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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디에다 씨를 뿌릴 것인가?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0-09-23 조회수2,065 추천수11 반대(0) 신고

9월 23일 : 연중 제24주 토요일

 

어디에다 씨를 뿌릴 것인가?

 

사람은 항상 자신의 흔적과 자취를 남길려고 한다.

그래서 자식을 낳아 대를 이음으로써 자신의 자취를 남기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본능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유명 산들의 좋은 바위들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이름자를 새겨놓은

수많은 낙서(?)들을 보기도 한다. 바티칸의 첨탑에도 수많은 낙서들이 있고

거기에는 한국 사람들의 자취들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자신의 자취와 흔적을 남기는 최선의 방법일까?

 

진정한 자취와 흔적은 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것일게다.

독재정권일수록 위대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든다.

이러한 외적인 작품들은 내적인 것을 반영할 때만 의미가 있다.

보통은 거창한 작품일수록 내면적 가치는 그만하지 못할 때가 많다.

 

위대한 인물은 외적인 자취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향기는 거의 영원히 남는다.

예수가 그랬고, 석가가 그랬고, 마호멧도 그랬다.

각 종교의 성인성녀들이 그러하였고 위대한 인품의 소유자들은

내면적 가치를 남기려 노력하였다.

 

우리 한국교회도 갈수록 내면적 가치보다는 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나

않나 심히 고민스럽다.

성인들은 삶의 향기를 남겼는데

우리는 그들의 삶보다는 외적인 거창한 성지계발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살았는데

우리는 거창한 성당을 지어 예수님을 궁전에 거하시도록 감금시키는 것은

아닐까?

이름없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거창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함으로써 마치 대단한 듯이 보이려 하는 것은 아닐까?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묵상하며

과연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기 위해

어디에다 씨를 뿌려야 할 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성지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백배의 열매를 맺는 씨뿌림이 되는 것일까?

 

과연 거창한 성당을 짓는 데 투자하는 것이

백배의 열매를 맺는 씨뿌림이 되는 것일까?

 

과연 거창한 사회복지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백배의 열매를 맺는 씨뿌림이 되는 것일까?

 

왠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름은 나의 지나친 우려일까?

 

혹시 이러한 투자가

잘못 뿌려진 씨앗은 되지 않을까?

 

길바닥에 떨어진 씨가 되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가 되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가 되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 거창한 열매가 맺어지는 듯이 보이는 것이

과연 진짜일까?

 

적어도 예수를 통해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리라.

 

그렇다면 내면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지나친 성지개발에 쏟아붓는 열성보다

우리 스스로 일상생활 안에서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씨뿌림이요

거창한 성당을 짓는 것보다

소위 <선교본당>이나 <공소>에 실질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좋은 씨뿌림이요

거창한 사회복지 시설에 투자하는 것보다

우리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씨뿌림이 되지는 않을까?

 

오늘

주님께서는 다시한번 우리에게 되물으시는 것같다.

 

너는 어디에 씨를 뿌리겠느냐?

 

너는 어디에 진정 투자하겠느냐?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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