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뭐가 그리 두렵냐고요~]
작성자박선환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19 조회수2,481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12주일

                             <뭐가 그리 두렵냐고요>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오늘은 연중 12주일이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힘이 부진했던지 지난 15일에 있었던 북한군과 해군의 교전

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은 그 결과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분석과 협상이 한창인데, 부디 양쪽 당사자간

에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동포애가 전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

리 모든 신자들께서도 이런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한마음

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1독서인 예레미야서의 내용은 야훼의 말씀을 받아 전했던 예레미야가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하느님께 마음속의 불평을 털어놓으며 하소연

하는 장면입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께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큰 벌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잘못은 이

런 것이었습니다. [바알 신에게 제단을 쌓고 저희 자식들을 불에 살라 번제로 바

친 일](예레 19,5)이 바로 그것입니다. 야훼의 진노가 얼마나 컸던지, 예레미야

는 야훼께서 시키시는 대로 오지 그릇 하나를 깨버린 다음, [그 깨진 그릇을 다

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야훼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마을을 그

렇게 벌하시겠다]는 예언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때 예레미야가 야훼께 하소연을 하면서 했던 말이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아마도 예언자의 괴로움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요, 동족을 벌하시

려는 그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입장이 마음 아팠지만 야훼의 말씀이기에 거역할 수

조차 없는 딜레마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겠죠. 예레미야는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

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가서 …날마다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지만, …뼛속에 갇혀 있던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사람의 뱃속을 아시고 심장을 꿰뚫어 보시는 공정

한 감시자인 야훼여, 저들을 고소하는 이유를 밝히 말씀드렸사오니, 이제 이 백

성에게 제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예레 20,7-13 참조).

예레미야는 자기가 했던 예언의 값을 백성들로부터 치뤄야했지만 하느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심을 믿는 마음으로 예언자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려 하고 있습니

다.

 

한편으로는 야훼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고, 한편으로는 말

씀을 전하면서 다가오는 보복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예레미야 예언자의 모습

은, 오늘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투신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도 같다고 생각됩니다.

 

사제들이 일년에 한두 차례씩 신자들을 향해서 [이웃에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

하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주문을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신자들의 입장이

어떠할까를 헤아려보게 됩니다. 생각으로는 [과연 그렇게 해야겠다]는 동의를 할

지라도, 정작 [복음을 전하려 하니까 내가 아는 게 없어서 자신이 생기지 않더

라] 라는 생각도 들 것이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방문하는 것은 도무지 내 성

격과 정서에 어울리지 않아서 잘 못하겠다]는 생각도 있겠죠. 또 [성당에 같이

나가자고 해서 나가기 시작해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이 힘겹고 어렵

다는 생각]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 [내 한 몸도 말씀을 따르기가 힘

겨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겠고, 어떻게 그들 앞에서 나도 잘 안돼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도 생각이 들겠죠. 어쩌면 오늘 예레미

야 예언자처럼 [공연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나 자신도 사람들 앞에서 성호 긋는 것이 어색

해서 생략하거나 [마음속으로 하면 되지]라고 지나치는데, 이런 사람이 뭘 하겠

습니까] 라는 분도 계시겠죠.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잘도 헤아리시는 예수님의 오늘 복음의 첫마디가 바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마태 10,26) 라는 것이었습니다. [매일미사]를 보

니까 [이 말씀은 오늘 복음의 핵심이다] 라고 해놨습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상황들은 우리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믿음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에 그런 마

음을 억누르는 두려움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행동을 일부러 자랑하려고 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하느님을 향해서 있다면 그 마음은 항상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밖

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속으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

은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부끄러워하지 않

는 사람은 어느 장소에서건 하느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마음과 정성을 봉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곧 우리의 언행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행하는 신앙 행위는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밝히 드러나야 하고, 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 미사 때마다 우리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세

상에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도로서 파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한번 더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마태 10,32). 하느님을 증언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

를 갖습니다. 말 그대로 말로써 복음을 선포하는 동시에, 그 상대를 향해서 묵묵

히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을 체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를 통해서 표현한다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대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 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그는/정호승)

 

우리들도 우리들의 이웃을 향해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

느님 이외에 아무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은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하느님

의 특권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하느님 안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을 살아가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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