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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선의 틀을 벗는 사제의 삶이란?”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3 조회수798 추천수15 반대(0) 신고
 
 
“위선의 틀을 벗는 사제의 삶이란?”
 
20여 년 전에 큰 시험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수사도 아니고 사제도 아닌 때였다. 한 친구에게 수도의 길을 가겠다고 했더니, 며칠 후 그 친구는 느닷없이 시장에서 노숙을 하는 중년여인을 모시고 왔다.
 
갑자기 저 친구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문전박대 할 수 없기에 일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했지만, 양면에서 갈등이 심했다.
 
그 이유는 겨울인데도 그 아주머니는 오랜 동안 노상에서 주거한 사람인지라 아파트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거의 시체 썩는 냄새가 나, 한동안 주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 친구로부터 시험에 든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서였다.
 
마침 온수가 있는 시간이기에 샤워를 하라했더니 미안해서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막무가내로 오갈 데 없는 사람이니 재우라는 것이다.
 
그래도 총각혼자 사는 집인데 남자도 아니고 그것도 여자를....... 그래서 그 친구와 이별을 해야 했음이 마음을 슬프게 한다.
 

사제가 되고 난 후에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그 때 왜 그 아주머니를 재워드리지 못했는가? 그 친구가 나를 시험한다 해도 기꺼이 그것에 응할 수도 있는 것인데 하면서 여러 번 후회를 했다.
 
그리고 그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제의 길에 들어와, 이미 사제가 되어 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런 나그네가 또다시 나의 집을 찾는다면 기꺼이 재울 수 있는가하고 반문을 해본다.

사제란 무엇인가? 사제는 무엇보다도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을 못했기에 구약의 사제들과 지도자들은 예언자들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예수님도 위선을 떠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가장 싫어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말라기 예언자는 2500여 년 전에 사제들의 위선과 거기에서 나오는 가르침을 보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내렸다. 예수님의 말씀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루가복음 11, 39절에서 “너희는 접시와 겉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라고 아주 강경한 발언으로 질책하심을 우리는 보았다.
 
이렇게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강한 질책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지식과 명예와 부는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위선 때문이었다.
 

일전에 현대의 종교인과 스승에 대해서 간단명료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를 던지는 경영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분 말씀이 세상에 나서 죽을 때까지 ‘님’자 소리를 들으면서 존경받는 직업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질문을 해왔다.
 
그야 물론 한국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다. 선생님, 목사님, 스님, 신부님, 판. 검사님 등이 있지 않겠느냐로 말문을 열었고, ‘좋으시겠습니다.’ ‘예! 좋긴 합니다만 그 존경을 받을만한 삶을 살아야 말이지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존경과 “님”은 어디에 쓰겠습니까’ 라고 답한 적이 있다.


나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좀 건방져 보이기는 합니다만,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어갈수록 겸손하지 못했던 날들, 성실하지 못했던 시간들, 나를 내어주어야 할 때 내어주지 못했던 순간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 해도 겉과 속이 같음을 위해 기도하는 사제, 인간의 의지차원에서 그것이 안 된다면 하느님께 빌어 얻는 기도의 은총으로 할 수 있다면 세상 끝 날이 온다 해도 더 바람이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위선의 틀을 벗는 참 사제이다.
  이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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