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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4 조회수1,365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의 스토리는 잘 아는 내용임에도 대략 20회 정도 봉독했습니다. 스토리는 알지만 어디에다가 초점을 두고 묵상을 해야 할지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오늘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예전에도 성경은 참 오묘하다는 걸 알았지만 자료를 찾고 정리를 하면서 느낀 게 있었습니다. 특히 모세오경의 내용이 복음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루한 내용처럼 보일 수 있는 레위기도 그냥 허투루 성경에 기록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입체적으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재작년에 교구에서 성경 잔치를 하는 과정에 성경 골든벨 때문에 모세오경을 단기간이었지만 집중적으로 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는 안 나오지만 복음에 나오는 내용을 확장해서 이해를 하려면 모세오경과 요한복음 10, 에페소서의 내용까지 서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데 이걸 이해를 하게 되면 더 선명하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묵상글을 신부님의 권유로 시도를 했지만 정말 말씀이 재미 있습니다.

 

생계만 보장되는 수단이 있다면 평생 말씀만 공부해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한번 이런 묘미에 빠져보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호기심을 가지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말씀드려 봅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의 포인트를 이런 주제로 잡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병든 사람이다.’라는 관점을 주된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축제를 지키시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전 옆에는 벳자타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섯 개의 주랑이 있는데 이곳에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습니다.

 

이 연못은 성전 가까이에 있는데 그것도 성전 양 문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양 문은 문이 양쪽으로 나 있는 그런 양문이 아니네요. 영어성경을 보면 이때 양이 동물 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게 되면 확실하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9절에 나옵니다. 이 연못의 이름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많은 병자들 중에서 38년 동안이나 앓아 누워 있었던 병자가 병에서 치유된 이야기가 복음의 소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보시고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전에 이 대목에 대해 본당에서 강론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셨는지 손님 신부님이셨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이 물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병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걸 우리가 생각했을 때 좀 이상한 표현이지 않나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표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배가 고픈 사람이 있는데 뭐 좀 먹고 싶니? 하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당연한 내용을 물어보신다는 그런 의미일 겁니다.

 

근데 이 병자는 38년이나 앓아 누워 있었으니 그게 너무나 간절한 마음일 텐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연못에서 연못 물이 출렁거릴 때 누군가가 이 연못에 자신을 넣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건강이 회복될 수가 있을 텐데 그러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긴 가지만 먼저 가야 낫게 되는데 이 사람의 상태가 다른 사람들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았나 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보다 먼저 가기 때문에 자기는 가더라도 회복이 될 기회를 38년 동안이나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곳에 많은 병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병자들 속에서도 더 아웃사이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어쩌면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이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안 된 사람과 예수님이 서로 만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못한 게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한탄스럽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에는 이게 더 급선무라는 생각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고 말씀하시자 바로 자리를 틀고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말씀으로 치유를 해 주신 것입니다. 병자가 병에서 회복한 것은 육체적인 병도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영혼의 병도 회복한다는 의미로 이해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지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나중에 성전에서 다시 이 병자를 예수님께서 만나시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시면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주일 복음에서도 나왔습니다. 눈먼 거지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거지가 눈먼 게 누구의 죄 때문에 그런지를 질문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건 누구의 죄와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잖습니까? 병과 죄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신 의미를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육신의 건강 상태보다는 영혼의 죄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유추를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복음에서는 유다인들이 오늘 안식일이라는 걸 강조를 하기만 합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트집삼아 예수님을 박해할 구실을 찾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가 오늘 복음에서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영혼이 병든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때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병자에게 자기의 병을 낫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이때 이 사람은 자기를 낫게 한 분이 막연한 어떤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고 또 주위에 군중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대로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군중에 가려서 말을 하신 분이 어떤 분이라는 건 알 수가 있지만 그분이 자신의 병을 치유하시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그랬습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복음에서는 14절에 그냥 단순히 그 뒤에라고만 언급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한동안의 시간이 지난 그런 의미로 나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성전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시간적인 간격이 있었다는 걸 왜 말하는 것일까?를 나름 생각했습니다.

 

복음사가가 이렇게 기술하려는 데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경과된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신 말씀을 성전에서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공간이 성전이라는 장소적인 공간에서 또 내용이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고 죄라는 내용을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이때 이 병자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성전에서 만났다고 하는 이 표현이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니 하느님 즉 예수님을 만났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다는 사실을 언급한 의도가 결국 이 부분에서 자기의 병을 낫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걸 유다인들에게 알렸다고 표현을 한 걸로 봐서는 바로 예수님이 이젠 누구이신지를 알아봤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병자는 자신의 병든 상태가 낫게 됨으로써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영혼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할 수가 있을 듯합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를 범하니 박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2절에 나오는 표현 바로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저는 이 표현이 육체적인 병자의 모습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영혼도 이처럼 말라비틀어져 있는 영혼의 상태라면 이 병자처럼 평생 앓으면서 병든 영혼으로 살아가는 그런 영혼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비틀어진 것을 바로 잡아야 건강한 영혼으로 살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저에게 있어서 비틀어진 부분이 어디인지 한번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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