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감옥에서 온 편지
작성자김학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2 조회수508 추천수8 반대(0) 신고

1.

 

 

 신이 강을 이룰 때

 이쪽과 저쪽을 가르지 아니하였고

  신이 사람을 만들 때
  높고 낮음을 정하지 아니하였거늘
 
  우리는 어찌하여
  강의 이쪽과 저쪽을 갈라서
  있고 없고를 따지며
  사람의 높고 낮음을 정하여
  위치와 거리를 두는지요
 
  스스로 그늘을 만들지 않는 한
  어디에도 햇살은 다녀가고
  스스로 가치를 낮추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만물의 영장입니다
 
  강 저쪽에서 바라봐도
  찬란한 노을은 언제나 아름답고
  출렁이는 은빛 물결에
  오늘도 더없이 행복한 마음
 
  살다가 살다가
  어느 날 천국의 문이 열리는 날
  우리는 주머니 없는 하얀 옷을 입고
  누구나 빈손으로 그곳으로 가지요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깨닫지 못하는 것도 아니건만
  늘 망각의 동물이 되어
  욕심만 쌓이고 쌓여 갑니다
 
  가졌다 하여
  여섯 끼를 먹을 수 있으며
  높다고 하여
  한 평 넘게 누울 수 있을까요
 
  비록 가진 것 없어도
  비록 높은 곳 아니어도
  오늘도 맑고 고요한 하루, 또 하루에
  당신과 나의 한 해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나의 한 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채
 
 
 
시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서 나누고 싶었거든요.
왜 이런 경우 있잖아요.
아름다운 경치나 맛았는 음식을 먹을 때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 말이예요.
 
 
2. 
 
 

 

오늘은 예수께서 세례 받음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축일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공생활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왔다고
마태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과연 부모 마음에 꼭 드는 그런 자식이 있는지 말이예요.
우리에게 맡겨진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냥저냥 보듬고 지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 제가 부모님들에게 그리 썩 맘에 들게 처신을 했는지
돌이켜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되네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고 그렇게 행동할 때 자식은 부모님께 기쁨을 선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오늘은 제 아들 준기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해요.
 
제 큰 아들 준기는 올 가을에 대학생이 됩니다.
어려서부터 마음이 따뜻하고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이 있어서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아이죠.
작년 여름방학 때 일주일 동안 제가 일하는 세탁소에 나와서 저를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뭐 그리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출퇴근 길에 말동무라도 되어주는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매일 새벽 5시 반에 집을 출발하는 게 준기에겐 영 고되었던 모양입니다.
사흘 째 되던 날 출근길엔  졸음이 아들의 눈 속에 그득하길래
그냥 의자를 뒤로 젖히고 가는동안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집을 나서는 아빠의 어려움을 알겠다고 하면서
이듬해엔 운전면허를 따서 자기가 운전을 할테니
그땐 가게까지 가는 동안 아빠가 자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값비싼 선물을 받아도
부모의 마음을 읽어주는 자식의 마음 선물에 비할 수는 없을 거예요.
준기는 제 아이니까 당연히 사랑스럽지만 이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이 있으니
그 아이로 해서 기쁨도 선물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늘 기도하시며 성부의 마음과 일치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의 쓴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성부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응하는, 사랑받는 아드님이셨으며
또한 성부의 맘에 드는 아드님이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부모님께 또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 받고 또 마음에도 드는 그런 자식들인지요?  
 
 
3.
 
 

지난 주엔 아주 특별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편지 봉투 뒷면엔 Clinton County Jail이라는
빨간 스탬프가 찍혀 있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누가 감옥에 간 사람도 없는데 감옥에서 편지라니?
이상하기도 하고 또 까닭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다보니
20여년 전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더군요.
편지를 쓴 주인공은 Gary라는 이름을 가진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커다란 흑인 아이였습니다.
처음 그 아이를  본 건 아마도 84, 5년도일 겁니다.
그때 나이가 열 살 전후였으니까 지금은 설흔을 갓 넘긴 청년이 되었겠지요.
그 아이는 악마의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된 일은 다 골라 했습니다.
물건을 훔치는 건 애교로 봐 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엔 그 당시 제가 일하던 야채가게의 트럭을 훔쳐 달아나거나
손님들 차를 훔쳐 온 부르클린을 마구 운전해서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 기억들을 되살려보니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매일 그런 일과 씨름을 해야 하니 사는 게 참 고통스럽더군요
그 아이 때문에 미국생활이 저주스러워질 정도였다면 대충 이해가 가실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엄마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결국 열 대여섯 살쯤, 권총으로 강도짓을 하다가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네에서 사라졌습니다.
물론 제 기억 속에서도 아침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십 몇년 만에 자기 얼굴처럼 둥그런 글씨의 편지로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저를 Second Father라고 부르며, 제 두 아들의 안부도 묻더군요.
Gary는 제 두 아들처럼 저를 '아빠'라고 부르며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야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Gary는 말썽을 부림으로써 자기에게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끔씩은 제가 그 아이에게 따뜻한 말도 건네고 다정한 몸짓도 보여준 기억이 나긴 합니다.
Gary는 지금 아버지의사랑이, 그리고 사람의 정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장도 쓰고 한 번 면회도 가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아직은 자신이 없고 희미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그 분’을 그 아이에게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저같은 변덕쟁이가 아닌 한결 같은 그 분의 사랑에로 안내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인간은 모두가 죄인으로서 회개해야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가르쳐주십니다.
또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죄인들 안에서 생활하시며 자비를 베푸심을 보여주십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대로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꺾어버리지 아니 하시고,
심지가 깜빡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시는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며
지금 감옥에 있는 Gary를 위해 기도합니다.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방송원고 중에서 / 김학선
 
...............................
 
 
 
005.jpg picture by umuna
 
 
새해 첫날, 모두 모여 앉은 자리에서 이 편지를 큰딸이 읽기 시작했는데
눈물이 가려 마치지 못하고...
세째, 큰아들 그리고 둘째에 가서야 겨우 읽기를 마쳤습니다.
소외된 이웃, 불우하게 자란 사람들, 누구도 판단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공감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하고,
더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말로 새해 덕담을 대신 했습니다.
 
Gary의 편지는 우리 가족이 받은 커다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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