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에게 - 체면존중 /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9 조회수1,029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체면존중


나는 최근 여러 메시지에서 현대 사목의 모순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는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어서, 아무도, 심지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문제에 대해서 별로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모를 수 없는 모순이다.

그러나 두려움과 체면 존중이라는 장벽을 부술 만큼 용기 있는 목자는 없다. 두려움과 자존심과 쓸데없는 의구심이 함께 뒤섞여 거의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장벽을 넘어가려면 정신통일과 열렬한 마음으로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그 내용을 소화 흡수해야 하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우선 너희 개개인의 내적 생활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그 결과 이를 외적으로, 곧 '신비체'에도 적용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가 생겨날 것이다. 내적 소화흡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외적 소화흡수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통상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은 것이 영혼 속에서도 일어난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실제적이지만 항상 신비로운 소화 과정을 통해서 먼저 다른 물질로 바뀌어 흡수되고, 다음에는 그것이 신체 각 부위로 분배되는 것이다.


정의에 역행하는 죄


자신의 양떼를 오류와 이단에 물들게 한 채, 양우리에, 특히 신학교와 일반 학교에 이리들이 들어와서 영혼들을 대거 죽음으로 몰아넣는데도 그 이리들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정의에 역행하는 죄를 짓는다.

고요한 기쁨의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휴식을 취하도록 조성한 환경에 물질주의가 퍼지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흔히 영적 오염의 장소로 변질시키는 목자와 사제들은 정의를 역행하는 죄를 짓는다.


거만하기 때문에 정신이 어두워져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저 목자와 사제들은 정의에 역행하는 죄를 짓는다. 그들은 제삼자 앞에서 그릇된 입장을 취한다. 즉, 오로지 자기들만이 성령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철저히 조사를 하지 않는다. 놀랄 만한 확신을 가지고 오류를 범하는데, 결과적으로 그 희생자가 된 사람들에게 눈물과 고통을 끼치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자 할 따름이다. 따라서 필요할 경우, 아들을 사랑으로 바로잡을 줄 알고, 그 자신의 행동을 남들의 외적 판단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사목적 모순


아들아, 너는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니, 이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살핀다. 너희로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것을 창조한 하느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 목자들과 수도원 장상인 성직자들 가운데는 훌륭한 정신으로 고무되어 앞장서서 일하는 사제들을 엄하고 딱딱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런 이들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느냐?

네가 보게 되겠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반역하며 소란을 피우고 맡아 있는 양떼를 몹시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처럼 모순된 사목을 통해서는 결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돌투성이인 황무지에 씨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뿌려 보았자 싹도 나기 전에 말라죽고 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의 교회를 괴롭히는 악들을 깊이 탐색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해 보았으나 사실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변명할 자들이 있으리라. 그렇다, 지나치도록 많은 연구를 했다. 그러나 언제나 겉핥기식 연구일 뿐 깊이 파고든 적이 없다.

첫째 원인은 언제나, 폭풍을 예고하면서 무섭도록 격랑치는 바다 밑바닥에 있다. 오늘날의 교회를 괴롭히는 그 첫째 원인은 고위층이나 하위층을 막론하고 야심과 교만이다. 겸손만이 이 어둠을 이길 수 있다. 그러니 상당수의 목자와 사제들이 하기를 꺼리는 대조를 다시 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의 대조이다. 내 삶의 행적은 언제나 겸손과 가난과 순종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았느냐?


베들레헴에서 갈바리아에 이르는 사제다운 삶의 길을 다시 갈 용기가 없는 사람은 오늘날의 교회가 치르고 있는 고통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게 된다. 더욱이, 앞으로 닥칠 무서운 폭풍에 대해서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어린 양과 양들을 목자들과 함께 온통 휩쓸어 갈 그 폭풍으로 말미암아, 피를 흘릴 뿐만 아니라 영벌에 떨어질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일시적인 변덕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과 그 군대의 손아귀에서 영혼들을 빼내기 위한 죽음이었다. 따라서 나는 나의 모범을 따라서, 나와 함께, 날마다 겸손과 가난과 순종으로 갈바리아를 올라가야 할 사람들의 태만 때문에 영혼들이 멸망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들아, 그들은 믿지 않고, 믿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너는 (고통의) 봉헌과 기도에 항구해야 한다.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6일)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아들아, 나는 네 심경을 알고 있다. 내가 너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알게 했고, 그러니 네가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기를 바라며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6월 15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정의


인간 사회에는 악습과 격정이 있고 갖가지 어려움과 불완전이 있으며 온갖 종류의 나태가 있지만, 그럼에도 실천의 정도가 다양한 덕행들이 있다. 이 덕행들 가운데 정의가 있다.

정의는 누구든지 입에 올리는 덕행이니, 누구든지 자기를 정의의 수호자라고 하거나 정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토록 요란하게 외치는 것과 실상은 아주 다르다.


아들아,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학대를 당하고 짓밟히는 덕행이 있다면, 바로 정의라는 덕행이다. 이는 내 교회 안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신자들뿐만 아니라 흔히 내 사제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목자들에게도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이상한 것은 세상 사람들도 이 덕행은 특히 존중하면서도 실천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세상만 그렇다면야,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불행히도 내 신비체인 교회마저 이 덕행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 덕행을 실천하려면 겸손과 사랑이라는 두 덕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겸손과 사랑이 없는 영혼 속에는 정의가 존속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정의가 심하게 훼손되고 불의가 득세하는 것을 보게 될 때면, 겸손과 사랑 부족이 그 으뜸 가는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생활 습관


위에서 말했듯이, 정의라는 덕행이 내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자주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교회의 하위 계층뿐만 아니라 맨 고위층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내 교회를 해치는 이 악 때문에 고통받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 사례(事例)들을 지적해 볼까? 아니다, 아들아. 그러지 않겠다. 너무나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어서, 정의를 어기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징벌을 끌어당기는 불의가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고유의 책임이 있는 내 교회 사람들이 분별없이 계속 저지르는 배반 행위이다.

그런 자들은 각각의 행실에 따른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시대의 조류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심판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변명이 되겠느냐? 이 세기를 사는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야심과 거만과 오류를 생활 습관으로 삼고 말았다. 그래서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미 분명히 말했지만, 나의 생활과 그들의 생활을 대조해 보면 부인할 수 없도록 정반대라는 결과가 나올 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조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무섭기 때문이겠느냐?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심판' 때에는 어차피 대조해야 할 것이고, 그때에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땅 속에서


나 예수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알고 있다.(마태 10,30 참조 - 역주)고 말한 적이 있고,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을 것(마르 9,41 참조 -역주)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쓸데없이 뱉아낸 말 한 마디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겠다는 말도 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무것도 내게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무한히 '자비'가 아닐 것이고, 무한한 '정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들아, 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성인(聖人)들만, 오로지 성인들만 생각할 따름이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은 삶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성덕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반면에 성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굳건한 바위 위에 자기 성화의 집을 지으려고 부지런히 일한다.


아들아, 내가 너희에게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힘주어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도하고 보속해야 할 동기가 내 교회 안에 너무나 많은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네 영혼 가득 슬픔이 고여 있구나. 그러나 언젠가는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니, 지금은 땅 속에서 썩어야 한다. 너는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지, 아들아? 하지만 네 예수인 나는 이해를 받은 적이 있었더냐?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5일)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아들아, 나는 네 심경을 알고 있다. 내가 너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알게 했고, 그러니 네가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기를 바라며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6월 15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

 

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류 프란치스코 회장님의 강의와 만남(2021.03.0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