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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장절의 암송이 왜 중요한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27 조회수754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주일 교중미사를 마친 후에 자주 간혹 교우 몇 분과 친교의 시간을 식사를 한 후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 후에 헤어지곤 합니다.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우리가 한번 같이 생각해보고 싶고 공유를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도중에 사제 독신주의를 없애고 신부님도 결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런 소재로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분이 엉터리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실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봤을 땐 실수가 아니고 그분이 잘못 알고 계신 게 분명했습니다. 사실 몇 차례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그곳에서 사제가 아니라 누구나 결혼을 한다고 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는 정말 할 수 없이 정중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 이미 천국에서는 지상에서와 같은 결혼제도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그런 주장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성경 어디에 나오냐고 해서 제가 순간 성경의 장절을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포탈에서 검색을 해서 보여드렸습니다. 확실한 증거 앞에서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검색까지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일곱 분이 같이 있어서 네 명 세 명 이렇게 나누어 자리를 한 상황이라 우리는 네 명 같이 자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세 분이 증인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냥 어느 정도 선에서 침묵을 해야 하는데 제가 엉뚱한 사실을 주장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길래 어쩔 수 없이 검색을 해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평소에도 이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번에는 독신주의가 제2차 바티칸 회의 이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을 어떤 분이 주장하시길래 그 부분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이라 또 검색을 해서 보여드렸습니다. 이때 이분은 순간 헷갈린 것이었습니다. 라테라노 공의회와 헷갈린 것입니다. 이건 비슷해서 헷갈렸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에서야 고백하는 것이지만 어떤 경우는 사실 교우들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성당을 몇 십년을 다녔다고 하지만 정말 신자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신앙 지식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성당을 다니면서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엇을 해박하게 안다는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저도 모르는 게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최소한의 신앙 상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주교 신자라면 다른 것은 몰라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만약 영세를 받은 지 얼마되지 않은 예비자나 아니면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자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가 있지만 몇 십년을 성당에 다녔다고 하면서도 그러니 사실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도 이런 사실을 보면서 저 자신이 반성하며 각오를 다진 게 있습니다. 물론 모든 성경의 장절을 다 암송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성경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더라도 그냥 말씀만 볼 게 아니라 장절을 가급적 암송하려고 합니다. 개신교 때는 철저히 그렇게 해서 성경의 장절을 확실하게 암송하는 노력을 했는데 개종 후에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물론 오늘처럼 정 그런 상황에서는 폰으로 검색을 해서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성경의 내용은 가급적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성경에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바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제가 정확하게 하느님 말씀의 주소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쉽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대충 아는 것과 확실하게 아는 것 차이입니다. 실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 말씀 속에 있는 깊은 성경적인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성경 책 속에 있는 그 말씀 그 자체의 텍스트의 내용만이라도 알아야 최소한의 천주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사실 어디 가서 천주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요즘은 사실 예전에 비하면 천주교에서도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곤 합니다. 과거에는 개신교 신자보다 성경을 많이 보지 않는다는 말씀을 많이 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겠지만 그 격차가 많이 좁혀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요즘 개신교도 보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씀을 들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 문명의 발달이 초래한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주일이나 새벽기도에 가려면 성경을 소지하는 게 그냥 필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젠가부터는 개신교도 심지어 주일에 성경을 지참하는 게 거추장스런 일로 전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설교 강단 위에 빔 프로젝터로 성경 말씀을 띄워주니 자연스럽게 성경을 굳이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일부 개신교 내에서 늦은 후회를 하곤 합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런 문화가 자리를 잡은 후에는 상대적으로 전보다는 말씀을 덜 접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문명의 이기를 잘 이용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게 문명을 따라 가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디지털 방식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보는 것은 아날로그 방식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건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이유는 휴대하는 불편함 때문입니다. 이 불편함이 없다면 누구나 화면이 아닌 성경을 보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 있었던 사례를 통해서 앞으론 가능하면 다시 예전 개신교 다닐 때 했던 방식으로 성경을 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단순히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최소한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영혼에 새겨넣었다는 인식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하느님 말씀이 머리로만 스쳐지난 것밖에 되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면서 그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인연이 돼야지 그냥 스쳐간 인연으로만 기억된다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가 생각하는 이런 뜻도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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