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끝기도
작성자전재석 쪽지 캡슐 작성일1999-11-18 조회수3,383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제 저녁은 그 전날 마신 술과 늦은 잠 탓에 무엇인가 허전한 하루이었습니다. 육신이 피곤하니 정신이 맑지 못함을 실감합니다. 성당에서 돌아와 우선 무거운 몸을 풀기 위하여 하상이에게 DDR(dance dance revolution)을 틀어달라고 하여 10분 정도 운동을 하였습니다. 몸에 땀이 나올 것  같은 상태가 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집니다. 며칠 동안 저녁기도를 제대로 않더니 영혼의 양식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몸이나 피곤함을 느끼거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우울할 때에는 기도하는 것도 귀찮아 집니다. 기도를 한다고 하여도 빨리 끝내고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건성으로 하게 됩니다.

 

기도방이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기도를 하면 되는 것이지만 저녁시간에는 특별한 장소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좀 더 나은 기도를 드릴 수가 있어 좋습니다.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보다는 컴컴한 방 안에 초에 불을 켜서 꿇어 앉아 드리는 기도가 절대자에 대한 겸손을 나타낼 수가 있으니 나에게는 더욱 맞는 것 같습니다. 형광등 불빛은 방안을 골고루 비춰주니 정신이 방 구석구석으로 흩어지는 산만함을 느끼게 하지만 촛불은 촛불을 중심으로 하여 초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니 나의 시선이 가장 밝은 두개의 촛불 사이에 마음을 모을 수 있어 좋은가 봅니다. 그리고, 밝은 곳에서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남이 볼세라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부자유스럽더니 촛불 앞에서는 빛이 그렇게 밝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부끄럼 없이 나의 마음을 드러낼 수가 있어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하여는 나의 마음에 빛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진데, 그런 면에서도 촛불이 은은하면서도 다소는 어두운 듯도 하니 나를 중심에 두고 묵상하기에 더욱 좋기도 합니다.  촛불은 침묵에 가장 어울리는 불빛 입니다.  아무 불빛도 없는 곳에서는 암흑에 짓눌려 다소의 두려움에 싸이기도 하여 오히려 기도에 방해됨을 느끼나 희미한 불빛과 함께 할 때에는 불빛이 흐르는 느낌을 주니 잠자고 있는 마음을 흔들어 밑바닥을 들여다 보기가 더욱 쉬울 것이리라 생각도 하여 봅니다.

 

어제 성무소일과의 끝기도 시편 중에는 연도의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낯익은 귀절이 나옵니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 주여 내 소리를 들어주소서’ 어젯밤과  같은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나에게는 무엇인가 마음을 때리는 말씀 입니다. 세상의 일에 기쁨을 찾지 못하고 허탈함에, 그리고 세상 속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인간의 힘으로 구렁에서 빠져 나오려다가 지쳐버린 그 나약함에 하느님께 다시 매달리게 하는 말씀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여야 할 일이면서도 하기 싫어 주춤거리고 있는 나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주님께 대한 외침이 되어 돌아 옵니다.  내가 부르짖는 소리는 나를 일으켜 세워 달라는 애절한 간청일 수도 있겠지만 구렁 속에 빠져 허덕이는 그 울부짖음도 기도라 믿습니다. 하느님은 내가 달라고 하기 전에 벌써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아버님 이시기에 그냥 울부짖기만 하여 봅니다.

 

밤기도는 하루의 일과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루중의 나의 삶이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았는지를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성찰하여 보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하고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도록 하느님에게 청하여야 할 것입니다만………….. 그러나, 이 시간이 되면 내가 하루 중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설령 한두 가지 생각이 떠오를 때에도 잘못이 맴돌기는 하여도 제대로 성찰이 되지 않아 그냥 스쳐가기가 십상 입니다. 오늘은 하느님께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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