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움직이시는 하느님-판관기58

 <생명의 말씀>

 그 때 소라 지방에 단 지파 출신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돌계집이었는데, 야훼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보아라. 너는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돌계집이지만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이제부터 몸을 조심하여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을 일절 먹지 말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거든 그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말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다. 그 아이가 비로소 이스라엘을 불레셋 사람들 손에서 건져 낼 것이다."(판관기 13:2-5)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에 젖어서 그저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회개할 생각도 하느님께 다시 부르짖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먼저 그리고 직접 나서십니다. 소라 지방 단 지파 출신의 마노아라는 남자의 아내- 그것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여인을 하느님께서 찾아 가셔서 당신 뜻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신구약 전편을 통독하다보면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불임 여인의 등장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서 하느님의 뜻을 이룰 징조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경에서 그 탄생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인물은 대체로 하느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명과 그 사명에 합당한 큰 능력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 불임 여인과 그 탄생의 이야기가 기록된 경우는 정말 위대한 사람 몇 명에 한정됩니다. 예를 들면, 불임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이사악, 창세기의 요셉, 사무엘, 세례자 요한이고 그 탄생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된 사람은 모세와 예수님 정도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마노아의 아내에게서 태어날 아기에게 하느님께서 거시는 기대와 또 그 아기에게 주시려는 사명 그리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능력이 참으로 엄청난 것이겠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깊은 어둠의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그 죄의 굴레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위대한 인물 하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시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다보면 어쩐지 하느님의 천사가 여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광경이 마치 신약의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천사가 여인에게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 주고 그 아들의 신원과 사명을 명확히 알려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신원은 태중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고 사명을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의 예고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로 마노아의 아내에게서 태어날 이 아기는 바로 삼손입니다. 하느님께서 삼손에게 거셨던 기대가 컸고 또 그만큼 은총과 능력을 풍부하게 부어주셨고 또 그 은총과 능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나지르인의 서약을 지키며 살 것을 부모에게 가르치도록 명하셨습니다. 머리카락에 칼을 대지 말아야 하고, 포도주나 소주 등의 부정한 것들을 일절 먹지 말아야 하고, 시체 옆에 가서 스스로를 부정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 등의 서약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무언가 하느님의 큰 능력을 받은 사람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한 듯 합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여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지르인의 서약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뜻을 어느 정도 이루어드리는지 이후의 자세한 기록을 살펴 보고 묵상하며 확인해 봅시다.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먼저 움직이시는 하느님께 그 사명을 받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확인해 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