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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8 조회수924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8년 1월 18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Mk.2.5)
 

 
제1독서 사무엘 상권 8,4-7.10-22ㄱ
복음 마르코 2,1-12
 
 
어떤 형제님께서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도중 난데없는 괴한의 습격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얻어맞고 칼에 찔렸던지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지요. 간신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까지 업혀 온 그는 자기 형에게 사정했습니다.

“형, 난 이제 살아날 가망이 없어. 차라리 날 죽게 놔두는 것이 이 엄청난 고통을 덜어주는 거야…….”

그는 절박하게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를 나눈 형으로서는 차마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었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머뭇거리는 형에게 동생은 계속해서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습니다.

마침내 형이 결심을 굳혔습니다. 동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었어요. 그의 손에 서슬 퍼런 일본도가 쥐어졌고, 그는 온 힘을 칼끝에 모아 힘껏 동생의 목을 향해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안 된다. 얘야!”

바로 그 순간 곁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동생의 몸을 덮었고, 결국 그는 어머니의 애절한 부탁 때문에 아우의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의사들의 정성어린 치료와 어머니의 간호 덕분에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일본 근대화를 앞당긴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일본 외무대신을 지내기도 한 이노우에 가오루입니다.

여기서 사랑의 두 가지 모습이 나오지요. 형님의 사랑은 포기하는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 지키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랑을 간직해야 할까요? 분명히 형님도 동생을 사랑했었지요. 그러나 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을 안락사 시켰다면 어떠했을까요? 바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랑, 지키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나옵니다.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은 상태이기에 자신의 친구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갈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씁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낸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중풍이라는 병으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친구가 예수님을 통해서 과연 낫게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랑, 즉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요? 예수님을 감동시킬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나요?



사랑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수고했소, 이젠 돌아가도 좋소(최인호, ‘꽃밭’ 중에서)

하루 종일 집안 청소를 끝내고 나더니 파김치가 된 아내는 손을 씻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강운구, 수고했소. 이젠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참 뜻밖의 소리였다. 그러나 낯익은 말이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아내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초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나온 문장이에요.”

순간 나는 국어교과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아마도 5,6학년 때 교과서 같은데, 학교 청소를 다 끝낸 후 선생님이 강운구란 학생에게 했던 말이었던 것이다. 누구든 초등학교 때 힘들게 학교 청소를 끝낸 후 선생님의 검열을 받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엔 갑자기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왠지 힘든 일이 끝내고 나면 그 문장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모든 일을 학교 숙제하듯 한다. 마치 선생님으로부터 변소나 교실 청소를 명령 받고 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처럼 매사를 숙제하듯이 꼼꼼히 해치운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나는 아내가 힘든 일을 끝내면 국어책 읽듯이 이렇게 낭독하곤 한다.

“황정숙, 수고했소.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따지고 보면 우리 나날의 삶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인 것 같다. 매순간 그 숙제에 충실하게 살면서 언젠가는 선생님 앞에서 검열을 받듯이 우리들이 살아온 인생의 숙제를 검열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최인호, 수고했소. 이젠 천국(?)에 들어가도 좋소.”
 
 
 


 
영혼의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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