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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판단의 잣대는 예수님 -사람이 먼저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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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1 조회수77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1.21.화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사무상16,1-13 마르2,23-28 

 

판단의 잣대는 예수님

-사람이 먼저다-  

 

오늘은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성인성녀를 만날 때 ‘참 사람’ 하나 만나는 느낌입니다. 성녀는 참 전설적인 일화가 많은 분입니다. 258년경 13세 어린 나이에 순교한 성녀는 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동방 정교회, 영미 루타교에서도 존경받는 성녀입니다. 동정 순교자들 중에 일찍부터 성녀 아녜스처럼 커다란 공경을 받는 분도 없습니다.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 후렴과 저녁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 역시 성녀의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압축하는 듯, 두 고백이 참 아름답고 감동스러웠습니다.

 

-“보라, 나는 내가 갈망하는 것을 보았고, 희망하는 것을 얻었으며, 지상에서 온 마음으로 사랑한 분을 만났도다.”-

 

-“성녀 아녜스는 두 팔을 벌리고 ‘내가 사랑하고 찾으며 갈망하던 거룩하신 성부여, 당신께 나아 가나이다.’하고 기도하였도다.”-

 

성인성녀들은 우리 믿는 이들에겐 영원한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참으로 약한 우리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며 참사람으로 잘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합니다. 어제 외출하던 중 배밭에서 일하던 수사님과 대화중 한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인부를 한 분 구했는데 참 사람 구하기 힘듭니다. 무엇을 하려 해도 사람이 있어야지요.”

 

일할 사람 구하기가 참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자연 환경 좋고, 건물 좋고, 전통이 좋아도, 정작 그 중심인 사람이 없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선물이고 보물입니다. 아무리 수도원이 좋아도 수도자가 없으면 망합니다. 하느님이 보내 주셔야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수도자를 스카우트 할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돈 많아도 사람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참 좋은 사람보다 더 귀한 선물은 보물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자 보물같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참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아끼고 돌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녁식사시 성규 독서중 줄줄이 마음에 와닿은 내용입니다.

 

-“주정뱅이가 되지 마라. 과식가가 되지 마라. 잠꾸러기가 되지 마라. 게으름뱅이가 되지 마라. 불평쟁이가 되지 마라. 험담꾼이 되지 마라.”-

 

아주 구체적 지침들입니다. 저절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이런 부정적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치열하고 항구한 노력이 있어 참 좋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아껴야 할 사람들이요 각자의 성소聖召를 충실히 보존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사람이 판단의 잣대입니다.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입니다. 하느님 중심이란 말은 그대로 사람 중심이란 말과 통합니다. 판단의 잣대는 율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랑과 사람이 발음도 비슷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비로소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예수님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바리사이들은 판단의 잣대가 안식일 법이지만, 예수님의 판단의 잣대는 사람입니다. 안식일에 밀이삭을 뜯는 당신의 제자들을 꾸짖는 바리사이들에게 주님은 다윗의 예를 들면서 제자들을 전적으로 두둔합니다. 

 

예수님의 판단의 잣대는 안식일 법이 아니라 배고픈 제자들의 현실이었습니다. 배고픈 제자들을 판단의 잣대로 하면 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판단의 잣대는 사람이자 동시에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율법을 상대화시키는 절대적 법이 사랑의 법이요, 바로 그 배경에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모든 판단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경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진지하게 물으면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앞서 잠시 인용한 다윗에 대해 알아 봅니다. 오늘 복음중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다윗의 이런 자신감과 당당한 자유로운 처신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다윗과 예수님의 이 자유로움은 어디서 기인할까요?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깊은 자각이 있어 이런 자유로움입니다. 아이들의 예를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부모의 신뢰와 사랑을 담뿍 받고 있고, 그 사실을 아는 아이들은 얼마나 밝고 구김살이 없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당당한지요. 

 

이런 부모의 신뢰와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삼 답은 신뢰와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다윗이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이런 신뢰와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있기에 이리도 자유로운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상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주님의 영이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다윗에게 머물렀다.-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게 된 다윗입니다. 다윗뿐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가 ‘신神의 한 수手’ 같이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참으로 이를 깨달아야 자기를 귀히 여길뿐 아니라 이웃 형제들을 신뢰하고 사랑합니다. 누구든 참으로 신뢰하고 사랑할 때 회개합니다. 변화합니다. 참으로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자유롭습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의 표지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미사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에페1,17-18).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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