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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다림만 배우면 삶의 절반을 배우는 것입니다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7 조회수1,801 추천수24 반대(0) 신고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마태오 복음 10장 16-23절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기다림만 배우면 삶의 절반을 배우는 것입니다>


유럽에 있는 대학들은 대체로 6월 중순경에 여름방학을 시작해서 3달가량 계속됩니다. 기숙사에 남아있으면 숙식비를 지불해야 될 뿐만 아니라, 찜통더위여서 학생 신부님들은 일자리를 찾아 나섭니다. 많은 학생신부님들이 휴가를 떠나는 본당 신부님들의 ‘땜방’을 해주면서 방학을 보내지요.


저도 한번은 여름방학 내내 한적한 시골본당에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참 좋았었습니다. 우선 지대가 높았기에 덥지 않아서 좋았고, 시골본당 신자들의 소박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딱 한 가지 나쁜 점이 있었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 저를 위해 승용차를 한 대 두고 가셨는데, 이차가 문제였습니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서,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아이들이 타는 ‘붕붕카’ 수준이었습니다. ‘티코’는 양반이었습니다.


작기도 정말 작았지만, 워낙 오래 돼서 정말 불안했었습니다. 내리막에서 바람을 등에 업은 상태에서 아무리 밟아도 최고속도가 60킬로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다가 3단 기어를 넣고 속도가 좀 붙은 상태에서 4단을 넣으려면 도대체 기어가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애물단지를 몰고 하루는 이웃 본당으로 미사를 가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비도 오고, 아스팔트 길 위에는 모래도 있는 데다 바람이 세게 부니 차가 왔다갔다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최대한 주의를 집중해서 천천히 달렸습니다.


갓길이 없는 2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저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바람에 차가 밀리지 않게, 또 미끄러운 노면에 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해서 핸들을 꽉 잡고 오직 앞만 보고 가는 겁니다. 시속 30킬로로.


그랬더니 제 차가 ‘대대장차’가 되어버렸습니다. 잠깐 귀를 돌아봤더니 제 뒤로 차가 30대도 넘게 줄을 서서 따라오는데 볼 만 했습니다. 바로 뒤에 따라오던 차들은 빨리 안 간다고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붕붕카를 타고 잔뜩 긴장한 가운데 빗길을 달려가면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차를 몰고 그 도로를 달리던 저는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저는 악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똑같은 상황이 늘 벌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좀 덜떨어진 이웃들, 왠지 부족해 보이는 형제들, 늘 뒤처지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의 화살을 날립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숨겨진 약점을 감내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공동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이웃의 결핍을 견뎌내기가 죽기보다 더 힘듭니다. 형제의 실수 앞에 인내하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지요. 크게 한번 호흡하고 크게 한번 참아주기가 그렇게 힘겹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 있게 마련이지요. 나이가 들면 모든 신체기관의 노쇠해짐과 동시에 제반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사고도 당합니다. 인생의 흥망성쇠를 겪는 것입니다. 잘 나가던 시절이 있으면, 내리막길을 걸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가 있었기에 병고를 겪는 순간도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순간이 있었으니, 너무도 당연히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또 우리는 못견뎌합니다.


우리 인생의 그 모든 순간들, 그 모든 사건들을 큰마음으로 바라보고 기꺼이 수용하는 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인생의 모든 시련들을 기꺼이 견뎌내는 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최종적으로 주실 마지막 상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 중에 하나입니다.


늘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어떻게 해서든 인내하고, 기다리고, 참아내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웃들의 무례한 행위나 모욕적인 언사 앞에 인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시련 그 앞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참된 인내가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한다고 마음먹을 때, 주님을 위해, 주님으로 인해,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할 때 참된 인내가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다면...기다림만 배우면 삶의 절반을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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