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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눈으로/'마음이 가난한' 존재에 대하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0 조회수1,401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음이 가난한' 존재에 대하여

창세기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창조물을

보시고 "참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씀해 주신다. 하느님은 그 선언에

우리도 참여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 "하느님의 세상은 참 좋다!"

선언의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유혹의 원천인 그 세상으로부터

되풀이해서 도망치려고 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탈주 성향'은 분명히 미숙한 것이다.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하나의 기묘한 형태이다.

하느님의 선물들과 그분의 세상을

부인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복음서 속의

가난한 사람 즉 다른 사람이 훔쳐 가지

못하도록 자신의 달란트를 땅 속에 깊이

파묻은 사람을 상기시킨다.

여러분의 가장 귀중한 열 가지

축복의 일람표를 만든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 될까?

여러분의 생각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고 하느님이

언제나 간직하도록 허용해

주기를 희망하는 선물들의 일람표를

여러분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믿음의 선물 : 하느님에 대한 나의 믿음과

내 삶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의미를 끄집어 낸 모든 것.

정신적인 건강 :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는 것은 나에게는 의미심장한

삶의 종말과도 같다.

육체적인 건강 : 건강하게 느낄 때

나는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아픈' 날에는 그 산이 나를 짓누른다.

예수회의 회원 자격 : 모든 사람에게는

소속감이 필요하다.

예수회는 내가 뿌리를 내린 장소이다.

나의 사제직 : 나 자신을 단 한 마디로

묘사한다면 "나는 사제이다!" 일 것이다.

나의 특별한 친구들 : 그 친구들과

함께라면 나는 완전히 마음을 열 수

있으며 완전한 안전감을 느낄 수 있다.

음악과 유머 : 음악과 웃음이 없는 인생은

나에게는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좋은 평판 :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내 인생을 사랑의 행위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참다운 의도에 대하여

일반적인 오해가 발생할 경우

살아가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성공 : 나는 정말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다가 실패로 끝난 사람들에게

매우 안쓰러움을 느낀다.

아름다움 : 아름다움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계절,

아름다운 별들은 나에게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반영시켜 준다.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일람표를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는 하느님의

세상의 좋은 사물들을 그것들에 의해서

통제받지 않은 채 사용하고 즐기는 데 있다.

여러분은 사물을 소유하는 것과

사물한테 소유당하는 것의 차이를

쉽게 이해했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동시대의

사람들과 토론하고 계신다.

그들은 자신들은 "자유민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다.“

고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렇지 않으며, 그들의 독재자는

그들의 내면에 존재한다고 말씀하신다.

, 그들의 소유뮬에 대한 걱정,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 죄 등이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보장하신다.

"너희가 나와 나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할 진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하느님의

집으로 가기 위해 이 세상을

통과한다는 진리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좋은

사물들을 이용하고 즐기도록 우리를

격려하시는데 그것들이 우리를 소우하거나

통제하는 힘은 결코 주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느님의 좋은 사물들을

너무 탐닉하게 된 나머지 그 좋은

사물들 때문에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예수님은 되풀이해서 우리에게

이런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소유물을 많이 갖게 되면,

어떤 형태의 애착심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을

암시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애착심은 최종적인

운명에 대한 감각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다시 나의 일람표로

돌아가서 물어 본다.

이 항목들이 나를 통제할까?

만일 하느님이 그 중에서 하나를

포기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그분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서서히 자유로운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애착심을 재평가하게 만들어 준다.

내 손은 차츰 하느님을 향하여

열어 가고 있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항상 내가 모든 것들을

뒤에 남겨 두고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

나는 죽음이 찾아왔을 때,

주먹을 쥐지 않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마침내 내가 자유롭게 되는 것은

죽을 때뿐일지도 모른다.

믿음의 눈으로

(존 파웰 지음 / 정성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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