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의 조명(照明) ----- 2006.7.26 수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6 조회수542 추천수9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7.26 수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이사1,1.4-10 마태13,1-9

                                                      

 

 

 

 

하느님의 조명(照明)

 



지금도 생생한 것은

미국 미네소타주 성 요한 수도원 내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시시각각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양하고 신비롭게 변하던 호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은총은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반면 태양의 조명이 사라지면

캄캄한 어둠으로 변해 공포감까지 자아내는 호수였습니다.


신록의 빛나는 아름다움이나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 역시

태양의 조명, 햇빛 있어 가능합니다.

 

태양 사라진 밤의 신록이나 단풍들, 캄캄한 어둠일 뿐입니다.
어제 만났던 자매님과의 대화중에도 이런 진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가 만들어 드린 빨간 제의를 입고 입장하시는 교황님을 뵈었을 때,

  제의가 참 덤덤하여 실망스러웠습니다.

  순간 조명이 들어왔을 때

  저는 그 빨간 제의의 아름다움에 말문을 잃었습니다.

  추기경님과 어느 주교님도

 ‘제의가 참 아름답군요.’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시 저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은총이 그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빛이, 하느님의 조명이 있을 때

  비로소 빛나는 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하느님의 조명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움 자체이시고,

  하느님의 조명에 의해 반사되는 온갖 피조물의 아름다움,

  바로 하느님을 반영합니다.

  아름다움의 체험 바로 하느님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영혼을 조명할 때 영감도 일어나고, 깨달음의 지혜도 생깁니다.
하느님의 빛이 사라지면 영혼은 캄캄한 어둠입니다.
하느님 은총의 빛에 영육이 투명해지고자

끊임없는 기도에 성서 묵상, 그리고 관상생활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나눕니다.
삶은 과정입니다.
지금 여기의 과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끊임없이 하느님 향해 흐르는 강과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 어둠과 빛이 끊임없이 교차되면서,

흐르는 강과 같은 삶입니다.


살다보면

길바닥 같은 때도 있고 돌밭 같은 때도 있고 가시덤불 같은 때도 있고,

좋은 땅 같은 때도 있는 것입니다.

마냥 좋은 땅만의 때가 있는 게 아니라

계속되는 돌밭에 가시덤불 같은 때도 있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보며,

시야를 넓히며 틈틈이 내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성독) 해야 합니다.

삶은 전체입니다.
부분이 전체인양 착각은 금물입니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전체에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여기 내 삶의 자리 잘 들여다보면,

절망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 희망이 있고,

슬픔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 기쁨도 있습니다.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는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돌밭 같은 삶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 옆에 좋은 땅 같은 삶도 있음을 봅니다.


내 마음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나쁜 마음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는 착한 마음도 있고,

단점 옆에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래서 전체를 보아야 하고,

부분에 집착해 부분이 전체인양 단정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래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이 필수입니다.
가까울수록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부분이 전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좀 떨어져 봐야 제대로 볼 수 있고 기다림의 여유와 인내도 생깁니다.

함부로 판단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감정이나 기분에 휘둘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와 예의는 필수입니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둔 평행선의 철로 위에서

기차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사랑은 거리를 견뎌내는, 제자리를 지켜내는 고독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삶은 항구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재미로 사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나 감정으로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 감정이나 기분에 휘둘리는 삶,

여전히 제자리의 삶이요, 영적 진보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이 우리 삶의 모범입니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에 개의치 않고

씨 뿌리다 보면 좋은 땅의 때도 오는 것입니다.


제 입맛대로

좋은 때, 좋은 자리, 좋은 사람만을 골라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외적 환경에 개의치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내 주어진 일에,

주어진 자리에,

주어진 소임에 충실할 때,

풍성한 내적 성숙의 열매입니다.

 

점차 깎이고 닦여가면서 겸손하고 온유하신 주님을 닮아갑니다.
사실 이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우리 삶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이런 삶, 하느님의 조명하에, 은총의 빛 안에서 가능합니다.
이래서 하느님 현존 안에 늘 깨어 사는 영적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은총의 빛 사라지면

어둔 욕망이 우리 눈을 가려 버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혼란한 삶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심신은 망가지고 영혼도 황폐화 되어버립니다.
은총의 빛 있어 자기의 발견이요 내 소명을 깨닫습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하느님의 은총의 빛에 의해

자기 소명을, 존재이유를 깨닫는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하느님 주신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번 뿐이 없는 짧은 인생 마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망하겠는지요.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의 빛 안에서 우리의 정체와 소명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