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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열왕12,26-32; 1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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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5 조회수555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열왕12,26-32; 13,33-34)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27)

 

오늘 독서 본문은 북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예로보암의 불신앙적 생각을 보여준다.

"내가 너를 데려다가 네가 원하는 모든 지역을 다스리게 하리니,너는 이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나의 종 다윗이 한 것처럼 내가 명령하는 바를 모두 귀담아듣고,나의 길을 걸으며   내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고 내 규정과 계명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또한 내가 다윗에게 세워 준 것처럼 너에게도 굳건한 집안을 세워 주고, 이스라엘을 너에게 주겠다."(1열왕 11, 37-38)

 

여기서 "다윗 집안" 의 '집'은 '왕조'(2사무7,11)를 지칭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예로보암에게 당신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그에게도 다윗과 같이 견고한 집을 세워주실 거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예로보암은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후 자신을 배반하고, 다시 다윗 왕조의 계승자인 르하브암을 왕으로 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자신이 왕이 된 모든 과정을 철저히 인간적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하느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세우심을 통해 왕이 되고도 하느님을 거부했던 예로보암의 집안은 결국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 그 아들대에 이르러 몰락하고, 왕위는 다른 가문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14,10-18) 예로보암은 자신이 현재 다스리고 있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 속한 백성들의 행보에 대단히 초조해 했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 갔다가" (27)

 

여기서 '제사', '제물' (창세31,54 ; 에제39,17)을 의미하는 '제바흐' (zebah)의 복수형은 각종 절기에 드려지는 모든 종류의 제사와 제물을 아우르는 단어이다.

율법에 의하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세 번,  즉 무교절, 수확절(추수감사절,오순절,맥추절 ; 가나안 땅에 이주하여 첫 농사를 짓고 수확한 것을 감사의 제물로 봉헌),  추수절(장막절, 초막절 ; 40년 동안의 광야에서의 장막 생활을 기념)을 지켜 제사를 지내야 했는데(탈출 23,14-17), 오직 하느님께서 택하신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했다.(신명12,11.13.14)

 

즉 예로보암은 이렇게 신명기의 말씀에 따라,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게 되면, 결국 그들의 마음이 다윗 왕조로 기울어 질 것이라고 염려했던 것이다. 예배의 장소 예루살렘은,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일 뿐 아니라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다.

 

예로보암은 이러한 장소에 자신의 백성이 하느님을 예배하러 일년에 세 번씩 가다보면, 분명 마음이 르하브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로보암의 판단은 인각적인 생각이요, 일종의 열등감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는 하느님의 약속(11,38)을 받은 자로서, 그 약속을 신뢰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는, 그의 생각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의 집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왕조의 견고함을 보장하는 축복의 통로였다.

 

이런 의미에서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대한 그의 태도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의 왕조에 대한 축복을 판가름 하는 척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로보암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막는 잘못된 종교정책을 수행하여 그의 불신앙을 드러냄으로 하느님의 축복과 멀어지게 되었고, 그의 왕조 역시 제대로 세워지지도 못한 채, 그 아들대에서 피비린내 나는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예루살렘 성전이 북부 이스라엘에 비해 남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다'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지리적 여건에 의한 관용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예루살렘이 비록 남쪽에 있었지만, 대략 해발 700m 에 해당하는 고지대에 위치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루카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실 때, 예루살렘보다 예리코가 북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그리로 내려갔다고 표현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고지대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지정학적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보다 예루살렘의 수위성을 드러내는 표현에 더 가깝다. 

즉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이 있었기에, 예루살렘이 다른 도시들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27)

 

여기서 '자기들의 주군'이라는 표현은, 아직도 북부 이스라엘 백성의 통치자가 르하브암임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아직도 예로보암 자신이 북부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하느님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왕이라는 생각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예로보암은 자신이 왕이 된 일이 하느님께로부터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북부 이스라엘 지파들이 본래 자기들의 주권자였던 르하브암에 대하여 반감을 가져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하였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예로보암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을, 오로지 인간적 측면에서만 이해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왕권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해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유다 임금 르하브암" 이란 표현을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북부 이스라엘 왕 예로보암이 남부 유다 왕 르하브암을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역사의 주관자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상황만을 바라볼 경우 늘 분안함에 떨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계약(언약)을 굳게 붙잡는 자는 흔들리는 불안한 현실 앞에서도,변함없이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히브11,1-38참조)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28-30)


12장 28절에서 33절까지는, 예로보암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즉 민심의 이반을 막고 왕국의 분단을 고착화하기 위하여, 악한 종교정책을 시행한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임금은 궁리끝에' 라는 말은 예로보암 자신이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예로보암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도모하는데, 이는 결국 그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인본주의적 인물임을 보여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  It is too much for you to go up to Jerusalem.


사실 예루살렘은 북부 이스라엘로부터 매우 멀었고, 높은 산악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율법이 정한대로 일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탈출23,14-17)은 매우 고되고 힘겨울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예로보암의 제안은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북부 지파 사람들에게는충분한 공감을 얻을만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하느님께서 금하신 행위라는데 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한 장소, 즉 중앙 성소에서만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셨다.(신명12,11.13.14)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29)


출애굽 당시 아론이 백성들의 요구대로 금으로 된 송아지 형상을 만든 후, 그들에게 했던 말과 동일한 말이 나온다.(탈출32,4) 이처럼 송아지 형상을 보고 하느님이라 말한 이유는, 이교도처럼 송아지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송아지로 형상화하였기 때문이다.(탈출20,4)


예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둔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베텔'(bethel)은 '집'(1사무1,7)이란 뜻을 가진 '빠이트'(bait)에 '하느님'(창세14,18)을 뜻하는 '엘'(El)이 결합된 헝태로,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9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북부 이스라엘의 최남단 즉 남부 유다와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베텔은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았던 유서 깊은 곳이며(창세12,8 ; 38,11.19), 판관시대에는 계약궤가 머물기도 했고(판관20,26), 사무엘 시대에는 사무엘이 해마다 순회하는 장소 중 하나로 종교의 중심지를 이루기도 했다.(1사무7,16 ; 10,3)

 

또한 '단' (dan)은 '심판하다'(창세47,16), '다스리다'(즈카3,7)라는 뜻을 가진 '띤'(din)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북부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던 성읍으로, 초기에는 '레셈'(여호19,47), 혹은 '라이스'(판관18,29)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단은 판관시대에는 그 자체의 신당과 사제를 소유했던 곳으로서, 사제직이 모세의 후손들에 의해 이어져 가고 있었다.(판관19,30.31) 즉 단은 과거로부터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도시였다.

 

이처럼 예로보암이 베텔과 단을 북부 이스라엘의 예배 중심지로 특별히 택한 이유는 이곳이 종교적으로 유래가 깊은 성읍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두 곳을 예배의 장소로 지정하여, 백성들이 편리한 대로 선택하여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했는데, 이것은 예로보암이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 효율성과 편리성만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이 일이 죄가 되었다." (30)

 

'이 일' 예로보암이 베텔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아닌 그곳에서 제사드리게 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탈출20,4)과 택하신 장소에서만 제사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신명12,5)을 정면으로 어긴 대단히 중대한 범죄였다.


'죄가'로 번역된 '레핫타트'(lehatath)는 '표적을 빗맞추다', '길을 잃다' 라는 뜻을 지닌 '하타'(hata)에서 유래된 명사로, '죄'(예레4,3), '죄악'(이사5,18)이라는 뜻을 가진 '핫티아'(hatah)에 '~에게'라는 뜻을 가진 불분리 전치사 '레'(le)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단어는, 아벨을 죽인 카인의 행위(창세4,7), 소돔과 고모라에 범람한 죄악인 음란(창세8,22)과 일반적으로 책임이 따르는 사회에서의 제반 악한 행위들을 가리킬 때에도(민수5,6)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문처럼 우상 숭배와 연계되어 사용되면, 이는 하느님의 강한 분노와 질투를 유발시키는 강렬한 죄악, 심지어 하느님께서 이에 연루된 모든 이들을 멸하기로 결심하실 정도로 가장 크게 노하시는 죄악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탈출32,32)


"임금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새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32)

 

예로보암의 죄악들이 계속 기술된다. 예로보암이 지은 것으로 기술되는 '산당'(bait bama ; 바이트 바마)에서, '빠마'는 높은 곳(아모4,13)이란 뜻을 가지므로,문자적으로는 '높은 곳에 있는 집'이다. 

이것은 예배를 위해 야외에 마련된 성소로서, 산 위에(11,7 ; 2열왕16,4) 뿐만 아니라 성읍들(13,32)과 골짜기에도(예레7,31 ; 에제6,3) 산재해 있었다.

 

이러한 산당은 하느님께서 제시하신 중앙 성소의 원리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신명12,1-14), 종교 혼합주의의 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를 금하셨다. (신명12,2-4)


또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함으로,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사제제도까지 짓밟았다. 율법에서는 오로지 레위지파의 아론 자손만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탈출28,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로보함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제로 받아 주었다. 

예로보암은 정통성을 지닌 레위지파 사제들을 모두 그 직분에서 해임하고(2역대11,13.14), 하느님의 율법에 무지하고 자기의 종교정책에 동조하는 자들로 그 자리를 채웠던 것이다. 이러한 예로보암의 종교정책에 따라,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으로 더욱 우민화되어, 계속해서 잘못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 다음 '축제'로 번역된 '하그'(hag)는 '절기'(탈출10,9 ; 신명16,10 ; 2역대5,3)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보다 특수하게는 순례자들이 지키는 절기를 지칭한다. 그런데 예로보암은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한다.

'하그'란 말은 무교절(신명16,16)이나 주간절(신명16,10 ; 수확절, 추수감사절, 맥추절, 초실절)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되지만, 여기서 '유다의 절기'란 한 해의 추수를 기념하는축제 절기인 장막절(초막절, 추수절 ; 8,2 ; 레위23,23-26)을 가리킨다.


율법에는 장막절은 그 정해진 날짜를 따라 7월 15일에 지켜야 했다. 그러나 예로보암은 이를 무시하고, 그로부터 한달 후인 8월 15일(여덟째 달 열다샛날)로 정했다. 예로보암이 다른 절기에 비해,장막절의 날짜를  이처럼 연기했던 이유는 종교적인 제의는 모방하면서, 백성들의 현실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장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추수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데, 끝나갈 무렵 다시 장막절이 시작됨으로 인해 적잖은 부담이 있었다.

 

예로보암은 하느님의 율법에 따른 전통적인 장막절의 시기를 한달 늦춤으로써, 남부 유다의 종교와 차별성을 보이면서, 동시에 백성들의 편의를 도모함으로, 백성들의 시각에는 더 나아 보일만한 나름대로의 완벽한 종교 체계를 갖추려고 하였다.

그러나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이같은 예로보암의  결정 자체가, 인간적 편의가 아닌 하느님에 의해서 제정되고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는 신적 기원과 거룩함을 무시하는망령된 처사로 평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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