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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낯선 존재 (이제민 신부님)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21 조회수538 추천수1 반대(0) 신고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희의 전부가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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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존재]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타자이다.
아무리 우리 가까이 계신다 해도 그분은
영원히 우리와 같을 수 없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절대타자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인간 세계에 들어오신 것도
당신의 가까움보다는
인간과 완전히 다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느님이 세상에 보내신 당신의 아들도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전혀 낯선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저 낯선 아기가 구세주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주변은 말할 나위 없고,
어쩌면 요셉도 마리아도 그가 인류의 구세주임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발견하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낯선 존재가 되어 오신다.
인간은 낯선 존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구유에 누운 아기를 귀여운 아기라고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낭만적인 환상이다.
아기는 결코 그들에게(우리에게) 귀여운 아기는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그들은(우리들은) 그를 그렇게 한데에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기는 우리의 낭만적인 노래를 듣기엔 너무나 절박한
길거리에 버려진 신세, 낯선 존재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불쌍한 아기였다.
아기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낯선 존재였다.
그 누구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기가 장성하여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그런 낯선 존재로 오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 버려진 자, 과부, 고아, 나그네의 얼굴로
굶주리고 목마르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자의 얼굴로
인류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자들은 그에게서 멀어졌고
사람들은 그 낯선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분은 십자가에서도 자기의 낯섦을 버리지 않았다.
그분은 끝까지 낯선 존재로 머물러 있었다.

낯선 존재로서 그분은
구원은 자기와 결코 같을 수 없는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비로소 주워지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낯선 그분은 인류의 구세주였다.


(*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 시기.
낯선 존재를 기다리는 시기.
낯선 존재를 영접하는 자만이 저 멀리서 오는 예수를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하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형제라고 부르는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그분은 어쩌면 우리의 형제보다는 낯선 존재로,
형제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의 낯선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 남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가진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는가?
호화스럽게 잘 사는 자신이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는가?
내 소유라고 하지만 내가 부당하게 즐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는가?
내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숨어 있다는 증거이다.)

(* 낯이 선 존재는
닫힌 내 마음을 열어주고 뜨겁게 해주어
내 존재를 새롭게 느끼게 해 준다.
삶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준다.)

(이제민 신부)


( http://예수.kr  ,  http://www.catholi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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