는 부활 축제를 8일에서 성령 강림까지 7주간을 부활 시기로 정하였다.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관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은 해마다 달라진다. 그분은 파스카 축제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 다음 날 부활하셨다. 이를 기준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 지난 첫 보름 다음의 첫 주일을 주님 부활 대축일로 정했다. 부활의 신비가 완성되는 성령강림까지인 50일 동안, 그분 은총이 풍성히 내린다고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필이면 제자들이 왜 갈릴래아로 가길 바라셨을까?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은 갈릴래아 나자렛이었다. 사실 그곳은 비옥한 지역이지만, 대부분은 가난한 소작인으로 힘들게 살았으나 그분 삶이 오래 깃든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이제 다시 정든 갈릴래아로 가야만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게 될 게다. 예수님의 부활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소식이다. 그리고 부활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라는 부르심이리라. 부활은 이론이 아니고 지나가 버린 기록으로만 된 사건도 아니다. 부활은 믿음이며 은총이다.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할 신비이다. 그러므로 이 부활을 일상에서 꼭 체험하도록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주님 이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 부활의 은총을 그저 바라는 것만은 아닌지? 당시만 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맞는 여러 부류가 있었다. 신앙으로 받드는 여인들, 의심하는 경비병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수석 사제들이었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면, 부활의 신비는 거부당할 게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갈망했던 여인들에게만 당신 부활을 보이셨다. 그것은 그분 은총이다.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 그 부활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이들에게만 주어지리라.

 

이렇게 부활은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는 없는 믿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기쁨이었다. 우리는 이 부활을 진정으로 믿을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게 참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빈 무덤을 발견하고 두려우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던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이방인의 땅이라고 불리는 갈릴래아로 가라 하셨다. 어둠과 절망에 빠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머무는 곳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할 상징적인 곳이다. 그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려야만 할 게다.

 

부활을 맞이하는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마냥 두려워 설마!’하며 그냥 지나쳐버리는 건 아닐까? 성탄 판공 후 처음이라며 고해소 문을 연 통과의례로만 그치려는 정도로만 여기려 할지도 모르겠다. 장엄한 미사 성가가 울리고 주보에 교구장님의 담화문이 나오고 알렐루야!’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오니 그저 거기에 빠져 덩달아 악수만 하는지도. 아니면 그건 지금의 기쁨이 아닌, 먼 훗날의 죽음 후의 그 무언가일 거라면서 아예 깊은 묵상마저 관두고픈 마음일 수도. 그렇다면 부활은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에 불과할 게다.

 

성경에 나오는 부활은 팩트이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 이야기가 예루살렘에서 나자렛으로, 이천년 전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이어지리라. 부활이 있었기에 성탄이 있었고 영원한 생명이 나왔고 믿음이 자리 잡았다. 누가 뭐래도 부활은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신과 기쁨을 가질 때 가능하다. 우리는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확실히 믿는 참된 신앙인이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진정한 평화를 선물하시는 은총이다. 믿어라. 부활은 그때의 팩트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아주 소중한 선물이다. 부활 없는 성탄은 없고 기쁨 없는 부활은 아예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기에 부활은 기쁨이요 부활은 믿음이다. 그리고 부활은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부활,갈릴래아,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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