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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회장의 명재판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24 조회수683 추천수0 반대(0) 신고

문 회장의 명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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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신부 행차를 고관의 행차처럼 꾸미고 죽산을 지나는데, 촌민 한사람이 자기가 양인을 잡았는데 저 포졸들은 저희들이 상을 타 먹으려고 자기들이 양인을 잡았다며 빼앗으려고 해서 지금 싸움이 벌어졌으니 시비를 가려달라고 고발을 한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90-93)

 

호기 있는 벽제( 除)소리에 사람들은 양편으로 갈라선다. 그 가운데를 통과하는데 한사람이 불쑥 나서더니 회장의 말고삐를 잡고 절을 굽실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보아하니 대관 행차인데 잠깐 아뢸 말씀이 있나이다. 소인이 오늘 아침에 양인 한사람을 잡았는데 저 포졸들이 상을 타 먹으려고 저희들이 잡았다고 양인을 빼앗으려고 해서 지금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양인을 잡았어? 그럼 그 양인이 어디 있나?”

“예 결박하여 저 아래 집에 가두었습니다.”

“분명히 양인인가?”

“예, 분명하옵니다."

양인을 잡았다는 말에 권 신부와 회장의 가슴은 내려앉는다. 지금 양인이 잡혔다면 강 신부임에 틀림없다.

“그럼 네가 전에 양인을 본 일이 있느냐?”

회장은 가슴이 뛰는 것을 누르며 태연한 척 위엄 있는 태도로 이렇게 추궁해 본다.

“전에 양인을 본 일은 없습니다.”

촌민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자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양인인 줄 알았단 말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양인은 머리털이 노랗고 코가 크다는 말을 들었사온데 오늘 아침 소인이 꼭 그런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저 포졸들이 나중에 와서 그를 빼앗으려고 해서 말썽이 되었습니다.”

포졸들은 닭 쫓던 개 울 쳐다보기로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보고만 있다. 회장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보아도 양인이 분명하냐?”

하고 물었다. 포졸들은 약간 기운을 얻은 듯 한 놈이 불쑥 나와서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양인이 분명합니다. 소인들은 양인을 잡으라는 나라의 영을 받고 나섰으니 저희가 그 양인을 관전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옵니다. 저 촌민이 양인을 끌고 가다가 중도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들은‘죽산’포졸이었다. 나중에야 어찌 되든, 우선 이만큼 그럴 듯하게 대답을 하고 나니 포졸들도 원기가 회복된 모양이다.

“그럼 양인을 어서 이리로 압령 해라!”

하는 회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포졸들은 양인을 가두었다는 집을 향하여 쏜살같이 내닫는다.

회장은 약간 의아한 점이 없지는 않으나, 만일 강 신부가 잡혔다면 대체 이 일을 어떻게 무사히 처리할 수 있을까 하고 꾀를 짜내는 중에

“저기 양인이 끌려온다!”

하는 아우성 소리가 군중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연이어 포졸들이 결박된 양인이라는 자를 끌고 왔다.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는 분명히 강 신부는 아니었다. 코가 주먹처럼 둥글게 크고 머리털이 유달리 노란 순박한 촌민이다.

회장은 가슴속의 불안한 그림자는 없어지고 그 대신 일어나는 간지러움을 억지로 누르면서

“네가 과연 양인이냐?”

하고 물어 보았다. 군중들의 긴장된 시선은 회장과 양인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대체 어떤 처벌이 내릴까 대단히 흥미 있는 모양이다.

“소, 소인은 양인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결박당한 가련한 촌민은 간신히 이런 대답만 해놓고 억울함을 참지 못하여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린다.

“네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 사는 백성이냐?”

“소인은 김만돌이라 하옵고 살기는 안성 적재울이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장날이라기에 처음으로 장보러 왔다가 그만……."

촌민은 제 서러움이 복받쳐 말끝도 맺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고 있다.

회장은 그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한다. 여기서 그를 양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방면한다면 자기가 떠난 다음에 이 가련한 백성이 과연 무사할지 알 수 없고, 또 저들의 머리 속에는 양인이라는 확신이 박혀 있은 즉 자기 일행에게도 꺼림칙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아무런 판결 없이 떠나는 것은 자기 권위도 양심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들 들어 보아라. 양인은 조선 사람이 아니고, 양국 사람이란 말이다. 만일 이 백성이 안성 적재울에 사는 것이 분명하면 양인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그러면 이 사람을 먼저 붙들었다는 사람과 너희 포졸들 몇 명은 나와 같이 적재울까지 가 보자. 과연 그 동네 사람인지 가보면 알 것이 아니냐?”

회장은 마침내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 적재울이란 동네는 다행히 문 회장 일행이 가는 길옆에 있는 마을이다. 구경꾼 중에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은 과연 명판결이라고 머리를 끄덕이고, 어떤 무리는 큰 구경거리를 놓친 듯 서운해하는 군중까지 데리고 길을 재촉했다.

포졸까지 내세운 행차인지라 앞에 거리낄게 하나도 없다. 마주 오는 행인들은 혹시나 자기에게 책잡힐 일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슬슬 길을 피한다. 양인을 잡으러 나선 포졸들이 진짜 양인을 이처럼 호위하고 가는 꼴이란 실로 우스웠다.

이윽고 행차는 이십 리 거리를 달린 후 적재울 앞에 멈추었다. 동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들어 둥그런 눈으로 쳐다본다.

“아, 저 만돌이가 대체 어찌된 일이여! 무슨 짓을 하다가 저렇게 되었나?”

그들은 서로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회장은 만돌이가 분명히 이 동네 사람인가 물어 보았다.

“분명하옵니다. 저 사람은 이 동네서 태어났고 이 동네서 자랐습니다. 제 아비는 10여 년 전에 죽었고 어미는 바로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에는 아내도 있고 어린것도 둘이나 딸려 있습니다. 황송하옵니다마는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오나 그저 널리 통촉하심을 바라옵니다."

동장의 이러한 회답을 들은 회장은 성을 벌컥 내며 포졸들을 바라보고 호령을 한다.

“네 이놈들 보아라! 너희들이 양인을 잡는다고 공연히 촌간으로 돌아다니며 무죄한 양민을 못살게 구는 그 죄는 죽어도 싸지 않느냐!”

포졸들은 새파랗게 질리고 양인을 잡았다는 사람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안심하였다. 김만돌은 회장 앞에 백배 치하하고 물러갔다.

“너희 놈들을 안성 관가로 끌고 가서 톡톡히 버릇을 고쳐줄 일이로되, 이번엔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니 이후로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양인을 잡아 바치고 만약 양민을 착취하고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면 그때는 너희 모가지가 달아날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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