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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10 조회수403 추천수1 반대(0) 신고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 12,8).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고 있다. 자선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며,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주신 성체성사의 나눔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는 신앙 행위이다.

 

오늘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소외된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특별 헌금을 통하여 자선을 실천한다. 교회는 자선이라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1독서

<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5,1-6.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2독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5,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기다림 가운데의 인내심

1-6절과 7-11절을 비교해 보면 대상과 주제는 바뀌지만, 종말사상은 계속된다. 7-11절의 대상은 부자가 아니라 억압당하는 신자들에며 주제는 이미 1.2-4.12에서 언급되었던 인내다. 이 인내는 종말의 시대에 요구되는 태도다.

 

7

내림은 본래 국왕이 어느 도시를 공식 순시함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서 이 말은 흔히 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느님이 심판하러 오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내림외에도 야고보서에는 종말과 관련된 표현이 다양하다.

 

가을비와 봄비를 직역하면 이른 것과 늦은 것이다. 그리스어 문법상 이른 열매와 늦은 열매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팔레스티나의 농사와 구약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관용어를 생각하면 본문의 번역이 옳을 것이다. 지중해 연안 지방에는 4월부터 10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을에 오기 시작하는 비는 이른 비이며 몸에 마지막으로 오는 비는 늦은 비. 이 비유의 내용은 마르 4,26-29를 연상시킨다.

 

9

9절은 7-8절과 10-11절의 맥락을 끊는 단절어다. 그 내용은 4,11-12와 비슷하다. 7-8절과 9절의 공통된 점은 종말이 임박했다는 사상이다.

 

10

예언자들은 이미 유다교에서 인내의 본보기 및 순교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신약성서에서도 이런 전통을 받아들인다.

 

 

 

 

 

 

 

 

 

 

복음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요한 세례자의 질문과 예수의 답변

11.2-19(루카 7.18-35)는 어록에서 옮겨쓴 것이다. 요한 세례자가 예수의 정체에 관해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임을 함축적으로 답변하신다(2-6). 그리고서 요한 세례자에 관해 미리 관점에서 매우 긍정ㅈ거인 평가를 내리신다(7-19). 예수님과 세례자에 관해 이만큼 많은 전승들이 이미 어록에 수집된 것을 볼 때, 어록 편집자 주변에서 두 분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 1.14(마태=4.12)에 따르면 요한이 체포되어 활동을 마친 다음에 예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세례자는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 요새에 한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처형되었다. 과연 세례자가 감옥에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제자들을 시켜 질문했고 예수님은 마태 11,4-6처럼 답변하셨을까? 이 단락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다.

 

곧이곧대로 사건을 전하는 보도가 아니고 이사야의 예언을 이룩하신 메시아라는 믿음을 드러내는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수님이 5절에 열거한 치유이적-소생이적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고(8-9절 참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도 사실이므로(5.3 참조), 5절의 예수님 활약상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하겠다(13,16-17 참조).

 

2

편집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분을 예고한 바 있다. 그분은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면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온갖 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주셨다”(4.23). 예수께서 구원과 복음에 치중하셨지 전혀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으니 세례자는 의아하게 여겨 예수의 정체에 관해 묻는다.

 

5

5절의 구원기적들 서술은 이사 29,18-19;35,5-6의 영향을 받았고,“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습니다는 이사 61.1을 응용했다. 6절의 구원자요 복음전달자인 예수 메시아를 믿으면 복되다는 뜻이다.

 

요한 세례자에 대해 말씀하시다

11.7-19(루카=7.24;16.16)는 어록에서 옮겨쓴 단원이다. 예수께서 세례자를 극찬하신 말씀(7-11), 세례자의 구원사적 위치에 관한 말씀(12-15),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비유(16-19)로 짜여 있다.

 

7

군중은 세례자를 예언자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9),“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신다(11ㄱ절). 예수께서는 21.25.32에서도 요한을 높이 평가하신다.

 

요한이 27년경 요르단 유역에서 대대적인 세례운동을 전개하자 무수한 사람들이 몰려가 세례를 받았다. 요르단 강변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갈대는 바람에 쉬 흔들리는 까닭에 지조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유이기도 한데, 요한은 그와는 정반대로 매우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3.7-10). 그는 포도주나 술을 마시지 않았다. “요한이 와서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귀신들렸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18).

 

10

10절은 출애 23.20; 말라 3.1을 합친 혼합인용문이다. 뜻인즉,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려고 먼저 온 심부름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고자 혼합인용문을 만들었다는 게 통설이다.

 

11

12-15절에 있는 세례자의 구원사적 위치에 관한 말씀들은 난삽해서 그 뜻을 밝히기가 어렵다. 12-13절은 병행문이 루카 16.16에 있으니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루카 형태는 알아듣기 쉬운 데 반해, 마태오 형태는 거의 불통이다. 막힌 곳을 뚫는 일 또한 주석이나 편집사적 관점에서나마 풀이할밖에.

 

요한 세례자도 예수님도 하늘나라와 회개를 선포했다. 선포 내용이 같다. 마태오는 요한 세례자의 날부터 지금까지를 한데 묶어 하늘나라 시대로 보았다.

그런데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한 하늘나라는 힘에 눌리고 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요한을 마캐루스 요새에 가두었던 것이다. 또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를 잠가 버린 결과, 그들 스스로도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들어가도록

 

가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힘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강탈한다”. 그런가 하면,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비유에서 보듯이, 이 세대 민중은 요한에게도 예수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하늘나라 선포가 어려울 수밖에.

 

하늘나라는 힘에 눌리고 있는데...” 대신 하늘나라가 힘쓰고 있는데 ...”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뜻이 문제다.

 

예언자들과 율법시대(13). 하늘나라를 예고하는 구약시대는 요한 직전에 끝났다. 요한은 예수님과 더불어 하늘나라 시대에 속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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