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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의 친교체험" --- 2007.8.29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9 조회수504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8.29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예레1,17-19 마르6,17-29

                                                    
 
 
 
"주님과의 친교체험"
 


생명에 대한 집착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그토록 초연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죽음이 임박하면 거의 살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모든 판단은 보류하고 마냥 겸허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순교의 삶을, 십자가의 삶을 자주 일컫지만
막상 그런 삶을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성인들의 삶을 잘 들여다본다면
성인되고 싶은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밖에서 볼 때 성인들,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외 없이 성인들의 공통점을 보면
늘 고통이나 병을 달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휴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휴식이요 끝나는 고통이었습니다.

오늘 수난 기념을 지내는 요한 세례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느님과 이웃의 축복 속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팔자 사나운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광야 고행 삶 중에 주님의 길 닦기가 끝나자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어처구니없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세례자 요한,
무의미해 보이는 죽음 앞에 대부분 망연자실할 겁니다.
 
사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살해된
목사님과 청년 두 분의 죽음도
우리에게는 커다란 아픔이자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죽음 전, 이들의 고독과 외로움, 절망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감옥에 갇혀 있다 참수된 세례자 요한 역시
죽음을 예감했을 때의 그 고독과 외로움,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의 처지 대동소이합니다.
 
늘 죽음의 위험 속에 고독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
대부분 예언자들의 삶이었습니다.
 
이들을 이 고독과 외로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 낸 것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하느님 체험입니다.
 
평상시 비축한 하느님 체험 덕분입니다.
 
내밀한 하느님 사랑 체험이,
하느님 신뢰 체험이,
하느님 희망 체험이
이들을 고독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습니다.
 
결국은 함께 있든 혼자 있든,
혼자 아파야 하고
혼자 외로워해야 하고
혼자 고통을 겪어내야 하고
혼자 죽어야 합니다.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나의 아픔이자 고독이자 죽음입니다.

이 혼자라는 생각이 두려움과 불안의 원천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 구원입니다.
 
하여 평상시의 주님과의 깊은 친교의 삶이 중요합니다.
 
유비무환이라, 상황이 좋든 안 좋든
고독과 침묵의 광야를 마련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주님과의 사랑의 친교를 깊이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막의 교부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고 충고했습니다.
 
이런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사는 종말론적 삶일 때
주님과의 친교도 더욱 절실해 질 것입니다.

이런 주님과의 내밀한 친교의 체험이 예언자들을 살게 한 힘입니다.

죽음 중에도 생명을,
절망 중에도 희망을,
어둠 속에서도 빛을,
고통 중에도 기쁨을 산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시편의 고백, 그대로 이들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시편16,2).

“나의 힘이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18,1).

뒤 시편은 소화 데레사의 임종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이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 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다' 합니다.
 
비록 헤로데의 우유부단과 사려 부족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음에 몰아넣었지만,
위의 묘사를 통해 세례자 요한의 내공을,
주님과의 친밀도를 충분히 짐작하게 됩니다.

아마 예언자 예레미야,
사면초가의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다음 주님의 응답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이
마음에 깊은 평화와 안정과 힘을 줍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고독, 외로움, 아픔들을 속속들이 아시는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있어 우리를 도와주시고자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로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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