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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 연중 제8주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7 조회수766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사랑하고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희망에 대한 감사

흔히 옛 서간에서는 인사 다음에 수신인이 탈없이 평안하게 지냄을 두고 신들에게 감사드렸다. 신약 서간의 필자들은 신들 대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바친다. 사실 희망, 뽑힘, 구원의 은혜를 두고 감사드릴 만하고 또 그래서 어려움을 견딜 힘도 생긴다.

 

3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라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된다” “새로 나게 하셨습니다는 세례의 효과를 말한다. “생생한 희망상속구원에 대한 희망이다. 하느님이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니 그 부활은 바로 우리 희망의 근거가 되었다.

 

4

옛 이스라엘의 상속은 가나안 땅을 의미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상속은 종말의 생명의 은총”, “축복”,“구원이다.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는 것은 그 상속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6

6-9절에서는 신도들이 체험하는 어려움과 보람을 말한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그 때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보통의 슬픔이 아니라 신도들이 불의한 일을 당하면서 느끼게 되는 슬픔을 말한다.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슬픔이다.

 

7

찬양과 영광과 영예는 문맥상 신자가 받을 것으로 해석되지만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8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 못하는것을 매우 아쉽게 느꼈던 모양이다. 필자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쁨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기쁨으로 즐거워하십시오“.. 기쁨으로 즐거워합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7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부자가 추종을 거부하다

이 대목의 서술양식은 예수와 부자가 서로 말을 주고 받으므로 대담이라 해도 좋고, 비교적 상세한 상황묘사로 시작해서 예수님이 결정적 말씀으로 끝맺다시피 하므로 상황어라 해도 무당하다. 두 가지를 합쳐서 대담 형태의 상황어라 하겠다.

 

17

17절 서두 그리고 예수께서 길을 떠나실 때에는 예수 상경기의 일환으로서 마르코의 가필이다.

 

유다인들은 선하신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지 않는다. 부자가 예수의 환심을 사려고 호들갑스럽게 군다는 느낌이 든다.

 

영생하느님 나라. 그리고 물려받다는 직역하면 상속받다인데 종말 구원과 관련하여 이 동사를 가끔 사용한다(마태 5.5).

 

18

질문의 해설을 다루고자 부자의 아첨을 일축하시는 말씀이다. 기 구절을 근거로 예수는 죄의식을 지녔다느니 혹은 인간은 본성이 시악하다느니 하는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선하신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시려는 예수의 결의가 은연중 강하게 엿보인다.

 

19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이 십계명에 드러난다고 보셨고 또한 그것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하셨다. 여기서는 심계명 후반부, 곧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만 인용하신다. 다만손해 끼치지 말라는 계명만은 십계명에 없고 신명 25.14; 집회 4.1에서 따온 것인데 그 뜻인즉 가난한 사람에게 정당한 임금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아 그를 곤경에 빠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21

이 부자가 영생을 물려받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한가지를 더 해야 한다. 이 부자에게는 하느님의 또 다른 뜻이 내렸다는 말씀이다. 한 가지 더 할 일은 예수를 따르는 것인데 그러자면 먼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재산포기를 요구한 사실은 마르코복음에나 어록에 뚜렷이 드러난다.

 

유다 묵시문학계에서는 의인들의 선행이 하늘에 보물처럼 쌓인다고 말한다. 21절의 말씀은 거기서 빌려온 표현이다. 어록에도 비슷한 말씀이 전해온다.

 

22

부자는 물신에 사로잡힌 나머지 전적인 그리고 기꺼운 포기를할 수 없었다. 그는 추종과 재산 둘중에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불행히도 재산을 붙들고 늘어졌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세상에서 무소유란 예나 어제나 참 어려운 일이다.

 

23

우선 현재의 문맥을 살펴보면 어느 부자가 추종을 거부한 대목 다음에 도대체 부자들은 구원받기 어렵다는 대목이 나오고 반대로 모든 것을 포기한 제자들은 큰 보상을 받는다는 대목이 있다. 세 가지 대목은 본디 따로 전해왔는데 마르코가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 같다. 마르코는 집성하는 기회에 더러 가필, 윤색했는데 23-27절 가운데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부자가는 가필일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어느 누구를 갈리 것 없이 자력구원은 불가능하고 오직 타력구원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의 다른 말씀에도 드러나는 사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23-27절의 서술양식 역시 17-22절처럼 대담 또난 대담 형태의 상황어이다.

 

24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를 옮긴 것으로, 마르코의 가필일 것이다.

2.5절에서는 아들아“.

 

25

23절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처럼 부자가도 마르코의 가필일 것이다. 그렇다면 25절의 본뜻은 자명하다. 가장 큰 짐승 낙타가 가장 작은 바늘귀로 빠져 나가기는 전적으로 불가능한데 인간이 구원받기는 그보다 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인상 깊고 과장된 상징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25절을 기록된 대로 새긴다면 부자는 구원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자를 두고 왜 이토록 호된 말을 할까? 금력은 흔히 마력으로 둔갑한다. 따라서 금력을 쥔 사람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금송아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물신숭배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재물에는 구원을 가로막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예수께서는 수시로 경고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 부자만 물신을 숭배하는가? 빈자나 중산층이 그렇게 처신 하는 예도 많다.

 

27

구원은 인력을 넘어서는 일. 따라서 하느님의 전능에 기댈 도리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자력구원은 어불성설이며 타력구원은 은혜로운 선물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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