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너에게서 내 영광이 빛나리라." - 2008.1.20 연중 제2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1 조회수417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20 연중 제2주일                                              
이사49.3.5-6 1코린1,1-3 요한1,29-34

                                              
 
 
 
 
 "너에게서 내 영광이 빛나리라."
 

이사야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40,6-8).

그렇습니다.
민초(民草)라는 말도 있듯이 모두가 풀 같은 사람들입니다.
 
젊어서 이름 날리던 이들도 나이 들면서 서서히 시들어 잊혀져가다
죽으면 얼마 못가 다 기억에서도 사라져가니 참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사람만 보면 회색 빛 허무이지만,
우리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면 빛나는 기쁨이 넘칩니다.

역시 화두는 하느님 중심의 ‘내적 삶’입니다.
얼마 전 강론 서두에 얼핏 비쳤지만 다시 언급합니다.
어느 저명한 분들이 나누던 대화 중 다음 대목에서 떠오른 영감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 한없이 크는 아이가 상상이 안 되지요.
  일정하게 성장하고 끝나야 정상이지요.
  성숙한 사회는 성장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깊은 진리가 담긴 말입니다.
사회의 경제성장도 개인의 성장 이치와 똑같습니다.
 
한참 성장기에 있을 때 식욕도 왕성하지
30대 이후 외적 성장이 멈추고 성숙기에 이르면 먹는 양도 점차 줄어듭니다.
 
사회든 개인이든 무한히 성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연 순리에도 어긋난 것으로 하나뿐인 지구도, 몸도 배겨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회든 개인이든 어느 정도의 성숙에 이르면
이런 외적 성장의 에너지는 내적 성장의 에너지로 변환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으로 하면 중년이후의 삶에 해당되고,
수도생활로 하면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 유기서원기의 양성과정후의
종신서원 기에 해당됩니다.
 
외적 삶에서 내적 영적 삶의 성장에로 방향을 돌려야 하는
중년이후의 사회나 개인입니다.
 
외적성장에는 한계가 있으나 하느님 향한 내적성장은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는 방법은,
공해와 오염에 대한, 온갖 질병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은
마음과 생활양식을 바꿔 내적 성장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식자들의 견해입니다.
 
이래서 많은 이들은 문화, 예술, 종교 쪽에 비중을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내적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정의부터 세워야 하겠습니다.
막연한 자연인은 추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보면 온통 경제뿐이 없는 듯합니다.
돈과 빵의 ‘경제적 동물’인 인간이
오늘날 대한민국 인간에 대한 정의 같기도 합니다.
 
내적 삶이 빈약할 때 내면의 허전함은
자연히 보이는 외적 성장 쪽으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분명 돈에 환장한 야만의 신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세례 받은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의 종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믿는 우리도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로 정의합니다.
 
앞머리에 하느님이 붙어 있습니다.
이 하느님이 우리의 정체성이자 신원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부단히 업그레이드 하여 하느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하느님이 빠져버린 인간은 ‘돈의 종’이 될 수 있으니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마음의 변질에 대한 대책도 전무합니다.
급기야 야수가 되고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을 믿을 근거가 없습니다.
 
미사 때 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는 모습을 서로 보면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게 되니 참 고마운 미사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종이자 자녀인 우리들 위로 활짝 열린 하늘입니다.

바로 여기 하늘에서 내리는 성령이요 은총이요 평화입니다.
돈과 땅, 빵 욕심 등이 하늘을 가려버릴 때 내면은 캄캄한 어둠입니다.
 
눈 들어 자주 하늘 보며 기도하라고 직립인간입니다.
진정 내적 삶을 사는 이들 위로 활짝 열린 하늘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예수님 위에 머무르셨다 하지 않습니까?
 
또 예수님은 열린 하늘로 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활짝 열린 하늘로부터 다음 말씀을 들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들어나리라.”

이스라엘이 상징하는바 예언자들과 예수님,
그리고 사도들은 물론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우리 모두들입니다.
 
세례자 요한 역시 예수님을 보자 하늘로부터 영감을 받아 외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다음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통해서도
그가 하느님의 계시로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을 봅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예수님은 물론 이사야, 바오로, 세례자 요한 모두 위로 활짝 열린 하늘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매 미사 때마다 활짝 열린 하늘로부터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를 풍성히 받습니다.


셋째,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사명입니다.

하느님의 종인 우리들을 통해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의 빛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된 우리들을 통해 없어지는 세상의 죄입니다.
 
하느님 영광의 빛에 사라지는 죄의 어둠입니다.
 
죄에 초점을 두지 말고 영광의 빛에 초점을 둡시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죄의 어둠입니다.
 
마침 떠오르는 태양에 사라지는 밤의 어둠 같습니다.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영광과 구원은 별개가 아닙니다.
한 실재의 양면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이 바로 우리에게는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삶, 이미 구원 받은 삶입니다.
하느님 영광의 빛 앞에 사라지는 온갖 세상 죄악의 어둠입니다.
 
우리는 미사 중 ‘거룩하시도다.’에서 고백하듯이
눈만 열리면 하늘과 땅에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삶의 목표이자 참 행복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이래야 삶의 허무에서 벗어나 끝없는 내적 성장과 성숙의 삶입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그의 규칙에서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영광을 모든 일의 잣대로 삼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 사랑을 통해, 희망을 통해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영광의 빛 되어 살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들 향한 주님의 격려 말씀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빛나리라.”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