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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롭고 신비롭고 거룩한 삶 -하느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 2020.3.27.사순 제4주간 금요일, 지혜2,1ㄱ.12-22 요한7,1-2.10.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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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7 조회수457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20.3.27.사순 제4주간 금요일, 지혜2,1ㄱ.12-22 요한7,1-2.10.25-30  

 

의롭고 신비롭고 거룩한 삶

-하느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예화를 나누며 강론을 시작합니다. 사순시기,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된 팬데믹 코로나19 사태가 성삼일에 이어 부활대축일은 물론 당분간 그 부정적 여파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참으로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세계인의 회개를 촉구하는 ‘정화淨化의 시기’, 사순시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 오만에 대한, 인간 스스로 자초한 재앙이요 하느님 징벌의 표지처럼 생각됩니다만 이 안에도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봅니다. 코로나 앞에는 그 가공할 핵무기와 첨단무기도 속수무책, 무용지물입니다. 기후위기, 미세먼지, 자연 및 동물착취등 병들어가는 자연의 몸부림처럼 들립니다. 자연이 병들고 망가지면 인간도 병들고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한번 병들고 망가진 자연의 회복이 요원하듯 인간도 그러합니다. 시편 2장의 몇구절도 오늘 날 힘센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이 웃으시도다/주께서 저들을 비웃으시도다.

임금들아, 바야흐로 깨달으라/땅을 다스리는 자들아, 익히배워라.

두려움으로 주님 섬기라/기뻐하며 두려워하며 예배드리라”-

 

코로나 사태를 대하면서 대한민국을 새로 발견하게 됩니다. 온갖 명암이 교차하는 한국이지만 진짜 선진국은 한국임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전 어느 자매님이 마스크를 사놓고 잊어 버려 급히 가보니 약국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의 정직함에 감격했다 합니다. 

 

사재기가 극성한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은 모두가 질서있게 진행됩니다. 어제 교황님은 강론시 “주여, 우리가 우리의 두려움을 이기게 도와 주십시오.” 기도하셨지만 한국인은 용감하고 민첩하게 이미 두려움을 정복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 가장 안전한 지역은 한국이라 하여 교포, 유학생들이 고국을 향해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으며 세계 유수한 지도자들이 한국에서 배우고 있으며 세계인들 역시 경탄의 눈길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늘이 돕는다”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덧붙여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함이 좋을 것입니다. 좌우간 회개한 우리들에게는 코로나 사태는 전화위복이요, 재앙이자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회개하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최선을 다할 때 하늘이, 하느님이 돕습니다. 정부가 온힘을 다해도 못잡든 아파트갑을 코로나가 잡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 모 대선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모 정당의 ‘국민을 지킵니다’라는 선거 슬로건도 감동적입니다.

 

모든 재앙과 불행의 근원은 하느님을 잊은 무지의 망각에서 기인합니다. 거룩함과 신비의 하느님을 잊은 자업자득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하느님 앞에서의 부끄러움을 잊은 탓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하느님을 잊을 때, 하느님 뿌리와 전통에서 단절될 때, 식욕만 추구하는, 성욕만 추구하는 좀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뿌리와 전통에서의 단절이 얼마나 큰 재앙이요 불행인지요!

 

주름살이 쌓여가면서 덕도 지혜도 쌓여가야 하는데 죄악과 악습과 탐욕만 쌓여간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요. 나이만 먹었지 철부지 노인들도 참 많은 세상입니다. 요즘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으로 세상이 참 시끄럽습니다. 혹자는 ‘사이버 강간의 왕국’이라 칭하며 한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n번방의 남성성, 존재하지 않는 ‘허기虛飢’를 쫓는 좀비와 같다”며 텔레그램 박사방의 관전자 26만명을 좀비라고 표현했습니다. 

 

참으로 식욕과 성욕의 허기虛飢를 하느님을 찾는, 진리를 찾는 열정으로 잘 승화하지 못할 때 누구나의 가능성이 좀비입니다. 요즘 제 관심은 최대한 이웃에 짐이 되지 않고 떠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짐이 아닌 선물같은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 식사후 세기시 요셉 학사님이 선물한 잔잔한 감동도 잊지 못합니다. 

 

슬며시 앞치마를 한 후 제자리를 차지하며 ‘제가 고무장갑도 꼈으니 제가 하겠습니다.’ 말하며 세기를 대신 해줬습니다. 순간, ‘사람이 됐다. 사제될 자격이 있다’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그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가장 상식적인 것이 ‘사람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마다 50대의 자매들까지 자리를 양보할 때는 참 착잡한 기분입니다만 그럴수록 남은 인생 품위있게 살아야 겠다는 자각을 새로이 하게 됩니다.

 

결론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또 하나하나의 임마누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을 자각할 때 두려움이요 부끄러움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갈 때 신비롭고 거룩한 삶입니다. 이젠 좋은 신자가 아니라 신비를 간직한 거룩한 신자가, 즉 신비가이자 성자같은 신자가 절실한 시대라 합니다. 어제 결혼을 앞두고 초대장까지 준비했는데 파혼당한 40대 초반의 불쌍한 형제를 위로하고 격려한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듣고 보니 자기 탓은 하나도 없었던 훌륭한 공무원 형제였습니다.

 

“훌륭하게 살았네요. 됐습니다. 하느님이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힘들어도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고 끝까지, 꿋꿋이, 한결같이, 버텨내고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찾는 자에게 하느님이 친히 길이,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요즘 교황님의 강론에서 주목되는 말마디가 신비입니다. 성 요셉 대축일 강론도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요셉은 믿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살았던 분이다. 복음은 요셉이 꿈중에 주님의 천사와 대화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가 신비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신비에 들어갔다는 그것이 바로 요셉의 거룩함이다.---교회가 신비에 들어가는 가능성을 잃을 때 교회는 흠숭할 능력을 잃는다. 흠숭은 사람이 하느님의 신비에 들어갈 때 일어난다. 

신비에 들어가지 못하는 교회는, 신자는, 규칙과 법규에 따라 경건한 삶을 살지라도 반쪽일뿐이다.---신비에 들어가는 것은 꿈꾸는 것이 아니다. 신비는 구체적이다. 신비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코 말하건데 흠숭하는 것이다. 신비에 들어가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다, 우리 하느님의 현존안에, 신비안에 들어갈 때 흠숭한다.“

 

또 교황님은 성모영보대축일 강론시, “우리는 신비 앞에 있다”, 말씀하신후 다시 복음을 읽으신후, “그것은 신비다(It’s a mystery)”로 강론을 끝내셨다 합니다.

 

하여 요셉은 영원한 배경이신 하느님과의 관계가 참으로 깊었던 의인이자 성자이자 신비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거룩한 전례의 신비에 참여하여 흠숭할 때 거룩한 삶입니다. 악인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의인들의 이런 신비롭고 거룩한 삶입니다. 지혜서 말씀 그대로입니다.

 

“악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무지의 사람들에 기생하는 악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악인이, 좀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악인들에 에워 싸인 고립무원의 처지이지만 참으로 혼자가 아니라 신비롭고 거룩한 아버지를 배경한 의인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말씀이 배경이신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 관계를 보여줍니다.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하느님을 배경한, 하느님이 함께 계신 임마누엘입니다. 하느님을 알아 닮아갈수록 신비의 사람, 거룩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온 목적일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아버지와 일치된 임마누엘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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