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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민재판!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01 조회수2,677 추천수16 반대(0) 신고

소위 인민재판이란 것이 있다.

6.25동란 중에 이러한 것이 있었다고 들었다.

인민재판은 소수의 힘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일부 약점 많은 세력들을 이용하여

기득권자들을 몰아내는 교묘한 술책이다.

이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민재판은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을 웬수지간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인간성의 왜곡을 가져오게 하였다.

 

예수 또한 인민재판의 희생자였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실제로 예수가 사형에 처할 이유도 별로 없었고

당시의 재판관들이었던, 헤로데나 빌라도조차도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 형벌을 어처구니 없이

당해야 했던 이유는

군중들의 인민재판 때문이었다.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일부 예수의 행적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 입에서

먼저 틔어 나왔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예수가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인기가 좋음에

배앓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이 지상왕국에서 큰 복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는데 그렇지 않음에 분개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예수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인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소수의 사람들의 군중동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함께 외쳐댄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가가에!"

 

오늘

사람들은

한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온다.

아마도 현장에서 잡힌 모양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진한 화장에

하늘거리는 옷들은 여기저기 이미 찢어져 있고

반 나신이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군중들은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아마도 결국 간음의 상대자는 어떤 남자일진대

그 남자에 대한 질투심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마누라도 있고 바람도 피고 싶지만

사람 눈이 무서워서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그 남자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러움이

질투심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다른 편에서 이 남정네들은

이 여인이 자신들과 정을 통하지 않고 다른 남정네와 정을 통함에

질투심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도대체 이 여인이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토록 분개할 만한,

돌로 쳐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분개하는 것일까?

예수는 분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하게 여긴다.

그래서 침묵 중에 기도한다.

아버지 이 여인을 용서하소서.

얼마나 큰 아픔을 지닌 여인입니까?

이렇게 밖에,

몸을 팔면서 밖에,

돌로 쳐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저 여인이 너무도 불쌍합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리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부터 나와서 돌로 쳐라!"

예수의 일성은 날카로웠다.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도토리 키재기가 아닌가?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단죄한단 말인가?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떠나갔다는 복음의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지은 죄가 많은 법이다.

아무리 훌륭하게 산다손 치더라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해가 거듭할수록 죄는 쌓여만 간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판단하고 단죄한단 말인가?

 

자,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또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단죄하지는 않는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저 군중심리에 매달려 고함지르고 빽빽거리지 않는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라고 억지로 갖다붙이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서...

그리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봐서...

형제회원들끼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지는 않는지...

형제회 임원자리를 놓고 서로 해 먹을려고 작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상한 루머만을 근거로해서

어떤 형제나, 자매를 완전히 매도하여

발도 못붙이고 매장시키지는 않는지...

그렇게 해 놓고서도

진리를 위해

형제회의 보다 큰 선익을 위해

교회를 위해

잘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분은 죄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아픔을 읽고

그들의 벗이 되어주고

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다.

사순절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바로 이러한 일이다.

우리가 군중심리로 다른 사람들을 재판하게 된다면

이는 또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가 된다.

간음한 여인을 기꺼이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예수와 함께 진정으로 부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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