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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람쥐에게서 배우는 삶의 교훈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04 조회수1,430 추천수0 반대(0) 신고

다람쥐의 주식은 도토리입니다. 다람쥐는 가을에 도토리를 겨울을 나기 위해 땅속에 묻어 저장을 한다고 합니다. 근데 이때 다람쥐는 자기가 어디에 묻어놨는지를 다음에 알기 위해서 하늘을 본다고 합니다.

 

만약 하나 상상을 해 본다면 구름이 있다고 하면 아마 겨울에 찾을 때 구름 밑으로 갈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게 진실이든 아니든 이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아둔한 다람쥐라는 건 불을 보듯 당연합니다. 

 

저는 이런 다람쥐를 보며 생각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도 이런 다람쥐와 같다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다람쥐는 자기가 묻어놓은 도토리의 대부분을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묻는 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다람쥐 쳇바퀴 인생을 사는 거겠죠.

 

근데 재미난 사실은 자기가 지금 먹는 도토리가 바로 아주 오래 전에 이름 모를 다람쥐가 자기처럼 도토리를 땅에 묻고 찾지 못해서 땅 속에서 시간이 지나 싹을 틔우고 참나무가 되어 그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먹으며 산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미물이지만 이런 도토리의 삶이 어쩌면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행동이긴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자연의

생태계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람쥐는 자기가 한 게 다음에 먼 훗날 자기가 한 행위로 다른 다람쥐가 그 도토리에서 생긴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먹고 살 거라는 사실을 알고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다람쥐 입장에서는 자기가 아둔해서 단지 찾지 못해서 일어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람쥐가 찾아서 먹을 수가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자연계에 더 많은 참나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바로 마치 하나의 밀알이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이치와도 같지 않을까요?

 

저는 복음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을 복음처럼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그래도 다람쥐는 땅에 숨겨놓았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물론 자기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다른 다람쥐에게 이로움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 인간의 삶을 비교해보면 어찌 보면 우리가 다람쥐보다 더 어리석은 삶을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람쥐가 땅에 도토리를 묻어두는 것을 보고 저는 이게 사람들이 자기만의 욕심을 위해서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는 거랑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이런 거는 다람쥐보다는 수거될 확률이 높겠지만 외부에 좋은 열매를 맺는 결실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람쥐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때로는 어쩌면 다람쥐처럼 자기가 한 행위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좋은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람에게 극단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치매와 같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완화해서 본다면 깜찍한 건망증 정도로 여긴다면 이런 건망증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다람쥐의 이런 일련의 일을 보면서 성경과 불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이 문득 생각납니다. 은혜를 베풀어서도 그걸 베풀었다고 하는 생각 이런 걸 우리는 비유적으로 자기의 자선을 드러내 보여서 나팔을 스스로 불어 이미 자기가 세상에 베푼 자선에 대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클 텐데 이미 자기의 선행에 대해 스스로 나팔을 불었으니 하늘에서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고 성경은 알려줍니다.

 

이와 더불어 불교에서는 보시도 여러 가지 보시가 있는데 예를 들어 법보시 이런 거는 우리로 말하자면 말씀을 전하는 선교에 해당될 겁니다. 아무튼 여러 보시 중에 최고의 보시가 무주상보시라는 게 있습니다. 이건 성경의 가르침과 아주 흡사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저도 예전에 집에 오시는 스님에게서 귀동냥으로 들어 아는 것입니다만 남에게 뭔가를 베풀었어도 자기 자신이 내가 남에게 베풀어주었다는 그런 사실도 인식할 수 없는 그런 보시를 했을 때 그 공덕이 최고의 공덕이 되는 보시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람쥐와 도토리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제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 같습니다.

 

비록 다람쥐는 그런 의도를 하고 한 건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다람쥐는 어쩌면 자신의 행위가 무주상보시를 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공덕 때문에 자기가 사는 동안 불교의 논리로 보면 자기의 공덕을 당겨서 받는 거와 비슷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대림은 그냥 한자 의미 그대로 풀이하자면 임을 기다린다는 것이 되겠죠. 근데 이 기다림의 어원은 희랍어에서 표현하기를 영어로 표현한다면 영어의 addvent에 해당한다고 하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어느 신부님의 글에서 봤습니다.

 

저는 희랍어를 모르지만 그분이 설명하시는 언어적인 의미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 어드벤트는 한국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도래가 가장 대표적인 뜻입니다. 신부님 설명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이 영어에 대한 뜻은 설명하시지는 않았지만 기다림은 도래 즉 다시 말하면 이미 미리 선취, 앞당긴다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설명을 듣는 순간 제 머리속에서 재미난 상상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조금 전 다람쥐가 이미 자기가 사는 동안 먹고 사는 도토리가 바로 자신이 이 세상에 살면서 했던 그 공덕의 혜택을 이미 이 세상에서 먼저 누리는 거랑 연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불교의 내용을 조금 언급하긴 했지만 그 가르침은 우리의 가르침과는 조금 상이한 면이 있지만 교훈만은 좋은 것 같습니다.

 

대림은 단순한 기다림일 수도 있겠지만 물리적인 시간만 흘러 자연히 다가오는 대림을 맞이하는 것도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분신과도 같은 분을 기다림에 있어서는 우리가 회개를 통해 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람쥐와 토토리에 얽힌 자연의 이야기 속에 우리 신앙인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와 이와 관련해서 제가 대림과 관련된 설명을 곁들인 부분을 함께 묵상해보시면 나름 의미 있는 묵상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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