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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저 주어라!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3-12-10 조회수1,859 추천수15 반대(0) 신고

                     

                           

                  2003년 12월 6일 토요일 복음 中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9, 8

           

          첫 눈처럼 가만 가만 오시는 아기 예수님, 지금 어디만큼 오셨나요....? 올 겨울 첫 눈 내리는 날 무얼 하셨나요? 좋은 일 가득, 기쁨 가득 가득 하셨길 바래요.^^ 눈 내리는 날, 비 오는 날, 또 바람 부는 날 저는 가끔씩 옛 추억을 되살려 부침 전을 부치곤 한답니다. 눈이 펑 펑 내리는 한 겨울, 시큼 새콤하게 익은 김장 김치 송 송 썰어 김치 전을 부치거나 비가 오는 날, 집에 있는 호박이나 고추, 깻잎등 국걸이 용으로 남은 야채 듬뿍 썰어 넣은 호박 전 부치는게 제겐 무척 즐거운 요리 시간으로 제가 언제나 부침 전을 부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 있답니다. 바로 제 이웃집 할머니요! 왜냐구요? 제 솜씨없는 부침 전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기쁘게 잡수시는 분이 제 이웃집 할머니시거든요. 제 가족들은 가끔 제 부침 전에 대한 평론이 좀 날카롭다 못해 비참하기까지도 하답니다. ...너무 싱겁다. 소금 안 넣었니? 너무 태웠다. 좀 바삭 바삭하게 부쳐라. 왜 이리 無맛이니?...아~아!...흑~흑! 그 중에서 저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건 제가 열심히 부친 전들이 잘 팔리지 않고(?) 푸~욱 식어 버린 채 접시에 재고로 남아 있을 때랍니다.

           

          요리사 이야기에 의하면 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틀린 건 손 끝에서 나오는 기(氣)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손 끝에서 기(氣)가 나와 음식 맛을 낸데요. 그래서 전문 요리사들은 비닐 장갑을 끼지 않고 나물을 무치거나 요리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저는 제가 솜씨껏 만든 부침 전이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고 아마 맛이 없다고 불평하신 분들의 미각에 좀 이상이 있지 않나해요.^^ 제가 부침 전을 부쳐 제일 먼저 달려가는 제 이웃집 할머니는 조금 연로하신 개신교 신자 할머니세요.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부침 전 몇 개를 할머니께 드리면 얼마나 할머니께서 기뻐하시는지 모른답니다. "넌, 어쩜 이리도 맛나게 전을 부치냐? 고맙다, 고마워! 잘 먹을께." 하시며 가끔씩 할머니 집에 있는 다른 야채나 과일 혹은 사탕등을 꼭 제 접시에 다시 담아 주신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제 부침 전에 대한 답례(?)로 접시에 담아 주시는 과일이나 야채, 사탕등을 거절하지 않는답니다. 간식으로 할머니께서 드셨으면 더 좋겠다 생각하지만 할머니의 고마움에 대한 표시를 선뜻 거절하고프지 않아서요. 설혹 맛이 없다하더라도 기쁘고 맛있게 제 부침 전을 드시는 할머니는 사실 외 아드님 내외와 떨어져 혼자 사시고 계시는 독거 노인이시랍니다. 외 아드님 직업상 멀리 타지를 자주 이동하시는데 할머니께서 아들 내외분을 따라 자주 이사하시기엔 연로하시고, 정 붙이고 사실 곳도 필요하시고, 또 교회도 다니셔야 되고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편하시고 싶으셔서 홀로 사시고 계신답니다. 요즘처럼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서로에게 무관심한 인심속에서 제 작은 부침 전 몇 개에 할머니께서 무척 기뻐하시는 건 꼭 부침 전 때문이 아니라 어쩜 당신 존재가 아직 이웃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한 감사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요즈음 부쩍 더 부침 전을 자주 부치곤 한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또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아도요... 비싼 재료나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간편하게 부침 전 몇 개 부쳐 따뜻할 때 드시라고 가져다 드리는 전을 언제나 기쁘고 맛나게 드시는 할머니 모습이 제겐 작지만 큰 기쁨이랍니다. 지난 여름에는 호박 전과 부추 전을 부쳐 가져다 드리면서 "올 겨울 새콤한 김장 김치로 김치 전 부쳐 가져다 드릴께요." 하고 약속까지 했답니다. 할머니께서 아무리 지금 건강하시다 해도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까지 제가 부쳐드리는 부침 전을 드실 수 있을지....날씨가 추워져 겨울에 접어드는 요즘은 그런 생각들이 문득 문득 스치곤 하네요. 내년 여름에도 제가 만든 호박 전과 부추 전을 맛있게 드실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도 스치구요...혹시 이 부침 전이 할머니께는 마지막 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슬픈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 때마다 더 솜씨를 내서 맛있게 부침 전을 부쳐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곤 한답니다.

           

          할머니와는 같은 이웃으로 서로 마음을 맞대고 산지 벌써 수 년 째. 제 부침 전의 영원한 단골 고객이신 할머니도 유수한 세월의 흐름속에 많이 연로해지시고 벌써 겨울의 쌩쌩한 추위에 더 작아지신 모습으로 며칠 전 코를 훌쩍이시며 제가 드리는 부침 전을 기쁘게 잡수셨어요. 제가 할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게 고작 부침 전이나 기타 다른 소소한 작은 도움밖에 드릴 수 없지만 그 맛없는 부침 전 하나에도 할머니께 기쁨을 드릴 수 있어 저도 참 기쁘답니다.^^ 지난 주 토요일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열 두 제자에게 당신의 권능을 나누어 주시며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저는 주님께 마귀를 제어하거나 앓는 사람을 낫게 해주거나 나병 환자를 고칠 수 있는 카리스마는 받지 못했지만 부침 전을 솜씨껏 부쳐 이웃집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카리스마는 받았나 봅니다.^^ 제 부침 전을 맛있게 드시고 할머니께서 기쁘셨다면 뇌에서 좋은 호르몬 분비가 생성되어 할머니의 영육간 건강에 유익한 도움을 드렸을테니까요...너무 큰 비약인가요?

           

          † 예수님,

          제게 주신 모든 것들...제 생명, 시간, 공간, 이웃들, 재화, 취미, 달란트....당신이 허락하셔서 모두 제게 주셨습니다. 어느날, 당신께서 모두 거두어 가시는 그 날까지 제가 하는 모든 생각, 모든 행동-제가 부침 전 하나를 부치는 저의 작은 요리시간에도-지금 당신의 권능이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저의 소소한 일상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을 통해 제 이웃에게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주님, 사실 저는 그리 많은 재주가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부침 전을 제 나름대로 맛있게 부쳐 제 이웃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재주 하나는 가지고 있는 듯 싶습니다. 제가 제 이웃을 위해 부침 전 하나를 정성껏 부치는 이 작은 마음을 마르고 닳도록 갈고 닦아 제가 만나는 제 형제 자매들에게 당신을 전하는 기쁨의 요리사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저의 모든 것 당신께서 거저 주셨으니 저 또한 제게 있는 모든 것 제 이웃에게 거저 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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