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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는 곳을 알고 싶다고?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4 조회수530 추천수7 반대(0) 신고
 
 

 

 

 

요한  1, 35-42


"선생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와서 보아라"

 

 

묵고 있는 곳을 보고 싶다는 것은

단순히 어디 사는지, 주소를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에 사는지, 규모가 어떤지, 어떤 가구가 있고,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언행이 아니라,

그 사람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이 보지 않는 동안의 상태가 알고 싶다는 것이다.

 

오후 네시쯤!

 

오후 네시에 관한 주석이야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가장 단순하게, 일상의 삶과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오후 네시는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이다.

오전의 바쁜 스케줄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다 치우고 난 후에,

잠시 쉬고 있을 시간이다.

 

아직은 저녁의 모임이나 일과는 시작하기 전이다.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사적인 시간일 것이다.

 

어제는 수녀원에서 새해 첫 성경 강의를 마치고 물었다.

강의는 언제나 오후 2시에서 4시까지다.

 

"이제부터는 자유시간인가요? "

"5시 반에 기도 시간이예요."  ㅎㅎ

그 이전까지는 자유시간이라는 말이다.

 

수녀원만 그런게 아니라

일반가정에서도 대개 그 시간은 한가한 시간이다.

 

긴장을 풀고, 무방비 상태로 있어도 좋은 시간.

그 풀어헤쳐진 시간에 어떤 상태로 그 사람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일일지 모른다.

 

 

그 사람이 묵고 있는 곳에서, 그런 시간에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은 그래서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안드레아가 그런 상태로 그분과 함께 지내고 나서 하는 말은,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였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을 듣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라갔다가,

메시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밖의 모습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혼자의 모습이 더 훌륭한 예수님이셨다는 것이다.

참으로 남을, 세상을 구원할 자격이 있으시더라는 말이다.

 

 

아,  그렇게 살고 싶다.

누가 아무 때나 찾아와서

내 혼자의 흐뜨러진 모습을 보아도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고 싶다.

 

초등학교 때 언덕배기 허름한 집으로 이사가고부터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는 것이 가장 싫었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고, 집을 줄여 이사하면서

누가 나 사는 곳에 오겠다고 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러나 사실, 사는 집을 보겠다는 것보다

내 속을 들여다 볼까봐 더욱 겁이 나는 거다.

 

무질서와 혼돈과 게으름과 시커먼 욕심들,

작고 초라하고 견딜 수없이 부끄러운 나의 본 모습을 들킬까봐

더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나에게서 치우고 싶다.

아무도 보러 오겠다고 하지 않아도,

나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내면의 자취방을

새해엔 싸악 정돈하고 청소하고 소독하고 싶다.

 

거짓도 무질서도 허영도, 과장도, 위선도 발견할 수 없는 

겉과 속이 완전히 일치한 상태.

혼과 백이 밀착된 평안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He was beautiful / Cleo Laine & gt. John Williams
 
 

 (사진: Daum의 어떤 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옴 ^^ 출처는 자세히 밝히지 않는게 좋을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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