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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길 기도 1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6 조회수1,075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한 처 한 처 바라보며 드리는 기도>


십자고상 앞에서

 

주님!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주님! 저는 아직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당신께서 왜 거기에 그런 모습으로 계셔야 하는지, 당신을 따르려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만, 당신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며, 그 방법으로 오직 이 십자가를 통한 죽음을 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당신으로 인해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 다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만, 당신께서 왜 그런 방법을 택하셨는지조차 모르는 제가 어떻게 - 그렇게도 무섭게만 보이는 십자가의 길로 - 당신을 따라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제가 지금까지는 당신께서 하신 그 모든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산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 왔지만, 그래도 당신께서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있는 저의 이 작은 정성을 보아서라도 알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로 저를 이끌어 주시어 한 처 한 처마다에서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당신을 따라 나설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제 1 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죽음에 붙여진 사람들을 살리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이신 당신을, 사람들은 사형 판결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빌라도 총독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빌라도가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요한 18:34-37) 하고 물었을 때에 당신은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고, 당신은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당신께서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시자,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진리를 증언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십시오. 저도 당신과 함께 진리 편에 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빌라도와 같이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진리 편에 설 수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껏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런 잘못도 없으신 당신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 되시어 서 계신데, 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남 앞에 제 잘못이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애를 쓰고 있는 꼴이라니요. 혹여 남이 제 잘못을 들추어내기라도 할라치면, 즉시 그를 원수로 대하고 마는 제게 당신께서는 ‘죄인이 되어 사형 선고를 받으라.’고 하시니, 그런 일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으신 주님! 당신께서 언제 하느님을 모독하셨습니까?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데.....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 어찌 하느님을 모독한 것이 되겠습니까? 그 말씀은 바로 진리 그 자체입니다.

빛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주님! 당신은 언제나 십자가에 높이 달려 계신 채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의 사랑을 보답해 드리려 했습니까? 그저 땅만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탐내고, 그것들을 가지려고 애를 쓰는 일에만 바빴습니다. 결국에는 다 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빈손으로 불러 갈 것을.....

그러는 동안에 사랑이신 당신 마음을 얼마나 많이 상해 드렸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지금까지 제가 죄인이 아닌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빛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당신과 비겨 생각하지 않고, 잘못을 쉽게 저지르는 눈에 보이는 세상 사람들과만 비교하였기에 언제나 제가 착하고 잘난 듯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저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 저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시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주님! 이제는 더 이상 저의 죄로 인하여 당신께서 그 자리에 서 계시지는 마십시오! 당신께서 지금까지 저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시며 저를 살려내 이만큼 키워주셨으니, 이제는 저 스스로 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입니다. 저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주십시오. 이제까지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인이 되시었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인이 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부족하고 약하기만 한 저에게 끝까지 당신을 따라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내려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2 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요한복음 19장 17절에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 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을 나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라는 곳을 향하여 걸어가신 주님! 당신께서 지고 가신 그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는데,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일상생활 안에서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는 무수한 요소들’을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수도 없이 많은 어려움을 일상생활 안에서 다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로부터 계속해서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당신 친히 세 번이나 예고하시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신 후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고통”이라고 여기는 일상에서 오는 잡다한 고통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제가 겪어야 할 “십자가의 고통”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님!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져야 할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해골산’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에 그 고통을 당하시기를 얼마나 기다리셨던지 제자들보다도 훨씬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서 가셨기에, 그것을 본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였고, 그 뒤를 따라 가는 사람들은 불안에 싸여 있었다(마르10:32)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그 일이 무엇이 좋다고 그리도 빨리 가셨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 저도 알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져야 하는 “제 십자가”가 무엇인지,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 버려야 할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저도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3 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절대자이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넘어지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당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신 주님! 당신은 왜 넘어지셔야만 하셨습니까? 좀더 보기 좋은 방법이 그렇게도 없으셨나요? 저는 그런 당신의 방법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넘어지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당신을 따라 이 길로 가게 되면, 저도 남 앞에서 넘어져야만 한단 말입니까? ‘넘어진다는 것’은 ‘힘이 없음을 남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다른 그 어떤 신들보다도 더 힘이 있다고 여겨서 당신을 따르고자 한 것이지, 힘이 없는 분이라고 여겼다면 절대로 당신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무참히 넘어지시다니 이건 정말 안 될 말씀입니다.

저는 남 앞에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펴고 서 있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 해 왔는데 넘어져야 한단 말씀입니까?

당신은 시작부터 이토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시니 누가 당신을 따라가려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 밑에서 일하기를 원했던 ‘그리스도폴’의 어깨를 내리 눌렀던 당신의 그 힘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힘없이 넘어지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크고 깊으신 뜻을 미처 알아듣지 못하는 저의 어리석음을 너무 탓하지 마시고, 당신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시어, 저도 언젠가는 당신을 따라 많은 사람들 앞에 힘없이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4 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 중에서도 ‘가장 큰 죄인’에게 내려졌던 ‘십자가형’에 처한 아들을 보기 위하여 ‘어머니’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당신은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불효자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어머니가 자식이 사형 선고를 받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살과 피가 섞여 있는 자기의 자식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겪게 되기를 더 바랄 것입니다.

극악무도한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하여 걸어가시는 길에서 어머니를 만나신 주님! 당신의 마음은 또 어떠하셨습니까?

당신은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낳은 어머니에게는 왜 그런 고통을 안겨 드리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제 어머니가 지금까지 저를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애를 태우며 수고하였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어머니에게 당신처럼 실망과 고통을 안겨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심장이 예리한 칼로 찔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겪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를 뒤로하고 묵묵히 골고타를 향하여 걸어가신 당신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머니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인지를 주님이신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시오니, 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더 이상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저는 아직 그렇게 매정하게 어머니의 사랑을 거절할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보다도 더 큰사랑을 위해 당신이 그렇게 하시었을 테니까, 그 큰사랑이 무엇인지 밝히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먼저 내려 주십시오. 그것을 밝히 깨닫게 되면 저도 당신처럼 제게 온갖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신 제 어머니를 뒤로한 채 당신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5 처 예수님께서 시몬의 도움을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힘의 원천이신 주님! 당신은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시며,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온데, 당신께서 만드신 사람의 도움을 받으시다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저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 보다 더 나은 위치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남에게 내 보이는 것은 정말 싫고, 남이 저보다 더 나은 위치에서 제게 도움을 주는 것은 더 더욱 싫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움을 줄 마음조차도 없는 시몬의 억지 도움을 받아들이셨으니,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제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기만 합니다. 당신은 가면 갈수록 어쩌면 그렇게도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키레네 사람 시몬(마르 15, 21)에게 당신께서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내어 주신 주님! 당신께서는 힘없는 사람이 되시어 시몬의 억지 도움을 받아들이시므로 당신의 힘을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체면이 깎이셨습니까? 당신의 기적을 보고,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당신을 구세주라고 생각하며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 앞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는 남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런 거지에게는 재산뿐만 아니라, 체면이나 명예까지도 다 없어졌지만, 모든 영예와 영광을 다 누리고 계신 하늘의 임금이신 당신께서 보잘것없는 시골 사람으로부터 억지의 도움을 받으시다니! 그것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것이 당신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더 더욱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얼마나 저 자신을 낮추어야 한단 말씀입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건강도 있고, 물건도 있고, 배운 지식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앞에 놓인 많은 날에 지금까지 배워 익힌 것들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힘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 전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 들여야 한단 말씀입니까?....

시몬의 억지 도움을 받아들이신 높고 높으신 임금이신 주님! 당신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전능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저를 위하여 보잘것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셨으니, 이제부터 저도 ‘오로지 저를 살려주시고자 그렇게 하신 당신’을 닮기 위하여 제가 가진 것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어, 제가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당신처럼 힘없는 사람이 되어, 시몬의 도움을 받아들이신 당신처럼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주님!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더욱 더 겸손되이 남 앞에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6 처 예수님께서 베로니까의 수건에 당신의 얼굴을 박아 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 당신은 한 남자로서 많은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신랑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여자들이 목숨을 걸고 당신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해드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도 또 불쌍한 한 여자가 있습니다. 당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으면 창과 방패를 들고 막아서는 병사들을 헤치고 사형수가 된 당신께로 다가왔겠습니까? 베로니까는 얼마나 애를 태우며 당신께서 그 길로 가지 않으시기를 바랐겠습니까?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써 세상 모든 사람을 살려 주시기 위해 가야 할 그 길로 가시지 않고, 자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베로니까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셨을텐데도, 당신께서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베로니까가 닦아주는 대로 얼굴을 내밀었을 뿐, 십자가를 내던지고 베로니까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 당신께서 베로니까의 사랑을 그다지도 박절하게 물리치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께서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 생활을 재미나게 하시면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셨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얼씨구나’ 하고 당신을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방법을 쓰셔야만 했나요? 그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서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23절에 보면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다 주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었고,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고 하였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당신께서 저를 만드실 때에 저의 일을 거들 짝도 더불어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다 자라면 어버이를 떠나 당신이 만들어 주신 짝과 어울려 한 몸이 되어 알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창조하여 주시고서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고자 십자가를 지고 가신 당신을 따르고자 할 때에는 혼자이어야 되니,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저의 짝과 함께 어울려 한 몸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많은 사람들을 살려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신 당신’을 따라 나서고도 싶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저를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 주님! 제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 외에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살려 주시기 위해서 당신께서 그 길을 가시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까? 당신은 당신과 함께 직접 그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분(마태 12, 20)’이시며, ‘첫 번째 기적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분(요한 2장)’이시니 결혼 생활을 얼마나 중히 여기시는 분이신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제 짝과 어울려 한 몸을 이루며 산다 할지라도 결코 저를 버리지 않으실 분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저도 당신처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오나 주님! 제가 얼마나 약한지 당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오니 너그럽게 보아주시어, 육신과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큰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하여 굽힘없이 걸어가신 당신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당신께서 ‘고통당하시는 당신의 얼굴이 박힌 수건’을 지니고 있던 베로니까를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셨듯이, 제가 당신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세상과 저의 육신적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당신을 따라 나서므로 저를 사랑하면서도 한 몸을 이루지 못하여 고통당하며, 다만, ‘십자가의 고통으로 얼룩진 제 얼굴’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제가 할 일을 다 마치고 당신의 나라에서 살게 되었을 때에 그를 내치지 마시고 받아들이시어, 영원히 저와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그러한 몫이 제 몫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제 몫이라면, 그 또한 기쁘게 받아들여 조금도 한 눈 팔지 않고, 당신께서 정해주신 사람과 함께 살며, ‘제 온 몸과 마음을 다 내어주는 행위’를 통해 저 자신을 깨끗이 하여, 깨끗이 만든 그 자리만큼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채워주시어 당신께서 보내주시는 아이들을 올곧게 당신께로 돌려보내, 온 가족 모두가 당신 나라에서 영원히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7 처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 또 넘어지셨습니까? 남 앞에 한 번 창피를 당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또 넘어지셨나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한 번 실패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봐 주기가 어렵지 않지만 두 번 넘어진다면? 글쎄요...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넘어지신 주님! 당신은 제가 남 앞에 자신을 낮추어 땅 바닥에 넘어져 체면 깎이는 일을 당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하라고 하시다니 정말 하셔도 너무하십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하시기 위하여 하늘 나라의 그 모든 영화도 마다하시고 가난한 어린 아기가 되어 내려오시고, 저를 살리시기 위한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빈들에서 40일을 단식하시고,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을 때에도 명예나 체면을 살리는 방법을 한 번도 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 앞에서는 온 우주 만물이 복종하며, 하늘의 천사들도 끊임없이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고 있는데, 무슨 방법으로 당신을 더 높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두 번이나 넘어지신 것은 바로 저 자신을 위해서 일터인데 주님!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꺾어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십시오. 없애려 거듭 거듭 노력하여도 없어지지 않는 제 안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을 깊이 깨달아 십자가 아래 넘어져 계신 당신께로 다가 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당신 앞에 알몸으로 서게 되었을 때에 하나도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마지막 날에 세상 모든 사람 앞에서 공심판을 받게 될 때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여 주시기 위해서 지존하신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인 사람들 앞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셨으니,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거기에 넘어져 계시니, 저도 당신을 따라 거기에 그렇게 넘어져 있고 싶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넘어져 계시며 저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저는 너무나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사랑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모든 것 위에 당신만을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해 드리기 위하여 모든 것 다 버리고 당신을 따라 나서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아직은 겁이 나고 그러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이 그저 무섭기만 합니다. 그러나 제게 힘을 주시고, 저를 당신께서 넘어져 계신 그 곳까지 이끌어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8 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은 이제야 당신이 당하실 고통의 반을 치러 내셨습니다. 당하실 고통이 얼마나 엄청났으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게쎄마니 동산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고 세 번씩이나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겠습니까?

왜 그렇게 기도하셨는지 이제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며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거짓 증언과 모함 소리를 들으시고, 뺨을 맞고 주먹질을 당하며 온몸은 채찍으로 맞아 살점이 떨어지고, 머리는 가시관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어 아픔을 당하신 후에 빌라도 앞에서 당신을 따르던 백성들에 의해 ‘십자가형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으신 당신!

그런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를 향해 오르시며 넘어지시고, 어머니를 만나 마음의 큰 아픔을 겪으시고, 당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 앞에서 힘없고 약한 인간으로 남의 억지 도움을 받으시고, 인간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 주지 못하는 아픔까지 겪음으로 더욱 더 기진하시어 또 다시 넘어지신 당신!

그런 당신을 보고 뒤따르던 예루살렘 부인들은 당신께서 당하시는 고통이 너무나도 엄청나게 보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시고 당신께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하고 젖을 빨려 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가 이제 올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은 산을 보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할 것이며, 언덕을 보고 ‘우리를 가리워 달라’ 할 것이다.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오죽하겠느냐?”(루가 23:28-3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하올 주님!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걱정을 하는 것입니까? 지금 당신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어디에 또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께서 겪는 고통보다도 당신을 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을 더 걱정하시며,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 이제야 당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어떤 고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아시고도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시고, 게쎄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말씀하시며, 엄청난 고통을 치르시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여기까지 오신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그 엄청나게만 보이는 고통의 반을 넘어 서셨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당한 고통이 아까워서라도 다시 되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에 육신적인 고통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께 더 가증 되는 큰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당신께서 흘리신 피의 대가를 받아 입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오, 사랑 하올 주님! 저는 당신께서 저로 인하여 또 다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른나무가 되어 마지막 날 불에 타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되어 당신의 마음을 더 상해 드리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당신께서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신 것’이 바로 ‘저를 살리시기 위해서’인데, 저는 지금껏 무엇을 하며 살아왔습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나와서 지금까지 얼마나 바삐 움직이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배우고 또 배우며, 일하고 또 일하며 언제나 바쁘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유조차 찾아보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 엄청난 고통 중에서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고 말씀하신 주님! 제가 저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아직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무슨 일에나 열심히 하려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씀입니까? 제가 버려야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씀입니까?

그러나 주님! “난 문제없어! 난 모든 것을 다 잘해 왔기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않고, 영원한 불도 조금도 무서울 것이 없어!”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기에 걱정도 되고, 당신의 그 말씀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 엄청난 고통의 대가를 치르시고 흘리신 그 피로 저를 살려 주십시오. 당신께서 당하신 그 고통이 결코 제게 있어서 헛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9 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 또 넘어지셨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이제 제가 어찌 생각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을 보고 기대를 걸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찌되었습니까? 더 이상 당신께 기대나 희망을 걸지 않겠지요.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게 되시어 얼굴을 땅에 대고 넘어져 계신 주님! 높고 높은 하늘의 임금이신 당신의 얼굴이 땅에 닿아 있습니다.

땅은 모든 사람이 밟고 다니는 곳! 온갖 짐승들까지도 오줌을 싸고 똥을 누는 곳! 침을 뱉고 온갖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 그 곳에 당신의 얼굴을 무참하게 내어 던지시다니 당신은 정말 너무하십니다.

저는 제 얼굴을 절대로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잘 치장하여 남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우러러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고, 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저를 보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당신에게는 체면도 자존심도 없으시단 말씀입니까?

오, 주님! 제발! 저더러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당신께서 이미 그렇게 하시었으니, 저는 그냥 좀 넘어가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얼굴을 똑같이 만들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랬다면 제 얼굴을 남 앞에 더 잘 보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많은 이들 앞에서 땅에 얼굴을 대고 넘어지더라도 체면 깎이는 일도 없을 테니까 이렇게 두렵거나 걱정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세 번이나 넘어지신 주님! 당신의 그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어,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저의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를 훌훌 벗어버리고, 저도 당신과 함께 땅에 얼굴을 대고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10 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시고, 초와 쓸개를 맛보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병사들은 기진하여 넘어지신 당신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겼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옷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인데 감히 당신의 옷을 벗기다니!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임금이신 당신의 옷을 벗기는데 당신께서는 어찌 그리 가만히 계실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반항도 한 번 하지 않으시고 그런 취급을 당하시고만 계십니까?

어린아이는 옷을 입지 않아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 누구라도 벌거벗은 모습을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당신에게서 기적의 힘을 얻거나 말씀을 듣고서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 주님! 이런 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만 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신 당신께서 어떻게 계속해서 “나를 따르라”고 제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전 제 몸이 부끄럽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제 몸의 부분 부분들이 다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누가 볼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제 몸을 싸고 또 싸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어떻게 더 좋게 보이게 할까’ 하고 궁리하며, 좋은 옷으로 치장도 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지금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고 벌거벗은 채로 서 계시는 것입니다.

 

전 못합니다. 절대로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말씀을 좀 들어보십시오. 주님! 태초에 당신께서 직접 ‘가죽옷을 만들어’(창세기 3:21)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시지 않았습니까? 입혀 주셨으면 그만이지 왜 그 옷을 벗기려고 하십니까? 입고 있는 것이 더 편한데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께서 “따먹지 말라” 고 이르신 말씀을 거역하고 금한 열매를 따먹은 후에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고 하느님 앞에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주님! 제가 알몸을 드러내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니면 원조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입니까?

당신께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시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대로 아무런 가책도 없이(세상사람 모두가 옷을 입고 사니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쩐지 저 자신을 싸고 또 싸며 산다는 것이 께름칙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알몸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여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앞을 가리고, 당신 앞에 서 있기를 두려워하여 나무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 지금은 제가 두려워하고 그러기를 싫어하지만 언젠가는 당신을 따라 이 길을 걸어가 마침내 당신처럼 입고 있던 옷을 훨훨 벗어 던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알몸이 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11 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높이 들리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는 전능하시며 신령한 하느님이십니다. 또한 빛 자체이시기에 더러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조차 없는 깨끗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십니까? 무슨 일을 어떻게 잘못하셨단 말씀입니까? 당신께서 갈 수 없는 곳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가지 않아야 할 곳에라도 가 보셨단 말씀입니까? 당신께서 할 수 없는 일이란 없고, 세상 모든 것은 다 당신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씀입니까?

당신의 두 손은 이제 못에 박혀 있기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두 발은 이제 못에 박혀 있기에 아무 곳에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온 몸은 이제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있기에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하늘에 있는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게 되어, 다만 거기에서 죽을 때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시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시고 신령하신 당신께서 그런 처지에 놓이셨는데, 어떻게 저더러 그것을 이해하라고 하십니까? 당신께서 계속 한 처 한 처마다에서 엄청난 행동만을 보여 주시기에 그저 놀랍고, 새록새록 당신이 제게서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제게 “나는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여기에 이렇게 못 박혀 있는 것 이란다” 하고 말씀하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언제 저를 위해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까?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으신 능하신 분이시라면서 그렇게 하시느니 차라리 제가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제가 가고 싶은 곳 어디에라도 갈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마련해 주시고, 제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저더러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눈만 뜨면 어디에나 보이느니 십자가! 십자가뿐입니다. 차라리 제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속이 편하겠습니까? 당신이 아주 저를 괴롭힐 작정이 아니었다면 이런 행동일랑은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두 손과 두 발이 못 박혀 높이 들려 계신 주님! 알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그 깊은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제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밝히 알아 저 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만을 하고 살며, 꼭 가야 할 곳만을 가며, 꼭 가져야 할 것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12 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아래로나 위로나 아무 곳에서도 아무런 위로도 받으실 수 없는 처지에 놓여 극심한 죽음의 고통을 겪고 계신 주님! 당신은 그 고통이 너무나도 엄청나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오27:46) 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영원한 분이신 데, 죽음의 고통이 웬 말입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당신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을 되풀이하고 계십니다.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서 어떻게 죽으실 수 있단 말씀입니까? 정말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 아니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당신의 크신 힘을 보여 주시지 않고 그렇게도 무참히 죽으실 수가 있으십니까?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당신을 조롱하던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아라.”,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 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말고. 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입네 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 보시라지?”(마태오 27:40-43) 라고 말씀입니다..

 

당신께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십니까? 그러나 당신께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루가 23:42) 당신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한 10:7-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주님! 당신을 믿지 못하고 당신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장 최고의 형벌을 받고 거기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께서 목숨을 바치신 것은 당신의 양떼 중에 하나인 제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하신 것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오, 사랑 하올 주님! 당신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태초에 벌써 예고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어 4천년이란 오랜 세월을 기다리게 하시고,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고, 이제 저를 당신의 양떼 중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고자 그렇게 하셨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살리시기 위해 저의 죄를 대신하여 그 많은 고통을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는데, 저는 이제껏 당신께서 저와 그렇도록 가까이 계시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죄 많고 보잘것없는 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주님! 이제부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어찌해야 할 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를 ‘목숨을 바친 그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는데, 저는 그런 당신의 눈을 외면한 채 다른 곳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으니, 저는 당신께 너무나도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그 빚을 어떻게 갚으면 되겠습니까?

오, 주님! 저도 이제는 당신의 그 사랑을 저의 온 몸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서 온 몸을 바쳐 살리기를 원하시는 이웃을 사랑하여 제 목숨을 바쳐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그렇게 목숨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목마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9:28). 당신께서 왜 그리도 목말라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주님! 바로 저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어 그리도 애를 태우시며 목숨을 바치시는데, 저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외면한 채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고 목이 마르셨겠습니까? 저의 그런 메마른 사랑 때문에 당신은 거기서 그렇게 목말라 하며 죽으신 것입니다...

 

“목마르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탄다. 얼마나 내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지 네가 안다면 아무 것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가리다 성녀에게 사랑을 호소하신 주님!

 

저는 매일 매 순간 당신의 끊임없는 사랑의 눈길 속에서 살면서 당신을 죽인 죄인입니다. 저는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당신을 사랑하기는커녕 당신께서 “그가 바로 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저의 부모, 저의 형제, [저의 배우자, 저의 자녀], 저의 친구, 만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들마저도 미워하며, 사랑하지 않은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가장 중요한 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워한 적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는 동안, 저는 매일 매 순간 당신을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2천년 전에 당신을 죽인 사람들을 ‘악당들’이라 하며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며 저 스스로를 그들보다 나은 줄 착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에 그 모든 죄악을 기워 갚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당신께서 살아나시어 영광스럽게 되는 날 저도 그 옆에서 당신과 함께 기뻐하며 즐기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은 저를 살려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어 극심한 고통 중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루가 복음 23:44-47에 보면 ‘낮 열 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태양마저 빛을 잃었던 것이다. 그 때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지며 두 폭으로 갈라졌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고 하였습니다.

원조 아담의 범죄로 갈라진 하늘과 땅 그 중간에서 못 박혀 죽으시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신 주님! 당신은 스스로 하느님께 바쳐지는 속죄의 희생양이 되시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휘장을 찢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멀고 아득하여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던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누구라도 당신을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 사랑 지극하신 주님! 당신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십자가에 달려 계신 당신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몸 바쳐 마련하신 그 길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은 이들을 그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세상사람 모두가 당신의 몸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가 거기에서 모두 함께 참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13 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리어져 성모님 품에 안기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고요와 적막감만이 감돌뿐입니다. 온 세상은 캄캄하여지고, 당신을 괴롭히던 많은 사람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소리 없는 흐느낌만이 그 고요를 깰 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만하시면 무엇이든 다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고 피땀을 흘리며 절규하시던 당신! 십자가 위에서 아무의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으시던 당신! 이제는 심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그 혹독한 고통이 다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잔잔한 고요와 평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당신께서는 이제 할 일을 다 마치시고 고요와 평화 속에 머물러 계시지만, 당신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어머니의 엄청난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평생 동정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던 마리아에게 당신께서는 어떻게 하시었습니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당신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잘못하면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고 말씀하시므로 그 엄청난 일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분의 고통의 세월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신께서 태어나시기로 예언된 베틀레헴에서 아기를 낳기 위하여 만삭의 몸으로 머나먼 길을 여행하셔야 했고, 당신을 죽이려 하는 헤로데의 칼을 피하기 위하여 타국으로 피난을 가셔야 했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당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흘 낮 밤을 애를 태우셔야 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열두 살 때에 성전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으셨을 때, 어머니께서 피가 마르는 고통을 느끼면서 당신을 찾아 헤매시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사흘 만에야 당신을 찾아 내,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 하시자, 당신께서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8) 하고 매정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시고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시며 노숙자 생활을 하시는 당신을 찾아 물어물어 오신 그분께 당신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 하시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오 12:48-49)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은 당신을 따르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씀일지 모르지만 당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야속하기만 한 말씀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렇게도 애를 태우셨던 당신께서 이제는 더 큰 고통, ‘마음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픈’(루가 2:35) 극심한 고통을 안겨 드리고 계십니다.

 

오, 사랑 많으신 주님! 그토록 큰사랑을 안고 계신 당신께서 유독 어머니에게는 왜 그렇게도 고통만을 안겨 드리셔야만 했습니까? 왜 좀더 편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택하시지 않고, 그토록 애를 태우시고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까? ‘당신의 죽음’은 곧 ‘어머니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들의 살점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자신의 살점이 떨어지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쳤다’, ‘마귀 들렸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가슴이 아파 달려갔었는데, 이제는 그들을 위하여 어머니 자신마저도 버리고 떠났던 아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애통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는 통곡하셨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통곡하신 것입니다. 일생을 다 바쳐 사랑한 아들!.. 자나 깨나 목매어 그리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매정하게도 자기를 떠나야 한다던 아들!... 그 아들이, 이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참히 죽어 시체가 되어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것입니다.......

 

아! 정말 당신의 사랑을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매정하게 박절하게 대하시는 당신을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하물며 어머니에게까지....

완전히 실패한 사람인 시체가 되시어 어머니 품에 안겨 계신 주님! 당신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 머물러 계시지만, 당신을 품에 안은 어머니의 고통을 그 누가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일생을 다 바쳐 당신을 낳아 기른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신 단 말씀입니까?!

오, 주님! 어서 일어나시어 애통하게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좀 위로하여 주십시오! 당신은 괜찮다고 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두 눈을 꼭 감고 입을 다물고 계신 당신이 너무나도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사랑 하올 주님! 당신이 그런 수많은 고통을 겪게 하신 어머니에게 그 수고의 값을 치러 주시지 않으신다면 그건 너무한 처사이십니다.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당신을 품에 안고 통곡하시는 어머니에게 커다란 상급을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 나중에 제가 혹시라도 당신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면,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제 어머니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드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제 어머니에게도 당신의 어머니에게처럼 커다란 상급을 내려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14 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이제 당신의 모습은 아무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포에 둘러 쌓여 캄캄한 땅 속에 묻혀 계신 당신! 그 누가 당신을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의 몸은 이제 조금만 지나면 썩어 버릴 흙덩이에 지나지 않는 시체가 되어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시체는 썩으면 심한 악취를 풍기기에 그 어떤 더러운 쓰레기보다도 더 사람을 역겹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파고 그 안에 묻어 둡니다. 그리고는 그 위를 밟고 다닙니다.

땅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새 생명을 키워 내는 곳입니다.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땅 속에서 썩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은 전혀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땅 속 그 어두운 곳에 홀로 묻혀 계신 사랑 하올 주님! 그 곳에서 당신께서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엄청난 일을 준비하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감히 당신을 주님이라 부를 수 있으며, 어떻게 감히 영원히 살 꿈이라도 꿀 수 있겠습니까?

태초부터 준비하신 일! 당신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백성들에게 고대하게 하셨던 구원의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보통 사람인 저와 같이 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감히 제가 당신을 따라나설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언제까지나 절대자이신 하느님으로서 하늘에만 계시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저에게 지시를 내리셨다면, 어떻게 제가 당신의 말씀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저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어, 저와 똑같은 고민을 안고, 제가 걸어가지 않으면 안될 길을 따라 먼저 걸어가시었기에 이제 저는 감히 당신을 따라 나서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로 저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 나서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이전의 모든 사람들처럼 무덤에 묻혀서 썩는 것으로 일을 끝내셨다면, 저는 절대로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바로 새로운 참 생명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기에 새로운 삶의 대한 희망으로 당신을 따라 나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주님!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절대로 이런 일을 하실 수 없음을 저는 이 길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땅 속에 들어가 다 썩어 싹을 틔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그렇게 무덤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족하기만 하고 보잘것없는 저를 살려주시기 위해 그 모진 고통을 겪어 오신 주님! 당신께서 저를 위해 그토록 고통을 당하셨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당신 사랑을 기워 갚기 위해 고통을 당하겠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를 제게 넘겨주십시오. 제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몰랐을 때 저질렀던 온갖 죄악을 다 기워 갚아 하느님의 의노를 풀어 드리기 위해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저를 어머니 뱃속에 생기게 하여 주신 주님! 당신께서 제가 있기를 원하시는 그 자리를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모든 사람을 다 다르게 각자에게 맞는 크기와 모양새를 갖추어 만들어 이 세상에 내보내 주셨으니, 주님! 제게도 제가 해야 할 몫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몫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사오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제가 있어야할 그 장소에서 제가 해야 할 몫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하렵니다.

제 몫이 어떤 것이든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 그 자체이시니 제게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제게 주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제가 저에게 주어진 제 몫을 다하고 당신 앞에 나설 때에 당신께서 두 팔을 벌리시고 저를 안아주실 것이며,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다 제게 주실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신 후에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이(생명의 빵)로 내어 주시어 당신을 먹는 모든 사람을 살려 내셨듯이, 저도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라 십자가 위에서 죽어 무덤에 묻힌 후에 당신처럼 부활하게 되면 저의 살과 피를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나누어주어 그들 모두를 살려내어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함께 갈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사랑 하올 주님! 이제 저를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어 올곧게 당신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이렇게 당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심에도 감사드리며, 당신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제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모든 것을 다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언제나 제 안에 살아 계시며 이끌어 주시는 성령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당신으로 인해 세세 영원히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옵기를 비나이다. 아멘.

 

※.교황님의 의향을 위하여 주모경, 영광송을 바친다.

 

♡.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당연히 그 고통을 겪으셔야 하고 자신은 5처의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아파하여 잠깐 그저 그렇게 도와드리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렇게 하는 것으로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결코 예수님의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신 하느님을 주인으로 바로 섬기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주인으로 착각하고 살면서 저지른 잘못을 없애기 위해 꼭 필요한 “자신의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인줄 아는 착각 속에 빠져 빛 자체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어두움 속에서 살아 온 자신의 처지를 아파하며 그 동안 쌓아올린 “자신의 아집”과 “세상의 것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온갖 욕심”과 싸워 승리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참 삶의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7, 21∼23에서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고 말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온 마음으로 그분을 진정 “주님”으로 섬기지 않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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