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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나의 이웃인가 따질 것이 아니라 내가 불행한 사람의 이웃이 되도록 힘써야 겠습니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5 조회수1,638 추천수1 반대(0) 신고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5-37

  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의 앞글에서는 이웃이란 개념을 자기의 형제자매라고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보면 저는 오늘 복음에서 율법교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인과, 갈등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을 이웃의 범주에 넣지 말아야 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또 같은 종족일지라도 율법을 어기면 사랑을 하지 말고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내가 율법교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제가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보았을때 신부님이 주셨던 말씀이었고 저는 그것을 그대로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이웃을 처음부터 경계를 나누기보다 이웃을 사랑하면 저절로 주어지는 말씀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으로 귀착되는데 그대로 살아가다보면 이웃은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죄를 지었다고 아니라고, 우리나라 사람이냐 아니냐.' 로 마구 경계를 두면 이웃이 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다시금 이웃의 범위를 정하지 않고 살으렵니다.  그러다 그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런 사람이 되어 내 이웃을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이웃의 범위에는 경계가 없다.'라고 여기겠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웃을 바라보겠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따질 것이 아니라 내가 불행한 사람의 이웃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종교를 배반하거나 교회가 가르치는 진리를 저버리는 사람은 아니되겠습니다.  내가 죄인인데 누굴 죄인처럼 여기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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