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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聖남경문님 등 7위의 순교 (순교일;9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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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17 조회수280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聖남경문님 등 7위의 순교

(순교일;9월20일)

 

 



  

 

 

 

 

 

 

  

 

 

 
  聖 남경문 베드로

 

관련성지포청옥순교일1846.9.20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남경문님은 20세 때 교우 처녀
허 바르바라님과 혼인하였는데,
큰 병에 걸려 대세를 받고 회복된 뒤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배교하여 석방되고 나서는
첩까지 거느리고 3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

김대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다음
과거의 죄를 보속하고자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으며,

교우들에게 순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임성룡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남경문 베드로님은 금위영(禁衛營)의 군인 신분이었으므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유혹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마침내 9월 20일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51세에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기해 박해에 체포되었으나 배교하고

첩을 두는 등 방황의 나날에 빠졌으나

 

회개하여 김대건 신부에게서 고백 성사를 받았고

금위영 군인 신분으로 체포되었기에 더 모진 고문을 받은 후

51세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신 성 남경문 베드로 님이시여

 

저희가 세속에서의 모든 모든 때를 씻어내고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 한이형 라우렌시오

222
관련성지포청옥순교일1846.9.20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한이형님은

14세 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21세 때 혼인한 뒤 경기도 양지(陽智)의 은이 마을로 이사하였고,
정직하고 헌신적인 성격과 뛰어난 덕행,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인정받아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46년 7월 말에 포졸들이 은이 마을을 습격하리라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을 피신시킨 뒤 혼자 집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포졸들에게 심하게 매를 맞고 서울로 압송되었다.

압송될 때 이미 상처투성이의 몸이어서
포졸들이 그를 말에 태워 가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신 예수님을 본받고자

백 리가 넘는 길을 맨발로 끌려갔다.
포청에서도 심한 형벌을 이겨 내고,
9월 20일 마지막으로 곤장 70대를 맞은 뒤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48세에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충청도 덕산의 양반가 출신으로 14세에 입교하여

혼인한 뒤 경기도 양지마을에 이사하여 회장으로서 체포되어

 

현장에서 심하게 맞아 걷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주님의 수난을 생각하여 백리가 넘는 길을 자청하여 맨발로 끌려가

49세에 포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신

성 한이형 라우렌시오 님이시여

 

마지막 순간까지 남은 삶 하나라도 수난의 주님께 봉헌 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女 우술임 수산나

222
관련성지포청옥순교일1846.9.20

 

 

 

경기도 양주(楊洲)에서 태어난 우술임님은
15세 때 인천의 한 교우와 혼인하여
남편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1828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뻔하였으나 해산이 임박하여
두 달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 나왔는데,
그 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남편을 여의고 1841년 상경하여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다가,
과부인 이간난과 함께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님이 체포되자 김 신부의 집에 있던 여교우들은

이간난님의 집을 거쳐 새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이 때 이간난님도 함께 피신하였다.

결국 우술임님은 혼자 남아 이간난님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매를 맞아 반죽음이 된 몸으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44세에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20세에 채포되었을 때는 임산부로서 풀려 났으나

그 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을 겪으며

 

과부가 되어 이간난님과 함께 지내다가 다시 체포되어

모진 매로 반죽음이 된 상태에서 41세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신

녀 우술임 수산나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모든 교우들 특히 병약한 주부들에게

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 임치백 요

관련성옥사순교일1846.9.20

 

 

 
군집(君執)으로도 불리던 임치백 요셉님은

한강변의 한 부유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0년에 천주교를 알았으나 입교하지는 않았고,
천주교와 천주교인을 호의적으로 대하기만 하였다.

1846년 5월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혀 있는 옹진으로 가서 천주교인이라 속이고 자수하였다.

며칠 뒤 서울로 이송되어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님을 만나
교리를 배우고 곧 세례를 받아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9월 20일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매를 맞고,
6명의 교우와 함께 4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천주교에 호의를 가진 외교인으로서

아들이 숨감된 웅진 감옥에 갔다가

천주교인이라 자칭하여 체포된 후 서울로 이송되어

 

아들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 김대건 신부님을 만나 옥중 세례를 받았고

정오부터 저녁때까지 계속 매를 맞은 상태에서

43세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신

성 임치백 요셉 님이시여

 

부모와 자녀 사이가 신앙의 꽃으로 연결 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女 김임이 데레사

관련성지포청옥순교일1846.9.20

 

    

 

 

동정 순교자 김임이님은 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이미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뒤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20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오빠와 함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였고,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 이문우님의 양모 오 바르바라님의 집에서 5년 동안 살다가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다.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되자 당시 회장이었던 현석문님은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는데,
7월 11일에 포졸들이 새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하여 현석문, 이 아가타, 정철염 님등과 함께 체포된 그는
9월 20일, 매를 심하게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36세에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교우가정에 태어나 7세때부터 동정녀를 꿈꾸었고

20세에 아버지를 잃고 오빠와 함께 교우댁을 전전하다가

김대건 신부 댁의 하녀로 들어간 이듬해 신부가 체포된 후

 

정철염,이 아가타, 현석문 회장 등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 뒤에 36세에 교수형을 받으신

동정 성녀 김임이 데레사 님이시여

 

저희들의 소공동체 활동에 성령의 불꽃이 일어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女 이간난 아가타

관련성지옥사순교일1846.9.20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 아가타님은
18세 때 혼인하였다가 3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 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교리를 배우고 유방제(劉方濟)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현석문 회장님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현석문, 김임이, 정철염님 등과 함께 체포되어,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21세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와 있을 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김임이, 정철염 님과 함께 박해에 피신했으나 현석문 회장과 함께 모두 체포되어

 

33세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신

성녀 이간난 아가타 님이시여

 

현세를 건너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女 정철염 가타리나

관련성지옥사순교일1846.9.20

 

 

 

 

 

정철염님은 경기도 수원(水原)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포천의 어느 양반집 하녀로 들어갔는데,
주인집 가족 가운데 한 교우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20세 되던 해 동지날 미신 행위에 참여하라는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였다가
혹독한 벌을 받았고,
이듬해 봄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자

서울로 피신하여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았다.

1845년에는 김대건 신부 집에 하녀로 들어갔고,
이듬해 김 신부가 체포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0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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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가정에 태어나 포천 어느 양반댁의 하녀가 되었을 때

주인댁 가족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고

그 댁에서 미신 행위가 벌어질 때는 이를 거부하다가 거듭되는 미신 행위에

신앙을 위하여 서울로 피신하여 여러 교우댁에 뭄붙여 살다가

 

김대건 신부님 댁의 하녀로 들어가

현석문, 김임이, 이간난 님들과 함께 체포되어

30세로 교수형을 받으신 聖女 정철염 가타리나 님이시여

 

저희가 현세구복의 미신에 빠지지 않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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