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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사순2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11 조회수1,556 추천수16 반대(0) 신고

◎ 2004년 3월 11일 (목) -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6,19-31

<너는 복을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을 겪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19)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20)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21)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22)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23)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25) 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27)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28)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복음산책]  이웃을 위한 마음과 눈과 귀

 

  마태오, 마르코와 함께 공관복음이라 불리는 루가복음에는 다른 두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루가 고유의 특수사료들이 많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우선 예수의 전사(前史)가 그렇고,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가난한 이들과 불쌍한 이들, 여자들, 죄인들에 대한 자비와 관심을 소재로 삼은 대목들도 그렇다. 예수께서 자주 기도하는 모습과 기도에 대한 가르침도 루가복음의 고유성에 속한다. 루가는 세상의 재물을 놓고 부자와 빈자, 소유와 포기에 관한 문제를 큰 관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죄인들의 회개와 하느님의 용서에 관한 다양한 비유들도 빼놓을 수 없는 루가의 특수사료들이다. 특히 루가복음 15~16장에는 다른 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비유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잃었던 은전의 비유’(15,8-10), ’잃었던 아들의 비유’(15,11-32), ’약은 청지기의 비유’(16,1-15), 그리고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16,19-31)가 그것이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우선 부자와 빈자에 관한 비유이다. 오늘의 비유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부자와 빈자가 처해있는 이승의 모습을, 2부는 저승에서의 역전된 상태를, 그리고 3부는 이승과 저승의 관계를 보여준다. 1부에서 부자와 빈자의 대조가 매우 날카롭고 격한 색조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의를 끈다. 부자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모습으로, 빈자는 빈털터리 거지에다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고, 게다가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을 만큼 비참한 삶을 인내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19-21절) 그런데 2부는 죽음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후에 부자와 빈자의 상태가 완전히 역전된 것으로 전개한다. 빈자는 죽자 바로 천사들의 인도를 받고 아브라함 품에 안기었다는 것과 부자는 죽어 그냥 땅에 묻혔다는 대비(對比)가 역전의 전초전이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똑같은 저승에서 빈자의 상태와 부자의 상태가 큰 구렁텅이(카스마)를 사이에 두고 전혀 교류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이는 3부의 이승과 저승의 관계로 다시금 강조된다. 저승에서 엄청난 고통을 받는 부자가 이승에 남아 있는 형제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이승에서의 삶은 이승의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부자이건 빈자이건 간에 어떤 모양으로든 교류가 가능하다. 오늘 비유에서 치부(致富)나 부유함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관건은 사람자체에 있다. 바로 자신이 가진 부(富)를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고,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 말이다. 바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 즉 자기 집 문간에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부스러기나 주워먹고, 개들에 의해 종기까지 핥음을 당하는 한 거지를 보고도 보지 못하고, 그 신음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그런 부자 말이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추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하느님 나라에 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하다. 모세도 예언자도, 누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부자는 철갑을 뚫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동(動)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비록 이승에서 부자였지만 저승에서는 참으로 가난한 빈털터리였던 셈이다. 세상을 살면서 타인을 위한 눈도, 귀도, 마음도 없는 자는 이와 마찬가지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라자로의 처지가 천국에 빗대어 표현되었으나 부자의 처지가 굳이 지옥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비유가 빈부의 극심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비유는 다만 저승에서 반전된 처지를 통하여 이승의 부자들을 경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오늘 복음의 비유는 사실 ’예수의 말씀을 비웃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16,14)을 빗대어 하신 말씀이다. 앞서간 대목들을 함께 살펴보면 재산의 소유가 제자로서의 예수님 추종을 줄곧 위협하고 있으며, 때로는 불가능하게 함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재물의 소유가 이승에서는 안위와 행복을 약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도 모르는 저승에서의 고통과 불행을 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승에서의 빈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빈자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의지요 선택이며 사랑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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