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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 고려 배 (펌)
작성자배봉균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1 조회수562 추천수5 반대(0) 신고

고려 배 - 펌

 

고려는 왕건을 비롯한 해상세력이 건국한 나라다. 일찍이 왕건은 궁예의 부하로 난세에 등장하고 하나하나 그

 

위명을 다져 나간다. 그리고 그 토대는 해양력이었다. 사실 그의 조상과 가문이 해상무역 세력이기도 하다.

 

이런까닭에 그는 해군을 지휘했으며 직책도 백선장군해군대장(百船將軍海軍大長)이었고 해군력은 막강했다.

 

909년에는 해군을 이끌고 나주를 공격하여 화공전법으로 승리함으로써 서남해 일대에 확고한 기반을 다지면

 

서 후삼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해가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전남 나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호족

 

의 딸이기도 한 장화왕후는 왕건이 해상활동 중에 맺어진 사랑이기도 하다(목이 마른 왕건에게 버드나무 잎을

 

띄워 물을 마시게 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다). 기록에 의하면 왕건이 건조한 대선(大船)은 그 길이가 각 방

 

16보(36.6m)에 무게만도 250∼280톤에 이르렀다 한다. 이는 15∼16세기경 콜룸부스가 항해한 배의 규모인데 이

 

미 5∼6백년전에 고려에서 건조한 실력에 비추어 고려의 해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배위에

 

서 말이 달릴 만 했다고도 한 것이다. 당시 고려의 배에는 대선, 과선 등의 군함에서 순찰선인 순선, 행정지도

 

선인 관선, 소나무로 만든 큰 배인 송방, 막선 등 매우 다양하다(고려사에 대선·과선 등에 대한 기록이, 1123년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순선·관선·송방·막선 등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대선은 현재까지 밝혀진 고려의 배중

 

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함이며 과선은 고려의 대표적인 군함이다. 일본의 「소우기」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배, 그 중에서도 과선은 철로 뿔을 만들어 적을 부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거북선이 바로 고려

 

군함을 원형으로 하여 개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배에는 세계최초로 '과포'라 하여 포를 설치하였

 

다. '1019년 고려전함이 화약을 넣어 공격한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일본 소우기).

 

이렇게 보면 중국이 4대 발명품으로 자랑하는 것중에 이미 한국이 원조이자 종주국으로 밝혀진 인쇄술과 더

 

불어 '화약'도 한국이 최초로 발명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진 셈이다. 특히 고려가 일본원정시 화약성 폭발

 

무기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객관적 정황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백련초」에서

 

는 997년 고려가 일본이 계속적인 통상요구를 거절하자 3차 요구 이후에는 큐슈를 침공했다고 하며, 5백여척

 

을 앞세운 고려군의 침공 기록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고려후기로 가면서 불화살인 주화(走火)에 이은 잇

 

다른 화포무기의 개발이 적극 추진되었고, 최무선의 등장으로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 화포무기가 함대에 배치

 

되면서 1380년 진포대전의 승리와 1419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에 이르는 해상장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후에 나온 거북선도 3층 구조인데 고려의 건조방식과 화포설치를 이어받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고려배는 한선(韓船) 기능 보유자인 이원식이 밝힌 대로 바닥이 평평하며 배의 앞뒤가 부드러운 유선형으로

 

굽어져 올라간 형상이다. 그리고 밑바닥에 돌을 두어 15˚의 기울기에도 원상회복이 가능하게 했고 배나무 펌

 

프를 설치하는 등 고도의 과학을 동원했다. 이러한 해양국 고려의 면모가 있었기에 활발한 해상교역이 가능했

 

고 문화와 예악, 보화, 각종물자 등이 늘 오갔고 화려하고도 풍요로운 사회가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서긍은

 

고려의 객관이 궁궐만 했다고 하여 활발했던 국제무역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규보는 자신의 시(詩) 가운데

 

고려배가 베트남 등 남만은 물론이고 대식국(아라비아), 마팔국(인도), 섬라곡국(태국) 등지까지 오갔다고 했

 

다. 사실 오늘날 한국을 가리키는 영문자 'KOREA'도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보고 부르던 말에서 유래된 것

 

이다. 해상제국 백제의 해양활동과 장보고의 청해진 시대를 이어받은 고려다. 그래서 고려배도 그 조선술과

 

전통을 이어받는다. 이에 힘입어 해상왕국 고려는 3개월만에 9백척을 건조했다고 한다. 지금도 전하고 있는

 

고려의 청동거울 중에는 항해 중인 고려배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렇듯 갈래갈래 있는 파편들과 앞서 언급

 

된 기록들을 모으고 연구하여 고려배에 관한 기록과 원형복원 작업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고

 

려의 해상력을 다시 밝히는 한편 해양대국을 꿈꾸는 21세기 한국의 미래의 본보기로 삼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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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려때 건조 추정 木船조각 발견
 
hcjs65 http://cafe.naver.com/htimes/239
고려때 건조 추정 木船조각 발견

전남 나주시는 13일 “영산강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건조된 것으로 보이는 만곡부(灣曲部)와 겉판 등 고대목선 조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만곡부는 좌현 선미(船尾) 쪽으로 배 밑바닥과 윗부분을 연결하는 L자 형태며 길이 580㎝, 폭 40~50㎝, 두께 10㎝ 가량이다.

1983년 발견된 완도선과 지난해 군산 앞바다에서 확인된 선박에 이어 세 번째 고대선박의 발견이다. 이 배는 9~11세기 건조됐고, 배 길이가 30m 안팎의 전함으로 추정되고 있다.

(광주=권경안기자 gakwon@chosun.com )

신희상(shinada) (2005/12/05) :

고려 배가 너무 오래되서 요거 밖에 안남았네요...^^

신희상(shinada) (2005/12/05) :

고려시대 청동거울에 새겨진 고려의 배 모습...

 

 

 

Maksim Mrvica - `Exodus`
이강길

 

막심 므라비차 (Maksim Mrvica)- "피아노계의 바네사메이"


크로아티아 출신의 일렉트릭 피아노 아티스트 (1975년생)
지난 유고내전 당시, 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던 거리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삶의 처절함을 경험하였던 그는
내전이 끝난 1993년 18세의 나이에
이미 크로아티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속도감있는 일렉트릭 사운드 위에
탄탄한 피아노 연주가 더해진,
미래의 피아노 음악, 바네사 메이와 본드를 넘어
일렉트릭-클래식의 새 지평을 연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는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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