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6.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4 조회수2,11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제1독서 2티모 2,8-15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 신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설전을 벌이지

말라고 하느님 앞에서 엄숙히

 경고하십시오. 그런 짓은

아무런 이득 없이, 듣는 이들에게

해를 끼칠 따름입니다.

15 그대는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복음 마르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사는 상황과 연관해서,

다양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두 가지 태도를 인용합니다.

하나는 인간을 배척하는 태도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을 흡수하는 태도입니다.

 이 둘 다 좋지 않은 것으로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첫 번째 태도는 인간 혐오와 배척을

의미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보다도 사람을 더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존재 자체를

혐오하고 배척합니다.
두 번째 태도는 인간을 식민지하며

 획일화하려는 의지를 뜻합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단정하면서 무조건 자신에게

 맞추려고 합니다. 상대방의 아픔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옳음을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된다며 강제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좀처럼

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태도로 인해 배척당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습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은 주님을

흡수하려 했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배척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분명히 ‘사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욕심 가득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어떻게든 선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입니다.

사랑 없이 행한다면 제아무리

애써 본들 주님께서 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데

‘마음을 다하라’라고 하십니다.

이는 조금만큼의 갈라짐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있도록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또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실은 우리가 얼마나

지적으로 뛰어난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토대로

심판받을 것이고, 좋은 사랑을

했느냐 나쁜 사랑을 했느냐에 따라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판가름 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음을 다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갈라지지 않습니다. 이웃을

떠나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떠나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선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보이는 배척과

흡수의 모습을 반복하는 삶이 아니라,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또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잘못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잘못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잘못이다.

(알렉산데르 푸슈킨)

개똥

홍세화 선생님의 책 ‘결’에

나오는 이야기를 요약해 적어봅니다.
옛날 서당 선생이 삼 형제를 가르쳤다.

어느 날 선생은 장래 희망을 물었다.

첫째가 “정승이 되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

하며 흡족해했다. 이어서 둘째가

 “장군이 되겠습니다.”라고 하자, “

그래야지. 사내대장부라면 큰 뜻을

품어야지.”라며 좋아하셨다.

형들의 이 모습을 본 막내는

“저는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지

금 여기에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선생이 물었다.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성이 되겠다고 하니

그 입에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저보다 겁이 많은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하니 그 입에도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일그러진 표징을 짓는 선생은

 “그럼 마지막 한 개는?”이라고 묻는다.
과연 누굴까요? 당연히 엉터리 같은

소리에 맞장구쳐 준 서당 선생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홍세화

선생님은 외할아버지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서당 선생이 먹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하지 못할 땐,

그땐 네가 세 번째 똥을 먹어야 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우리는 남 눈치를 얼마나 보고 있습니까?

맞는 말인데도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많습니다.

그때는 남이 먹어야 할 개똥을

내가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맞는 말인데도 하지 못하는

셋째가 되어서도 안 되고,

헛된 말을 해대는 첫째, 둘째 같은

사람도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제 어머니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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