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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0년 6월 3일 수요일[(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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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3 조회수213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6월 3일 수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가롤로 르왕가 성인과

그의 동료 성인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다.

우간다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에서 일하던 가롤로 르왕가는

가톨릭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고백하며

궁전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열성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면서 배교를 강요당하던

그와 동료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다가

1886년 6월에 살해되었다.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은 우간다 교회의

밑거름이 된 이들을 ‘우간다의 순교자들’

이라고 부르며 시성하였다.

제1독서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 1,1-3.6-12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132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3(122),1-2ㄱ.2ㄴㄷㄹ

(◎ 1ㄴ 참조)
◎ 주님, 저는 당신을 우러러보나이다.
○ 하늘에 좌정하신 분이시여,

저는 당신을 우러러보나이다.

보소서, 종들이 제 주인의 손을

눈여겨보듯, 당신을 우러러보나이다.

◎ 주님, 저는 당신을 우러러보나이다.
○ 몸종이 제 안주인의 손을 눈여겨보듯,

저희는 주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당신 자비만을 바라나이다.

◎ 주님, 저는 당신을 우러러보나이다.

복음 환호송

요한 11,25.2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116(114─115),15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오늘의 묵상

어느 선배 신부님의

누이는 신체장애가 있는데,

신부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말이 그다지 기쁘게

들리지가 않아. 현세에도 장애로

고통을 받는데 그것을 영원히

견뎌야 한다니 어찌 기쁠 수가 있겠니?”

이에 관하여 신부님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려 설명하였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1코린 15,42-44ㄱ).
본디 부활이란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씨앗이 나무가 되듯이 현세적인 몸은

사라지고 새로운 차원의 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우리가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몸을 지니게 되면 지상에서

얽매이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몸만 변화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을 기쁨으로

삼을 줄 모른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듯 ‘나의 하느님’이

되지 않으신다면, 아무리 천사와

같아진다 하여도 영원한 복락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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