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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16일 야곱의 우물 -루카11, 29-32 묵상 / 하느님과 인간 사이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6 조회수529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29­-32)

◆신앙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닮아 그분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신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은 어리석거나 아직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은 많은 경우 자신의 필요를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인간 언어의 한계상 어쩔 수 없이 청원기도밖에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만일 그 기도가 이루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들은 쉽게 신앙생활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러 오신 분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생존의 지혜를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세상이 하느님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와 어떤 관계인지를 알려주신 분이다.

 

또 우리의 나약함과 인간 조건을 어떻게 대면하고 끌어안아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느님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결국 우리는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만이 가장 인간적임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 조건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느님다움이 드러날 것이다. 이로써 인간관계가 편안해지고 폭력이 없어진다. 이런 변화가 바로 기적이고 표징이 아닐까?

김정대 신부(예수회·인천 `삶이 보이는 창`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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