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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즐거움속에서주님을섬기라(12/21)
작성자노우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0-12-20 조회수2,542 추천수9 반대(0) 신고

난...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상에 오래 앉아 있기보다는 분주히 아이들 틈을 헤메고 다녀야 한다...그리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신자들이 아니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 신부라는 사람을 무슨 외계인 처럼 취급하는 아이도 있으니 말이다...신자 청소년들 역시 그렇다.  때론 신자들과의 관계가 더욱 어려울 때가 있다....내가 사제라는 사실이 그들과 가까이 지내기에 때론 장애가 될 때도 있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하느님을 전하고 증거해야하는 사제의 삶!!

위와 같은 경우를 겪으면.. 참으로.. 허탈해진다...맥이 빠진다고 할까?

 

왜 그럴까?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전시 규칙이라고 하는 것... 어떤 사람이든 그 사회가 부여하는 하나의 책임있는 행동.. 예를 들면 남자는 울면안되고... 여자는 다소곳해야 하고... 때론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모른다...남자는 왜 울면안되지? 여자는 왜 다소곳해야 하지? 라고물으면... 그냥!! 대답밖에.. 아니며... 말이 많구나!! 라는 말로 오히려.. 질책과 비난을 당하기가 일수다.

 

사제에게 이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 전시 규칙은 무얼까?  내가 보기에 사제에게는 진지한, 심각한, 경건한, 거룩한, 근엄한, 지적인, 겸손한, 의지가 강한 등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마치 바늘로 찌르면 피 한방울 안나오는 사람처럼 묘사되기가 일 수다... 간단히 말하면... 전혀 인간다운 모습을 상실한 듯한 즉, 슬퍼도 울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모르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기가 쉽다...신자들에 대한 묘사 역시 그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모습이 앞서 얘기한 대로 청소년들 아니 때론 나 외에 그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를 통해 하느님을 중재하고픈 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이 편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는데... 행복 때문에 산다고 하는데...

 

내 앞에 예수님을 반영해주는 청소년이 있는데...

내 앞에 예수님을 반영해주는 소외된 이들이 있는데...

내 앞에 예수님을 반영해주는 나의 벗이 있는데...

 

난 그 앞에서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뛰놀며 기뻐했던 요한 처럼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왜 우린 성당 감실 앞에 만 가면... 심각해져야 하고 진지해야 하며 심호흡을 하며.. 나를 진정시켜야 하는 걸까?  그분을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는 없는 걸까?  그분과 함께 있음이 기쁨으로 다가올 수는 없는걸까?

 

그리스도교는 기쁨의 종교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성 요한 보스꼬는 "즐거움 속에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오고 계시며, 이미 와 계시다... 우리가 기뻐할 이유는 너무도 많은 것같다... 그러나..성탄이라고 하는 사건 하나만으로도 기뻐할 이유는 충분히 되는 것같다...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그러나 선택과 결단은 나에게 달린 것!!!

 

행복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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