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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2) 당신은 왕(王)의 아들들입니다.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30 조회수294 추천수1 반대(0) 신고

 

창세기(2)

 

당신은 왕()의 아들들입니다.     2023. 3. 30

 

(창세1,1-3,26)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어떤 사람이 70년 한 평생을 종()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궁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왕궁에서 새로 발견한 족보를 보니까 당신은 왕의 아들입니다. 정변(政變)이 일어나서 왕궁에서 쫓겨나 이렇게 종의 생활을 하는데, 당신은 원래 종이 아니라 왕의 아들입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 관한 이야기고,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430년을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에 식민지로 있어도 아직 그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예전에 아침마당에 일본위안부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이 나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14-15세의 소녀들이 20만 명이나 일본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아침마당에서 잠시 보여준 영상에 보면 일제가 위안부소녀들을 큰 웅덩이에 넣어서 불태워서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는데, 짧은 영상이지만 너무나 큰 아픔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얼마 전에 일본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명 군함도라고 불리는 하시마섬이라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그 섬이 일본의 근대화를 원형으로 보여주고 자랑하고 하지만, 그 섬 지하에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석탄을 캐다가 죽어갔던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36년 동안 식민지생활을 해도 아직까지 상처와 아픔이 있는데, 이스라엘백성들은 430년을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백성들은 뼛속까지 자신들은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은 종이며,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원래 너희들이 누구이며, 하느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했습니다.

특별히 하느님께서 창세기1장을 통해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장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창세기1,26절입니다.

 

(창세1,26)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여기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종이 아니다. 너희들은 이 땅을 창조한 하느님을 닮은 왕의 아들들이다. 그래서 이제 너희들은 이 세상의 종이 되지 말고, 왕의 아들들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자가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들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왕의 아들들이라고 했을 때 이 말씀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430년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면서 배웠던 것이 사람들이 만든 거짓 신화들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신의 아들이고, 인간들은 신의 아들인 파라오의 종이 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이집트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종으로 삼기 위해서 거짓된 신화를 만들어서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파라오의 종이 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또 이집트 왕 파라오는 나일 강의 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경배하고 섬기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때 10가지 재앙을 통해, 첫 번째 재앙으로 나일 강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것(탈출7,14-25)은 나일강의 신 니루스(Nilus)를 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외 나머지 모든 재앙들은 이집트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을 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집트에서 신처럼 섬겼던 그 모든 것들은 하느님이 보실 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느님께서는 파라오를 홍해에서 죽이심으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홍해에서 나온 후에 탈출기1518절에서 야훼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이집트 왕 파라오도 아무 것도 아니며, 이집트 사람들이 만든 신들도 아무 것도 아니며, 하느님만이 참 신이시며, 왕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창세기 1장을 통해서 그래서 이제 너희들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들이다. 너희들은 종이 아니라 왕의 아들들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1티모1,4) 4 신화나 끝없는 족보에 정신을 팔지 말라고 지시하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믿음을 통하여 알려지는 하느님의 계획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억측만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사탄은 우리에게 거짓된 신화를 만들어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이 만든 거짓된 신화는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거짓된 신화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물을 주는 나일 강을 신으로 섬기고, 곡식을 주는 땅과 태양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유일한 신은 오직 돈()입니다. 물질입니다. 돈이 우상입니다. 물질이 우상입니다. 그래서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돈과 물질의 영원한 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보더라도 왜 우리가 울고 웃습니까? 다 돈 때문입니다. 물질이 내게 있으면 웃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없으면 우리는 항상 우울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그 사람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따라서 평가합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굉장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그 사람의 존재가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이 세상과 물질의 종이 아니다. 너희는 이 세상과 물질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왕의 아들들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베드2,9)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430년을 이집트의 종살이를 하면서 거짓신화로서 이집트의 종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느님은 너희들은 이집트의 종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왕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돈 때문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우리, 그래서 이 세상과 돈의 영원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내가 너희들의 진짜 족보를 보니까 너희들은 이 세상과 돈의 종이 아니다. 너희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너희들은 왕이신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왕의 아들들이다.고 오늘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과 돈의 종이 아니라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들로서 이세상과 돈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존재라는 말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만드신 왕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무조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짐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은 돈과 세상을 소유함으로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은 너희가 이 세상과 물질의 종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도리어 우리가 이세상과 물질에 대한 소유의 욕망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는 아들만이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에 여성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을 만드신 왕의 아들들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세상에 나가면 돈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너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전히 그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왕의 아들들이다. 나는 이 세상과 물질의 소유의 욕망에서 자유하는 자다.” 고 큰소리를 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왕의 아들들이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고 말하지만 내 손에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나의 인격과 삶을 볼 때 전혀 왕이신 하느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당시의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는 종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이다, 거룩한 나라고 하느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왕 같은 제사장나라다 고 하셨지만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또 그들이 출애굽 하였지만, 여전히 광야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순종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소유에 있어서도 무()였고, 하느님의 백성과 삶에 있어도 하느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왕의 아들들이다고 말하지만, 아무 것도 손에 가진 것이라고 없는 이스라엘백성들, 그리고 전혀 하느님의 백성다운 모습이라고 전혀 없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의 말씀은 단순히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창조 하셨느냐?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왕의 아들들인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의 삶을 어떻게 창조하시며 만들어갈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통해서 왕의 아들들인 우리의 삶을 창조하시고 만들어 가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듯이 우리의 삶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1,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이 세상을 무에서 유로 창조했다는 이야기만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듯이, 아무 것도 없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삶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55절에 보면 하느님은 자식이라는 전혀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셀 수 없는 뭇별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늘과 별과 같은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15,5). 자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브라함에게 왜 하늘의 뭇별들을 보라는 말씀은 아무 것도 없는 하늘에서 별을 만들어낸 것처럼 없는 자손도 저 하늘의 별과같이 만들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331 예레미야가 아직 경비대 울안에 갇혀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그에게 내렸다. 2 땅을 만드신 주님(), 그것을 빚어 든든히 세우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의 이름은 주님이시다. 3 “나에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대답해 주고, 네가 몰랐던 큰일과 숨겨진 일들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예레미야에게 무에서 유로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느님께서10절을 보면 이 도성은 내가 이곳 주민들에게 베푼 온갖 좋은 것을 전해들은 이 세상 모든 민족들 앞에서, 나에게 기쁜 이름과 찬양과 영광이 될 것이다.” 고 말씀하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왕의 아들들이라고 하지만 여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의 세상을 만드신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우리 삶에서 유를 창조해주실 것을 믿으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전심을 다하여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흑암(黑巖)과 혼돈(混沌)과 공허(空虛)의 세상가운데 함께 하셨듯이, 아직 부족한 우리와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창세기 11절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말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절은 무에서 유를 처음 창조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 창세기12절은 사람으로 말하면 태아의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가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머니 뱃속의 태아도 분명히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지만 아직 더 자라지 못한 인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창조했을 때 이 세상의 상태가 태아의 상태와 같은 것처럼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은 분명 왕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태는 창세기12절과 같이 어둠이고, 무질서고, 공허입니다. 성경에서 어둠이란 그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의 상태는 혼돈(混沌)이고 무질서(無秩序)입니다. 즉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는 상태에 있습니다. 또 그들의 삶은 공허(空虛)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처음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었지만, 우리의 삶이 어둠(흑암)과 같이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우리의 삶에 질서 즉 삶의 우선권이 바로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삶이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공허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12절의 말씀을 통해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백성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너희가 마치 인간으로 말하면 태아의 상태이고, 세상으로 말하면 어둠과 무질서와 공허의 상태이지만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어둠과 무질서와 공허의 세상가운데 하느님의 영()이 그 위에 운행(運行)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운행한다(감돌다)는 독수리가 어린 새끼 위를 너풀거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32장에 보면 내가 너희를 짐승이 부르짖는 것과 같은 험한 광야에서 만날 것이며, 내가 너희 주위를 둘러서 호위할 것이며, 내가 너희를 나의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며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 위를 너풀거리듯이, 혼돈의 세상가운데 하느님의 영이 운행하듯이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신명32,10-12).

 

그래서 시편 57편에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동굴에 피해 있을 때 어떻게 말합니까?

(시편57,2) 2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 영혼이 당신께 피신합니다. 재앙이 지나갈 그때까지 당신 날개 그늘로 제가 피신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내 인생이 마치 독수리새끼와 같이 끊임없이 날개 짖을 해도 계속해서 내려가고 내려가는 것같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네 인생이 날개 짓을 해도 끊임없이 내려가고 내려간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다. 한 순간도 너에게서 내 눈을 뗀 적이 없다. 나는 나의 성령을 너에게 보내주어 너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끝까지 지키며 보호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어둠이고 혼돈이고 공허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하느님으로 인해서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왕의 아들들로서 완전하게 만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창세기13절부터 3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어둠의 세상에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첫째 날입니다. 또 혼돈과 무질서의 세상에 질서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둘째 날과 셋째 날입니다.

둘째 날에 하늘과 땅의 질서를 만드시고, 셋째 날에 땅과 바다의 질서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질서를 만드신 후에 공허한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사역이 넷째 날(궁창 충만), 다섯 째날(바다 충만), 여섯째 날입니다(땅 충만).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이렇게 완전하게 만드신 것처럼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희망의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우리의 삶에 희망의 빛을 만들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혼돈과 무질서의 삶 가운데서 질서가 있는 삶을 만들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공허하고 허무한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로만 하느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진짜 하느님의 아들들답게 완전하게 만들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세기 11절은 성부하느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창세기 12절은 성령하느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3절부터의 일하심은 성자예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116절에 “16 만물이 그분(성자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성자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13절과 6절과 9절과 14절과 20절과 24절에 모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3절에 모든 것이 그분(말씀예수)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고 계십니다.

 

(2고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지금도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으면 창조 때와 같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이 고린도후서514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창조합니다. 우리는 돈이면 모든 것이 된다는 세상의 거짓신화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내게 돈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너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은 희망이 있습니다.” 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질서, 즉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은 공허하고 허무한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월요일은 원래 우리를 사랑하시고, 화요일은 우리를 화끈하게 사랑하시고, 수요일은 우리를 수수하게 사랑하시고, 목요일은 우리를 목 빠지게 사랑하시고, 금요일은 우리를 금처럼 사랑하시고, 토요일은 우리를 톡톡티게 사랑하시고, 주일은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월요일에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삶의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화요일 수요일에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내 삶의 최우선순위가 오직 하느님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에 힘을 입어 내 삶의 모든 부분에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삽니다.

그리고 이제 안식일인 주일에 예수님의 다그치시는(强勸) 사랑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성도(聖徒)들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왕의 아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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