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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읽기와 영혼의 때를 씻어내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9 조회수1,347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경을 영어로 바이블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에 대한 정답을 딱 하나로 꼬집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가령, 나올 수 있는 답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 하나를 보자면 이런 게 있지 않을까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또한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알아야 신앙도 성장하고 한층 더 견고해질 거라서 읽으려고 할 겁니다. 독서라는 의미는 책을 읽는 거를 말합니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책 속에 나오는 글자 즉 텍스트를 시각을 통해 눈으로 읽고 텍스토와 텍스트의 조합으로 어떤 의미가 두뇌에서 구체화된 이미지가 형성되었을 때 그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래 텍스트는 영어 단어입니다. 요즘은 ‘text’ 라는 의미를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한글로도 통용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도 텍스트라는 단어의 의미가 나오지만 사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정의는 실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통용하는 의미와 조금 상이합니다.

 

원어민들이 사용하는 사전에 나오는 정의를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림이나 어떤 설명이 없이 글로써 구성되어져 있는 것을 텍스트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단순히 글이라고 하지 왜 그런 영어 개념을 사용해서 설명하려고 하는지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가 있을 겁니다.

 

조금 깊이 생각을 해보면 글이라는 의미보다도 텍스트라는 의미가 때로는 더 구체적이고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사전에 이런 배경지식을 잠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냥 단순히 독서를 했다고 했을 때 그 독서는 크게 두 가지의 범주로 나눌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책 속에 있는 하나 하나의 글자인 텍스트를 눈으로 보고 텍스트 그 자체만을 본 것을 단순히 독서를 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독서는 텍스트를 읽고 이렇게 읽은 텍스트와 텍스를 연결해서 이루어진 텍스트의 조합으로 어떤 의미를 이해할 때 그때 비로소 책 속에 담긴 어떤 콘텐츠가 자기 몸에 자양분으로 남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냥 책 속에 있는 텍스트만 눈으로 단순히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제가 며칠 전에 성경을 보면서 알게 된 체험을 한번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틀 전인 목요일 오전에 이웃 본당에는 오전 미사가 있습니다. 미사를 참례하러 갔습니다. 근에 오르간 옆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자매님이 계셨는데 그 자매님을 개인적으로 공적인 일 때문에 아는 자매님인데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겁니다.

 

그날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봤고 제가 바이올린 연주에 관심이 있어서 나중에 미사 후에 자매님께 뭐 궁금한 게 좀 있어서 문의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미사 후에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하는데 조금 바쁜 모양입니다. 바로 본당에서 성경통독모임이 있는데 참석해야 돼서 조금 바쁘다는 것입니다. 모임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무료할 것 같아서 자매님께 그 모임 저도 잠시 참석해도 되는지 문의를 하니 좋다고 하셔서 참석했습니다.

 

성경통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참석했습니다. 저와 여섯 분의 자매님이 참석했습니다. 이사야서를 처음 들어가는 날이라 돌아가면서 한 단락씩 낭독을 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 독서하는 것과는 좀 달랐습니다. 보통 보면 독서할 때는 전례의 분위기에 맞게 낭독을 합니다. 근데 그날 통독 모임에서는 속도가 개개인마다 다 다르고 또 낭독하는 것도 일반적인 틀과는 달랐습니다.

 

어떤 한 분 자매님은 표현이 좀 속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한마디로 따발총이었습니다. 보통 다른 분들을 보니 대체적으로 속도가 빨랐습니다. 저도 여러 번 제 차례가 왔습니다. 15장까지 그날 통독을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전례 때 독서하는 속도보다 조금 빨리 읽었습니다. 근데 다른 분들이 좀 빠르게 낭독하다보니 저도 분위기를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름 좀 빨리 읽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읽어서 이게 머리에 무슨 의미가 남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뭔가 하나를 읽어도 차분히 읽어야지 뭐 대충 할당량을 해치우기식으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간에 제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본당에 손님이나 마찬가지인데 왈가왈부하는 건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서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하는 방식으로 하고 마친 후에 제가 이 부분에 대해 가진 의문점이 있어서 저는 하느님 말씀을 후다닥 이렇게 읽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분들은 이런 저의 생각에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또 그렇게 하시는 다른 숨은 의미가 있는지를 여쭤봤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물론 이렇게 읽으면 천천히 읽고 묵상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나지만 원래는 그렇게 하는 방식이 하나의 정석이지만 말 그대로 통독을 하되 스피드를 내는 건 성경이 일반 책에 나오는 텍스트와는 다르고 또 어떤 경우는 표현 자체가 지금 현대인이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보니 또 세상에 있는 소설처럼 재미를 위해 읽는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많은 경우에 성경을 통해 말씀을 접해야 되는 게 좋은 줄은 알지만 이런 연유 등으로 인해 쉽게 성경이 손에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말씀과 동떨어진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이렇게라도 하다보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자기도 모르게 성경에 적응이 되고 또 말씀도 자기 몸에, 입에 적응이 되어 나중에는 성경 속에 나오는 말씀이 조금은 전보다 낯설지 않아서 일종의 성경과 하나의 친근한 친구가 되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가 통독을 이끌고 계신 자매님께 오늘 유익한 것 하나 덕분에 배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오전에 이 말씀이 생각나서 제가 제 근무하는 곳에 와서 성경을 펴서 낮에 통독한 것처럼 성경을 한번 읽어봤습니다. 늘상 워낙 잘 아는 복음의 한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려고 미리 작정하고 편 곳이 아니라 그냥 아무 곳이나 펴서 읽으려고 편 것입니다. 그때 순간 어떤 영감이 하나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본 성경이고 개신교 때까지 포함하면 정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는 성경 내용입니다. 이때 왜 제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옥 같은 말씀이고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이 말씀이 가령 일반 교양도서나 인문학 서적에 똑같이 나온다고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말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설령 똑같은 텍스트의 형식으로 성경과 일반 서적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심리적으로 그 텍스트의 내용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느낌에는 뭔가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말이라도 일반 도서에서는 그냥 좋은 말, 또는 성인의 말씀 그 정도로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같은 텍스트라도 성경이라는 서적에 있는 그 텍스트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닙니다. 성경이라는 책 안에 들어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건 바로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좋은 말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바로 성경 안에 있기 때문에 바로 하느님의 영이 서려있는 말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단순히 일반 책에 나오는 내용과 같다고 하더라도 일반 서적은 별 감응이 없을 수 있지만 성경 속에 나오는 텍스트는 성경 속에 있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인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전제가 맞다고 가정하면 바로 이런 사실을 추론할 수 있을 겁니다. 내용은 많이 봐서 알고 있지만 그냥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해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내용이지만 그 텍스트는 성경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이 적혀 있는 성경의 텍스트를 눈으로 읽지만 눈으로 읽은 그 시각적인 신호가 우리의 뇌속에 있는 언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영역에서 우리는 바로 단순히 텍스트라는 문자의 의미를 넘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미지 메이킹된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와 가슴은 그 문자가 단순히 하나의 문자로 그치는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에는 실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겁니다. 단지 성경 안에 있는 그 텍스트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이게 만약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면 성경 속에 있는 텍스트가 하느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다만 문자로 녹아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한번 보세요. 만약 우리가 실제로 우리가 우리의 감각기관인 청각을 통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하느님을 경외하고 또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 우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기관으로 실제 하느님의 음성을 느끼는 걸 경험하지 못하니 무덤덤할 수 있는 존재인데 이런 식으로 하느님의 숨결을 하나의 성경 속에 있는 텍스트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 현존을 인식할 수가 있게 된다면 그 말씀에 우리 피조물은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 존제 자체가 경외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경외감을 계속 느끼게 되면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계속 자신의 영혼의 때를 관통하게 되면 영혼이 맑아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좋은 말씀도 성경 속에 있을 때 그 존재 가치는 실로 엄청나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자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 자기의 영혼을 관통하게 될 때 실제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의 영혼에 해 주시는 말씀으로 인식을 할 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실제 말씀처럼 인식을 하게 되는 효과가 나타난다면 그 효과로 인해 자신의 혼탁한 영혼의 때를 씻어내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하고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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