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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산교구 김차규 필립보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빌면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0 조회수1,147 추천수1 반대(0) 신고

 

목요일 오전에 본당 다음 카페에서 신부님께서 글을 하나 올리셨습니다. 글을 보다가 중간에 한 원로 사제의 선종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교구에서는 지금 코로나로 인해 간소하게 치르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하시면서 예전처럼 그런 기도를 할 수가 없으니 각자 개인이 집에서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바로 교구 홈페이지를 찾아봤습니다.

 

장례미사가 오늘 있다는 공지입니다. 원칙적으로 하면 내일 해야 하는데 오늘 장지에서 들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2일장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늦게 한 아이의 수업이 있어서 9시 경에 수업을 마친 후 오늘 신부님의 장례미사와 장지까지 참석할 수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괜찮은데 교구차원에서 간소하게 하신다고 하셔서 저희 본당에 계셨고 지금은 사목국장 신부님으로 계신 신부님께 혹시 참석가능한지 문자를 드렸습니다. 어제 제가 사실 감기 기운이 몹시 심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집에서 원래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서 그냥 오늘 새벽에 마침 교황님의 권고 사항인 빛의신비 묵주기도를 5시에 다 함께 바치자는 공고를 보고 제가 본당 카페에도 소식을 올리고 다른 여타 밴드에도 이런 사실을 공유를 해드렸습니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쉬다가 그만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 보니 새벽 2시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폰을 보니 신부님께서 문자 답장을 주셨습니다. 장례미사와 장지에 갈 수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깬 마당에 복음 오늘 복음과 독서를 읽고 나름 묵상하다가 미사 책에다가 메모를 하며 어느 정도 윤곽을 정하고 글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머리가 너무 아파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오늘 장지 갔다 와 하려고 했습니다. 혹시 몰라 440분에 알람을 다시 맞추고 쉬었습니다.

 

5시에 맞춰 사전에 교황님의 권고대로 지향을 올린 다음 5시 정각에 묵주기도를 하니 딱 20분에 마쳤습니다. 새벽에 깼을 때 종합감기약을 하나 먹었습니다. 오늘 장지까지 참석하려면 그렇게 했습니다. 묵주기도을 바친 후에 알람을 장례미사가 10시라서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에 맞추고 눈을 부친 후에 가는데 차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그만 미사를 놓쳤습니다.

 

교구청으로 가다가 중간에 잘못하면 장지에도 펑크가 날지 몰라 말머리를 다시 경남 고성에 있는 성직자 묘역으로 돌렸습니다. 마침 도착하니 몇몇 신부님들께서 미리 와 계신 분도 계셨습니다.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님을 모신 차가 도착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워서 신부님을 이제 갓 서품받으신 신부님들이 운구를 해서 신부님이 들어가실 곳까지 뒤를 이어 따랐습니다. 오늘 보니 전 교구장님이신 박정일 미카엘 주교님께서도 참석하셨습니다. 이미 신부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일꾼들이 다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고 하관 예절을 한 후에 바로 하관을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신부님과의 특별한 인연은 없습니다. 이 신부님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영세를 받기 전에 이미 저희 본당에서 사목하신 신부님이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독일에서 오랜 세월 교포사목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10년 남짓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당에서 복사를 서면서 어쩌다가 복사대장인 형제님으로부터 이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신부님과 인연이 없음에도 꼭 오고 싶은 이유가 하나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이 신부님께서 저희 본당에 장례미사가 있어서셔 그때 오셨는데 그때 제가 복사를 섰습니다. 그리고 강론을 하셨습니다. 그때 실제 신부님을 가까이서 뵐 수가 있었습니다. 실제 오늘 신부님 장지까지 가고 싶은 이유는 제 돌아가신 부친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사실 예전에 이 신부님을 뵐 때 아버지를 뵙는 그런 기분이라 그래서 나름 꼭 이분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장지에서 예절이 진행되는 도중에 신부님의 관을 보면서 신부님의 관에 손이라도 한 번 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런 걸 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관을 하고 제일 먼저 아들 신부님께서 헌화를 하신 후에 돌아가면서 신부님들도 헌화를 하신 후에 흙을 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나와 해도 된다고 하셔서 거의 관이 다 덮힐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하관 예절을 집전하시는 총대리 신부님께 말씀이나 한번 드려봤습니다.

 

신부님, 제가 오늘 온 것은 이 신부님이 제 부친과 너무나도 닮아서 마치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것 같은 마음이라 관에 손 한번 대어 봐도 되는지 여쭤 보니 해도 된다고 하셔서 겨우 무릎을 꿇고 간신히 조금 남아 있는 관 모퉁이에 손을 잠시 댈 수가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신부님의 영혼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일어서니 일꾼들이 흙을 더 붓고 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때 총대리 신부님께서 들어가 밟아드려라고 하시길래 제가 신부님의 몸 위에 올라가는 게 어떨지 몰라 난감했는데 괜찮다고 하시면서 하라고 하셔서 흙을 다져드렸습니다. 이걸로 오늘 일은 마무리되었다고 일꾼이 말하시길래 주위 모든 분들이 자리를 떴습니다.

 

오늘 저는 이 신부님과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신부님에 대해 평소에 들은 소식을 봤을 때 인간적으로 신부님을 떠나서 이 신부님을 바라볼 때 가슴 아픈 사연을 알고 있었던 게 있습니다. 그건 여기서 말씀드릴 사정은 아니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것도 제가 오늘 장지에 오려고 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오늘 장지에서 느낀 게 있습니다. 사실 이 느낌을 전하고 싶어서 글을 올리는 것인데 너무 사설이 길었습니다. 장지에서 신부님이 안장될 곳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 때 제 옆에 어떤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이분을 사진으로만 뵌 분이었습니다.

이분도 저희 본당에서 사목하신 분이셨습니다. 또 제가 서 있는 맞은 편에 어떤 신부님이 한분 따로 서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표정을 봤습니다.

 

신부님의 표정에 뭔가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고스란히 얼굴에 비장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아들 신부님이셨습니다. 아들 신부님이라는 걸 아는 순간 이때 이 신부님의 표정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셨는지를 조금은 이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관된 신부님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맞은 편으로 건너 갔습니다. 이때 저희 본당에서 사목하신 신부님께서 헌화를 하시려고 나오시는데 눈에 눈물이 흐르는 걸 봤습니다. 이 신부님도 적지 않은 연세이고 은퇴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노 신부님의 눈물을 보니 제 목이 메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작은 소리로 울먹이는 소리로 신부님을 향해 한 말씀 하셨습니다. “신부님, 잘 가세요.”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소리를 듣는데 정말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 순간만은 그 신부님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애절한 목소리였습니다.

 

지금까지 영세를 받은 후 신부님들의 장례미사를 참석하면서 1년쯤 되었을 때인지 한 번 교구에서 한 신부님의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을 봤습니다. 저는 그때 그 신부님의 눈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그 느낌을 본당 주보에 글을 게제했습니다.

 

그 이후에 오늘 이 신부님의 눈물을 봤습니다. 이 신부님의 성함은 구병진 신부님이십니다. 제가 세례명은 확실하게 잘 모르지만 아마 제 세례명과 같은 걸로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품으로 가는 것이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이상 이 세상에서 헤어진다는 사실에 슬픈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만약 이런 감정도 초월해야 한다면 그건 어쩌면 너무나도 가혹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 아들 신부님들께서 참석하셨다고 하십니다. 대표로 제일 큰 아들 신부님께서 인사 말씀 하나 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 신부님이시지만 실제 그렇게 많이 만나뵐 수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선종하신 신부님은 독일에서 오랜 세월 계셨고 또 아들 신부님은 군종 신부로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세계로 다니시고, 아들은 국내에서 여러 지역을 다니시니 서로 잘 만나 뵐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도 참 슬펐습니다. 영으로 맺은 자식도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로서 정을 나눌 시간이 이승에서 그렇게 가질 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련했습니다. 아무쪼록 저랑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단순히 제 부친과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을 지니신 분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늘 장지에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2일장을 한 것도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씨는 좋았습니다. 약간 바람은 불었지만요.

 

오늘 자가로 운전을 하며 장지로 가면서 든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코로나 때문에 많은 기도를 받고 가시지 못한 부분도 생각하니 그것도 참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아렸습니다.

 

아무튼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하느님 자비의 품에 신부님의 영혼이 편히 쉬시길 기도드릴 뿐입니다. 김차규 필립보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그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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