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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때와 불신앙의 때 (요한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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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7 조회수13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  3.  27. 복음중에서 

신앙의 때와 불신앙의 때

(요한7:1-10)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3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이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4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남몰래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런 일들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5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라도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8 너희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라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다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갈릴래아에 머무르셨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거의 육 개월 가량을 머무시며 기적과 표징을 행하셨습니다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6장의 사건들의 배경이 유월절이었지요유대인들의 유월절은 우리가 쓰는 태양력으로 3월과 4월 사이입니다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초막절은 태양력으로 9월과 10월사이니까 얼추 육개월이 맞지요주님은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갈릴래아에서 머무셨을까요?

오늘 본문 1절은 예수님께서 왜 오랜 시간 갈릴래아에서만 머무셨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요한7:1) 1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갈릴래아에만 머물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다고 그들이 주님을 죽이려 한 것입니까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지요?

우리는 6장에서 그 이유가 예수님께서 당신이 이 세상의 빵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영생의 빵인 하늘의 빵을 주러오셨다고 말씀하시면 서 그 하늘의 빵은 율법을 지키는 등의 인간 측의 어떠한 근거도 배제(排除)되는 오직 하느님의 선택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 중의 많은 자들을 포함한 군중들이 주님을 떠나갔습니다.(요한6:66)

다른 말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신들의 선한 행위가 예수님에 의해 묵살이 되자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유대인들이 안식일 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주님께 율법을 들어 경고를 했으나 주님은 그들의 말을 묵살 해 버리셨지요그 때 그들이 주님을 죽이려 모의를 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그들을 죄인이라 부르셨고 그들의 행사를 악하다고 지적을 하셨습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민이며 자신들만이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주님이 그러한 자신들을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회개하라고 그들의 죄인 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요한7:7)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의 세상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자들이 정작 하느님을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주님은 그렇게 이 세상의 힘을 얻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이기적이고 세상 적이고 물질적이며 자기 구원적인 신앙을 가리켜 이라 말씀하시고 그들을 세상이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세상들이 참 많습니다그들이 비록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유익과 명성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의 행사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죄인들은 보이지 않는 영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빵과 자신들의 행위에 근거한 자기 자랑에만 관심이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그러한 세상적 요구 앞에서는 그 어떤 기적도 예수님을 믿게 하는 데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을 미워하고 있고 심지어 죽이려 하는 자들 앞에서 주님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빵 다섯 개로 수만 명이 배를 채웠습니다풍랑이 이는 바다를 맨몸으로 걸으시기도 했습니다수많은 병자들이 그들의 눈앞에서 완치가 되었고 심지어 죽은 자가 살아나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것까지 보았습니다그런데 그러한 기적이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그러한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이 그러한 기적적인 힘을 사용하여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 줄 마음이 전혀 없는 분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 분을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요한11:47~48,53)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지금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나흘 동안 썩어가고 있었던 죽은 나자로를 살리신 직후의 장면입니다우리가 생각하기에 죽은 자를 살려내는 엄청난 기적을 본 사람들은 그 즉시 그 기적을 일으킨 사람 앞에 무릎을 꿇을 것 같지요아닙니다죄인들은 아무리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다 해도 그 기적이 자기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을 때 그들은 그 어떤 기적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그게 죄의 본성입니다죽은 자가 살아 나와도 소용없습니다.

 

(루가16:27~31)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아브라함 할아버지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가 살아 나와서 천국과 지옥이 진짜 있다고 전하고 다닌다 할지라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데에 기적이 필요하다고 우깁니다그들이 인도하는 집회에 가보면 가관이 아닙니다들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병자들이 낫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하느님께서 기적을 구원의 도구로 방법으로 쓰신다는 것 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죄인들이 그러한 기적 앞에서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오히려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이렇게 선명하 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항상 그러한 기적들이 성도의 인생에도 나타나서 문제가 해결되고 풍요가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그렇게 그리스도교의 기적과 신비는 늘 기복주의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그리고 그러한 신비주의와 기복주의는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모두 진리라는 프래그머티즘으로 둔갑하기도합니다그렇게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그러한 시대정신들은 사실 자기가 우주와 역사의 왕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죄 성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자기 증명과 자기 자랑자신의 필요와 유용성과 유익 등의 세상의 빵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그 어떤 기적 앞에서도 요지부동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그렇게 하느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세상적 유익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기적 자체에 관심이 있지 그 기적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향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오히려 그 기적이 자기 인생에 유익이 되지 않을 때 그 기적행하는 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내게 유익이 되지 않는 기적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6장에서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기적에 얼마나 광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그리고 아울러 그렇게 기적을 좋아하는 자들이 그 기적을 이용하여 이 세상의 빵을 얻어내려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신비주의와 기복주의와의 만남이 결국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모의로 결론이 납니다.

똑같은 것입니다오늘 날 신비주의를 지향하고 기복주의가 가르쳐지고 있는 곳에 가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빵을 주러 오신 분 이 아니라 영생을 주러 오신 분이니 세상적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영생을 살자다른 말로 십자가의 삶을 살자고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돌 맞아 죽지요그들이 이 천년 전에 태어났다면 역시 예수님에게도 돌을 들었을 사람들인 것입니다요한은 바로 그러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똘똘 뭉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부술 수 없는 인간의 죄 성을 3절부터 이어지는 예수님 형제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또 한 번 폭로합니다

 

(요한7:3-5) 3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이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4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남몰래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런 일들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5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5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 때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한글 성경에는 그 5절의 맨 앞에 헬 라어 가르 왜냐하면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 5절을 정확히 번역을 하면 왜냐하면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입니다따라서 이유와 원인의 접속사 가르’ 앞의 3절과 4절의 내용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절과 4절의 이유로 5절의 평가가 내려진 것이니까요.

 

그러면 믿지 않는 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한 번 보지요. 3절과 4절의 예수님 형제들의 권고를 한 마디로 요약을 하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라입니다이왕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라는 것이지요그렇게 해서 주님이 유명해지면 형제들인 자기들이 유익을 좀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심산이었습니다그러한 생각은 세상의 이치대로 하자면 잘못된 생각은 아닙니다자신을 증명하고 드러내기 위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인기를 얻고 신뢰를 얻는 일이 뭐 그리 나쁜 일입니까그런데 요한은 5절에서 바로 그러한 자들이 불신자들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삶에 나의 삶이 포개어져서 비록 그 삶이 고생스럽더라도 예수의 삶이 내 삶 속에서 재현되는 것으로 기뻐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방법을 거부하시고 낮아지고 낮아져서 원수까지도 섬기며 심지어 십자가를 지고 쓸쓸히 죽어가는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그 삶이 내 삶 속에서도 재현되기를다른 말로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십자가의 삶의 원리가 내 삶 속에서도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이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어 하느님을 증거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은 오늘 본문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모두 불신자들인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도 돌로 빵을 만들고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자기 증명과 자기 과시로 하느님의 일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해보라는 마귀의 시험을 단호하게 거절하신 것입니다주님은 자기 과시에 대한 유혹을 거부하시고 그와는 정반대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주님은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그러나 그 길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것이지 자신을 증명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하느님의 뜻대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시고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신 것뿐입니다그렇게 우리의 연대적 머리이시며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직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서의 명성과 체면과 인기와 자존심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면 그의 몸인 우리 성도들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쫓아 이 세상에서의 명성과 체면과 인기와 자존심과 상 관없는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들이 모두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논리입니까심지어 우리는 종교 행위조차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을 증명하는데 이용하는 데까지 타락해 버렸습니다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고 주일미사를 잘 지키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까지 자신을 자랑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그렇게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를 증명하며 자신의 세상적 유익을 챙기려 하는 것을 불신(不信)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삶의 원리는 그렇게 다른 존재를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하고 약삭빠른 삶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하는 바보 같은 삶인 것입니다.

(고후8:9)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입니다내가 가진 자원이 비워져서 나는 가난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이 유익을 보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은 당신을 자랑하고 증명하여 더 큰 인기를 누리라는 형제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요한7:8-9) 8 너희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라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다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갈릴래아에 머무르셨다.

주님은 이렇게 자기를 증명하고 자기를 자랑하라는 형제들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으셨지만 며칠 후에 비밀히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요한7:10)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주님은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을 자랑하여 자신의 값을 높이 매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주님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만 움직이셨다는 뜻입니다자신을 증명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혼인 잔치집의 포도주 항아리를 채우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거절하셨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의미를 설명해 주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마찬가지로 주님은 자신을 자랑하고 증명하여 더 유명하고 가치 있는 자로 서라는 형제들의 요구는 거부하셨지만 유대인의 삼 대 절기에는 성전에 올라가야 한다(신명16:16, 갈라4:4)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초막절이 담고 있는 진의 (眞意)를 설명하시고 유대인들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이렇게 주님의 삶은 나는 내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요한6:38-39)는 당신의 말씀처럼 철저하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을 통해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두 부류의 사고방식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하느님 나라 백성인 성도가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해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형제들의 사고방식으로서 자신을 자랑하고 증명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하게 자신의 명성과 인기와 무관하게 오직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사시는 예수님의 사고방식입니다.

세상은 곧 이 두 사고방식으로 구분이 되고 어떠한 사고방식에 순종하느냐에 의해서 하느님 편의 사람인지 아니면 세상 편의 사람인지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시면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어떻게 갈라지는지가 더욱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요한7:6) 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라도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의 때라고 말씀하신 때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13:1)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바로 이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의 때는 예수님이 마음대로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정해지고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여기서 라고 번역이 된 단어 카이로스는 호라나 크로노스에 비해 종말론적 기대의 성취를 의미하는 구절에 주로 쓰이 는 하느님이 정하신 때하느님이 허락하신 때라는 단어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을 포함한 구속사 속에서의 모든 사건과 시간까지도 이미 하느님에 의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갈라4:4)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하느님 백성들의 구속사는 하느님에 의해 정해진 시간표에 의해 착착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그 사실을 아는 이들을 가리켜 성도라 부르는 것입니다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시간 체계나 세상이 강제하는 시간표 속에서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세상 사람들이 왜 그렇게 초조해 하고 불안 해 하는것은 세상이 정해 준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려다보니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입니다내 나이내 경력내 외모에는 이 정도 수준의 소유와 명성과 인기가 있어야 한다는 세상이 정해 준 속도에 자신을 맞추려 하니까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롯과 엘리에셀과 이스마엘 같은 것들을 내어 놓으며 하느님을 실망시키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형제들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고 하시지요그 말은 자기의 명성과 인기와 자존심을 위해 사는 자들은 하느님의 때에 맞추어 살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는 의미인것입니다그런 자들을 불신자라 하는 것입니다.(요한6:5)

하느님이 가난 속에서 기다리라 하시면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하느님께서 질병 속에서 기다리라 하시면 기다리는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하느님이 계속해서 무명으로 인기 없이 살다 가라고 하시면 그 하느님의 때에 항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때에 맞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인 것입니다그 삶이 좀 더뎌 보여도 가장 현명한 삶인 것입니다왜냐하면 그 하느님의 때야 말로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총명을 다 합해도 이를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와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정해진 때이기 때문입니다.

(묵시13:8) 8 세상 창조 이래 땅의 주민들 가운데에서살해된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빠져 있지만 원어 성경에는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창세전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예수님이 창조이전에 이미 죽임을 당하셨다는 말입니다이게 무슨 말일까요이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하느님의 계획 속에 이미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의 사건과 그 가 정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도2:23)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죽음이 하느님이 미리 정하시고 미리 선택하신 결과라고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베전1:20)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창조이전부터 미리 준비되신 분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느님의 때와 그 때에 일어날 사건들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그리고 그 일들은 그 정해진 때에 맞게 지금도 착착 진행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하느님의 때에 일어나는 일들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아십니까우리가 세상이 강제하는 속도로 엉뚱한 목표 지점을 향하여 내 달리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때와 하느님의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렇게 자신의 시간체계에 맞추어 달리는 자들에게는 하느님의 때가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게 지나 버리기 때문입니다성도는 하느님의 때에 맞춰 가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의 명성과 인기와 자존심과 관계없이 하느님의 뜻을 위해 사는 이들에게는 실패의 순간이 성공의 때를 기다리는 지루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느님의 때로 인식이 되어야 합니다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의 생에 허락하시는 모든 시간과 사건들이 우리 하느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정하시고 계획하시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실패의 자리고난의 자리에서 좌절하거나 조급해 하거나 원망의 화살을 하느님께 쏘지 않습니다우리 성도는 우리가 원하는 우리의 때가 아닌 하느님의 때를 분별하며 우리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우리의 구원의 완성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하느님의 계획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조바심을 내야하며 무엇 때문에 기가 죽어야 하며 무엇 때문에 슬퍼해야 한단 말입니까이미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은 사람이 그깟 세상의 명성과 인기와 자랑에 연연하며 산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무엇이 부끄러우며 무엇이 두려우며 무엇을 더 갖고 싶으며 그것 말고 또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며 무엇으로 자신을 자랑하고 싶으세요? 아울러 우리의 구원의 자리가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없는데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으로 거들먹거릴 수 있습니까그러니까 자기증명이나 자기 자랑은 애시 당초 우리 성도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또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져 가는 하느님 나라에 우리의 눈을 두고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때를 분별하며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하느님의 뜻이 아닌 손익 계산의 결과에 따라서만 행동하며 살고 있다면 혹시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것의 가치를 얼마만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로 따집니다돈의 값이 커지면 커질수록 귀한 것으로 여깁니다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신도 값비싼 사람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하루에 7만원을 벌더라도 예수를 잘 믿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애를 쓰는 그 인생이야 말로 가치 있는 인생이요멋진 인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세상 가치관에 눈멀어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여 눈먼 경쟁의 질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더 알려지고 더 비싼 값에 팔려 다니고 더 많은 것을 쌓으려 하는 욕망의 정체를 보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그리스도교 복음이 우리 사회에서의 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인만의 비법을 가르치는 축복의 종교로 타락 해 버렸습니다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에 얼마나 큰 위험이 숨어있는지 가르치지 않습니다자신을 상품화시키고 더 많은 값을 받으려는 노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하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의 값을 자신의 직업이나 연봉의 크고 작음으로 판단하려 합니다.

심지어 교회도 교인이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헌금이 얼마나 많이 걷히느냐로 그 가치를 잽니다그런 사람들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형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그 것을 상품화 시켜 인기를 얻고 돈을 벌고 권력을 얻을 생각에 잠겨 있던 예수님의 형제들과 뭐가 다릅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때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사건들과 상황들을 통과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로된 사람들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그 목적지를 향하여 나에게 대가가 얼마가 주어지든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쫓아 사랑하며 섬기며 용납해 주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일들을 열심히 묵묵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의 꾀로 나의 때에 묶이지 마시고 하느님의 뜻을 쫓아 하느님의 때에 순종하며 올바로 반응하는 참 성도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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