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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3 조회수2,023 추천수5 반대(1) 신고

 


2020년 4월 3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레 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복음 요한 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문제 하나를 내 보겠습니다.
“모세는 동물을 한 종류 당

몇 마리씩 방주에 태웠을까요?”
정답은 “0”입니다. 모세는

 방주와 관련이 없습니다.

홍수를 견딘 것은 노아였지요.

그런데 일류 대학의 머리 좋은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정답을 말한

사람은 12%에 불과했습니다.
이 질문은 성경을 이해하는

초보적 수준이다 보니,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동물의

숫자에만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바로 인지 태만에 빠진 것입니다.
가짜 뉴스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니, 실제로 가짜

뉴스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 가짜 뉴스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짜 뉴스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인지 태만에 빠지게끔 뉴스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가짜 뉴스도 정말로

 많습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인데도, 그 사람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고통과 시련이 죄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한 가짜 뉴스입니다.

고통과 시련,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인지

태만에 빠지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름난 종교지도자들의

거의 모두가 이 가짜 뉴스에 빠져서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돌을

집어 던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돌을 던지려는

그 모습에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요? 이제까지

보여 주셨던 놀라운 일,

특히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일을

보고서도 하느님을 알 수 없었을까요?

그 모든 말씀과 행적을 통해 하느님의

일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돌을 집어 들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위신이 꺾였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위선을 꾸짖는 예수님, 자신들이

해석해서 실천하고 있는 율법의

또 다른 정신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가짜 뉴스는

 너무나도 잘 들어왔습니다.

베엘제벨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말, 마귀가 들려서

사람을 고친다는 말 등등…….

그래서 놀라운 일을 봐도

하느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가짜 뉴스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주님의 사랑만을 바라본다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면, 주님께서 주신

희망을 지향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가짜

 뉴스에서 벗어나 주님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성공한 삶이란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바로 그 유일무이한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안셀름 그륀)

나의 뇌를 위해서 해야 할 일

10대 청소년의 뇌와

40~50대 중장년의 뇌 중에서

어떤 뇌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어렸을 때는 기억을

잘하지만,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젊었을 때의 뇌가

더 뛰어날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뛰어난 뇌는,

즉 뇌 자체를 보면

 40~50대의 중장년 뇌가

더 뛰어나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10대 청소년의 뇌는

아직 성장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뇌는 형성되는 데 오래

 걸려서 10대 청소년의

뇌 회로는 약 80%만

완성된 상태입니다.

물론 뇌 자체는 생후

첫 2년 동안 거의 이루어지고

10세 무렵 95% 완료가 되지만,

뇌 속의 시냅스 배선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완전히

마무리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대 후반이 되면

 ‘철이 든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인이 지금 20대 후반이

넘었다면 완성된 뇌를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질까요?

뇌의 한 부분에 이상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지만, 뇌의 기본

성격인 게으름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런

게으름에 빠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뇌도 게을러지면서

기억을 잘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것은 내 뇌의 활동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의 말씀에 더 깊이 빠져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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