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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5 조회수1,891 추천수12 반대(0)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국과 다른 점을 봅니다. 그중에 하나가 의료보험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국가의 주도로 전 국민 의료보험을 채택하고 있지만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암과 같이 중증의 질환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전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아주 잘 살거나, 아주 못 살면 의료혜택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주 잘 살면 본인의 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주 못 살면 정부의 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산층은 부담이 되는 비용을 지출하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 제도화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구에 속한 사제들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들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회사에서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인의 부담은 1년에 10,000불정도 된다고 합니다.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1년에 30,000불정도 지불해야 한다고 합니다.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비용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엄청난 비용의 의료비를 지출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국의 역사를 통해서 분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두 가지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광활한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땅은 미국에서 살았던 원주민의 땅입니다. 원주민들은 땅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부동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노동은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이 하였습니다. 광활한 땅에서 노예들의 노동으로 수익을 얻은 이민자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국가가 국민들의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전 국민 의료보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땅이 있었고, 땅에서 일할 노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간의료보험을 선택 할 수 있었고, 충분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마바 케어를 비롯해서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보험을 제도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합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아직도 많은 이민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예전의 이민자들은 땅을 거저 얻을 수 있었고, 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민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땅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흑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피부색으로 인해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신분으로 충분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미국의 제조업이 더 싼 임금을 찾아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겼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땅, 꿈의 땅인 미국에서의 삶이 긴장과 불안의 삶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총기 소유의 자유는 역사의 유산이지만 그로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해마다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엄청난 자원을 가진 나라입니다. 막강한 부를 소유한 나라입니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나라입니다. 첨단의 과학과 기술을 가진 나라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을 바꾸면 아름다운 나라, 젓과 꿀이 흐르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연중 제33주일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일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회는 약한 이, 가난한 이, 병든 이, 외로운 이, 억울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황이 되신 후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은 이민자의 섬 람페두사였습니다. 람페두사 섬은 전쟁과 가난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중간 기착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웃 형제자매들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언급하신 사제와 레위인의 위선에 빠져버렸습니다.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형제를 보면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가련한 영혼이여!’ 그리곤 그냥 가던 길을 가버리는 겁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카인아)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이것은 인간 역사의 여명기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던지신 두 가지 질문입니다. 동시에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지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세 번째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누가 이들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 여기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배를 탄 사람들을 위해 누가 울고 있습니까? 어린 것들을 안고 있는 이 젊은 엄마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 남자들을 위해서 누가?”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은 깎아져서 평평하게 되리라.’ 교만과 욕망의 산을 깎아서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어둠과 절망 그리고 고통과 걱정은 희망과 사랑 그리고 나눔과 봉사로 메워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세상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서 이사야 예언자의 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들이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언제가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우리의 행동입니다.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모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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