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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봉모 신부님 / 마르코는 왜 선교 여정 도중 하차했을까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30 조회수1,241 추천수3 반대(0) 신고

마르코는 왜 선교 여정 도중 하차했을까?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사도 13,13)

 

파포스에서 성공적인 선교 활동을 마친 선교팀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소아시아를 향해 나아간다. 여정을 보면 파포스에서 페르게로 그 다음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다. 그런데 페르게에서 조수로서 선교팀에 합류했던 마르코가 복음 선교를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본문에 나오는 요한이 바로 마르코다. 마르코는 왜 선교 여정 도중 하차했을까? 우선 심심치 않게 제시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를 소개한다.

 

그것은 마르코가 인간적인 유약함 때문에 도중하차 했다는 견해다. 마르코는 처음 사촌형 바르나바가 선교 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사명감보다 호기심에서 따라 나섰다. 호기심에서 떠났기에 어려움이 밀려오자 쉽게 도중하차 했다는 것이다. 마르코가 인간적 유악함에서 도중하차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마르코가 가졌던 어려움을 세 가지로 얘기한다.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저택에서 누렸던 윤택한 환경에 대한 그리움이다. 마지막으로 선교팀이 페르케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가려면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그 산맥을 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마지막 두려움을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타우루스 산맥은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들로 이뤄졌다. 우리로 치면 대관령 (842미터)이나 한계령(1004미터) 보다 훨씬 높다. 산세가 험악하고 급류가 흐르기에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마르코가 어머니가 그립고, 큰 저택의 윤택한 삶이 그립고, 험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는 것이 두려워서 도중하차했다는 것은, 마르코를 인내심과 용기가 전혀 없는 겁쟁이로 비하시킨다.

 

하지만 마르코는 부모님으로부터 담대한 신앙을 물려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이 지명 수배된 상태에 있는데도 예수님이 파스카 만찬을 드실 수 있도록 집을 제공했던 사람이 마르코의 아버지이고, 야고보 사도가 목이 잘리고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신자들이 함께 모여 베드로 사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집을 제공했던 사람이 마르코의 어머니다. 이런 부모를 둔 마르코가 인간적 약함에서 선교 여정을 중도에 그만두었다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마르코가 선교 활동을 중도에 그만둔 진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바오로가 갑자기 선교팀의 리더로 나선 것에 대한 항의였다. 선교팀의 리더는 본시 바르나바였는데, 파포스를 떠날 때부터 바오로가 선교팀의 리더 역할을 하자 반발하여 떠났던 것이다. 바오로가 선교팀의 리더가 되었다는 증거는 위 본문에 나온다. '바오로 일행'을 그리스 성경에서 직역하면 '바오로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자들'이다. 바오로가 중심 인물이고 바르나바와 마르코는 변두리 인물이다.

 

애초 안티오키아 공동체가 선교팀을 파송하면서 팀의 리더로서 바르나바를 세웠기에, 마르코는 바오로가 중도에 리더처럼 행동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마르코가 선교 여정을 중도에 그만둔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바오로의 개방적인 복음 정책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바오로가 어떤 율법 준수의 조건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하나만으로 이방인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이고, 그들과 식탁친교를 갖는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이 점은 마르코의 이름 변화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그가 처음 등장할 때에는 마르코 요한으로 불렸다.(사도 12,12) 마르코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다. 그가 선교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두 이름이 다 같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가 선교팀에 합류하고 나서는 달랑 유다식 이름인 요한만 언급된다. (사도 13,5.13) 이는 바오로가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다식 이름인 사울을 사용하다가 파포스에서 바오로란 로마식 이름을 사용한 것과 정반대다.

 

선교 여정에서 요한이란 유다식 이름으로 언급된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유다 보수주의적 태도를 알려주고, 바오로의 개방적인 복음 정책에 그가 반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율법도 지키지 않아도 신앙 하나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바오로의 선교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아가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는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는데, 선교팀은 신자가 된 이방인들과 식탁친교를 나누었다. 마르코는 선교팀의 이런 파격적인 행위를 예루살렘 교회가 알게 될 경우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 두려웠다. 그래서 더 이상은 선교 여정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ㅣ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예수회 후원회 이냐시오의 벗들 2020. 12

 



 benefactor.jesuits.kr/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송봉모신부님, 마르코요한, 마르코, 바오로, 바르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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