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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조배와 부활 신앙 (이청준 신부님 강론), 성체조배회 미사 강론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3 조회수1,876 추천수1 반대(0) 신고

 

 

40일 동안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했습니다. 견뎌내는 게 수난입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기도중에 일상 속에서 사건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게 있습니다. 내가 삶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맘대로 할 수가 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힘든 사건, 기도중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게 있습니다.

 

메마름의 고통과 침묵 속에서 올라오는 게 있습니다. 이런 걸 견뎌내는 게 수난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든 걸 견뎌냈습니다. 우리는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가고 싶은 그 현실을 거부하고 싶고, 그걸 우리 마음대로 다시 정리하고 싶고, 상황을 바꾸고 싶고 , 상황이 안 바뀌어지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왜 하느님께서 내가 바라는 대로 정치, 경제, 사회 우리 집안 사정 등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사정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주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하다 보면 과연 하느님께서 계실까 하면서 하느님을 떠나버리고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 단정짓게 되면서 무신론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 봐도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약하고 무지하고 탐욕스럽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 주시지 않고, 우리가 힘들어하고 도망치고 싶고 그 상황을 바꾸고 싶은 그런 현실 속으로 들어가 견뎌내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신 걸 육화라고 하고 그런 인간의 환경 속에서 생활하시는 게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수난입니다.

 

그럼 부활은 뭔가? 견뎌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인간이 옛날에는 이것 때문에 힘들어 했고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고 하면서 몸부림치는데 이제는 몸부림치는 게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아요.

 

하느님께서 그런 부활된 자신 안에 계시게 되면 그 에너지가 너무 강하니까 그 어떤 가난과 결핍, 사회적인 불의와 적페, 어둠의 현실이 나를 괴롭히지 못해요. 내 안에 큰 하느님의 생명과 부활의 생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에너지인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안에 그런 생명의 에너지 즉, 부활의 에너지인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일상생활 안에서 더욱더 심화되고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게 성령칠은입니다.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 안에서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진복팔단의 삶이고 이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그리고 빈 무덤에 대해 생각해보면 의식수준이 다른 사람들은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우리의 성장과정으로써 받아들이고 좋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다 다릅니다. 감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영적인 차원의 세계를 이해를 잘 못합니다. 빈 무덤은 감각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 사이의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터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감각의 세계와 육적인 세계에서 보면 실패와 공허만 남아있습니다. 그게 빈 무덤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승리의 표징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이 빈 무덤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의 공간,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공간입니다.

 

감각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넘어가는 데에는 순수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을 통해서 진통을 당하는 과정이 어두운 밤이고, 십자가고, 수난입니다. 이런 게 우리 안에서 발효가 되어서 영적인 에너지로 성장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담대하고, 의연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월요일 복음)에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내용이 나오죠.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우리가 성체조배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양성이 되면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삶의 증인이 되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진정한 성체조배 봉사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렉시오디비나 강의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증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길들여지고 말씀과 친해지는 환경에 세팅이 되고 말씀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수도원을 만들고, 광야를 만들고 정해진 시간 속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서 자신이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부활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성체조배를 통해서 성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과 규칙적으로 길들여지고 훈련이 되고 양성이 되면은 결국은 우리는 증거자가 되고 증인이 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증언들이 부활의 삶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몇 가지 형식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육화하시고, 공생활하시며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거에 대해서 증거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 내용을 답습하고 암기하고 해서 성체조배를 하는 사람도 그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성체의 증거자는 부활의 증거자가 되고 부활의 증거자는 성체의 증거자가 됩니다.

 

우리가 성체조배에 투신하고 길들여져서 성체조배의 사도가 된다면 성체조배의 사도직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직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봉사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성체조배를 통해서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고 일치하고 길들여졌다는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가셨습니다. 갈릴래야는 일상입니다.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현존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거기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일상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더 깊고 새로운 차원에서 수난과 십자가와 죽음을 체험하고,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부활을 체험하고 자신이 예수님과 일치를 더 깊이 체험하고 양성이 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상생활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다가 또 그것보다 더 깊은 차원의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체험하게 되면 점점 더 깊이 우리는 진정한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합니다.

 

나선형 계단으로 이해를 한다면 위에서 보면 빙빙 도는 것 같지만 옆에서 보면 더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점점 더 상승하고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 높이가 상승하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육화와 수난과 죽음과 부활, 일상을 우리와 함께 하나의 싸이클링되어 일치를 해야 하느님의 현존 속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성체 안에서 머물러 있다가 일상생활 속에서 성체안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미션 사명이 있습니다. “갈릴래야로 가라고 하신 이것은 미션이고 사명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성체의 삶을 전파하라, 일상생활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전파하라,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육화와 수난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똑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예수님의 성체의 사도이고 성체 안에 머물러 있게 되면 그렇게 되게 돼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께 간구하도록 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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