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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디서 생명의 신비를 찾아야 할까?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1 조회수461 추천수5 반대(0) 신고
 

"어디서 생명의 신비를 찾아야 할까?"


생명이라는 것은 과학의 차원도
철학의 차원도 아닌 것이며,


생명이 지닌
신비의 세계를 가르치고,


그 생명의 의미를 깨닫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종교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신비를 알 때
우리 인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되고,


생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종교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진정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의 신비, 인간 존재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는 문화인다운 사색을 할 때

우리 생활에 변화가 올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면
나에겐 모든 것이 무의미 할 뿐입니다.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너무나도 귀중한 나의 생명을
내 자유의사로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또 내가
어떤 노력의 대가를 치르고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결국 내가 살아있지만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인간은 삶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삶의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겨자씨 모임-
                              故 박 도 식 신부 지음

생활묵상:


‘나’라고 하는 인간의 삶을 따져보면

‘나’라는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임에

불과 하지만,

그 삶의 주체는 분명 ‘나’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내 모습과 내 재능이 내가 원해서

그리고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얼굴, 내 주변의 환경, 내가 태어난 이곳,

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조물이므로

내 모습, 내 사고 방식은, 아니 주어진 재능은

내 뜻과 전혀 관계없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성모님이 동정녀의 몸으로 아기 예수님을

세상에 태어나시게 하신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었지 성모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사회풍조로 보아서는

성모님께서도 죽고 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순명’으로 닥쳐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셨던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모든 것은

나로 인해서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참 삶은

오로지 순명하면서 그것도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생명’을 주신 분에게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생명의 신비’는

우리가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를 드리는데서만

생명의 신비를 누릴 수 있고,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를 주시는 하느님!


내 얼굴, 내 육체,

그리고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을

주님께서 만들어 주셨음을 깨닫는 지혜도 주십시오.


걱정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 죽음도 우리의 뜻과 의지와는

관계가 없음 알게 하셨으니,


모든 걱정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주님께 순명하면서

주님께서 이루러주신 삶을 즐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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