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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는 것도 마음대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2-16 조회수2,025 추천수26 반대(0) 신고

2월 16일 연중 제6주일-마르코 1장 40-45절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예수님 시대 유다 전통에 따르면 한센씨병을 포함해서 잘 회복되지 않는 악성피부병들을 통상 나병이라고 칭했습니다. 당시 제대로 된 치료약이 없었기에 한번 악성피부병에 걸리게 되면 구제불능의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노력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피부병이지 않습니까?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피부병의 증세가 눈에 띄게 진전되면 환자는 의무적으로 사제에게 가서 자신의 환부를 보여야 했습니다. 사제의 육안을 통한 진단에 의해 피부병이 악성이라고 여겨질 경우 공적으로 나병환자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일은 사제에 의한 "나병 진단",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장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병환자로 간주된 사람은 즉시 거주지를 성밖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당연히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당시 유다인들의 나병에 대한 몰이해였습니다. 나병균이나 환자와의 직간접적인 접촉을 통해 누구나 나병에 걸릴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유다인들은 나병을 천형,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벌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나병환자들은 성밖 멀리, 가급적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토굴에서 짐승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습니다. 옷을 입을 때도 "나는 죄인입니다"는 표시로 찢어 입어야만 했습니다. 머리도 풀어서 산발해야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멀찍이 서서 "나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크게 외쳐야만 했습니다.

 

악성 피부병으로 인해 미치도록 간지럽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만 해도 억울한데, 아무런 죄도 없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 취급을 받으니 당시 나병환자들의 삶은 얼마다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너무도 괴로웠던 한 나병환자,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자 죽어"를 수 천 번도 더 다짐했던 나병환자가 있었습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은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전해집니다. 귀가 솔깃해진 나병환자는 죽는 것을 일단 보류시켰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그분을 만나 봐야 하겠다"며 죽기살기로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나병환자에게 있어서 더 이상 격식도 체면도 예의도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무조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통 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하시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병환자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승복하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장엄한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서 치유의 은총을 청하는 나병환자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묵상해 봅니다.

 

그저 내 한목숨 조금 더 부지하기 위한 치유, 우선 괴로우니 빨리 나아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치유를 청하면 거의 90% 이상은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가 청하는 치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치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기에 합당한 건강을 허락해 달라"는 차원에서의 치유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하던지, 살던지 죽던지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일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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